아뜰리에뷰티아카데미 수석 아티스트 '유진'

 
 
10년 전 우연한 기회에 한국을 찾은 파란 눈의 남자, 유진(Eugene Pokotilov). 나고 자란 곳 우크라이나를 떠나 러시아와 프랑스를 거쳐 운명처럼 이곳에 오게 된 그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또 다른 인생과 사랑하는 아내를 선물해주었다.

 
수의학 전공에 외국어, 그림, 춤에 능한 엄친아
유진을 만나면 우선 그의 유창한 한국어 솜씨에 놀란다. 한국 거주 10년이라는 경력을 감안하더라도 언어 구사력이 꽤 수준급. 러시아어와 영어도 한국어만큼 하며, 불어로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고 하니 하늘이 내려주신 언어 센스이다.
 
예술 쪽으론 더욱 타고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 춤 등 예술적 끼가 남달랐던 유진은 10대 시절부터 댄스 스포츠를 강의했을 만큼 댄서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게다가 놀랄만한 사실은 의대에서 수의학을 전공했다는 이력이다. 그야말로 머리 좋고 호기심 많고 타고난 재능을 소유한 ‘엄친아’였던 그가 잡지에서 우연히 보게 된 판타지 메이크업과 보디 페인팅에게 마음을 뺏기고 만다. 그 화려한 색감과 정교한 테크닉이라니! 그는 망설임 없이 모스크바로 날아가 아뜰리에 뷰티아카데미에서 메이크업을 수학하기에 이른다.
 
이후 파리 아뜰리에 뷰티아카데미에서의 연수를 거쳐 모스크바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새로운 삶을 살던 중 알 수 없는 이끌림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도 모르게 삶의 나침반이 한국을 향했던 건!
 
“어릴 적 우연히 TV에서 봤던 아시아의 모습이 마음 속 깊이 새겨졌어요. 일본인지, 한국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막연한 신비로움과 동경을 갖게 되었나봅니다.”
 
막연한 호기심에 왔다가 제2의 고향이 된 한국
1년만 있겠다는 계획으로 2002년 한국을 찾은 유진. 살다보니 1년 더, 1년 더 연장한 게 10년에 이르렀다. 그동안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강의와 세미나, 촬영 등을 통해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왔으며, 현재 프랑스에 본원을 두고 있는 아뜰리에 뷰티아카데미의 교육이사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며, 서경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음영이 뚜렷하고 입체적인 서구인의 얼굴에 비해 다소 밋밋한 한국 여성의 얼굴에 메이크업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 더구나 임팩트가 있는 강렬한 메이크업을 선호하는 그에게 트렌드에 민감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는 소극적인 한국 여성들과의 작업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는 어떤 여성이 아름다운지 잘 몰랐었죠. 지금은 너무나 잘 알아요.(웃음) 서양 사람들은 보통 일본 여성들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아시아에서 한국 여성들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요. 미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고요. 다만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좀 더 과감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메이크업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어요.”
 
그는 달걀형처럼 매끈하게 빠진 얼굴라인 보다 광대뼈도 좀 있고 턱도 약간 각진 얼굴을 선호한다. 그래야 드라마틱하고 개성 있는 메이크업이 가능하기 때문. 그래도 요즘에는 연예인을 중심으로 아트 메이크업이나 몽환적 느낌의 메이크업을 시도하는 여성들도 늘어나고,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아이라인을 강조한 스모키 메이크업이 대세이다 보니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는 즐겁다고. 특히 해외 유명 컬렉션의 메이크업을 대중화시키는 것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하기에 다소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이라도 계속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며 새로운 스타일로 해석해내는 노력 또한 잊지 않고 있다.
 
메이크업 키트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유진은 제자들에게 메이크업 키트 정리와 메이크업 도구의 깨끗한 관리를 강조한다. 메이크업 기술과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매너, 조율 과정 등은 기본 중에 기본이며, 무엇보다 키트와 도구 관리가 그 사람의 성격과 실력을 대변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공부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 유진 역시도 일 년에 한 달씩은 시간을 내어 외국을 돌며 강의도 하고, 현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도 연구한다.

“예술가는 본인이 스스로를 인정할 때부터 죽은 목숨이죠.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배워야 해요.”
 
오는 9월에도 3주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 몰도바, 그리스, 우크라이나를 돌며 세미나와 강연 등이 예정되어 있다.
 
'한 치 앞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단 1초 후에도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를 막연히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불안감과 막연함마저 기꺼이 즐기며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
 
유진은 한 순간 한 순간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그냥 스칠 법한 여행지였을지도 모르는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나가는 모습은,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도전자 그 자체이다.
 
서양과 동양이라는 두 문화의 이질적인 감성이 자신의 손에서 절묘하게 매치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유진. 그래서 그는 타고난 여러 재능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운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한국에서!
 
▲ 매거진과의 메이크업 화보 촬영. photo by NOUVELLE VAGUE(아래)
▲ 매거진과의 메이크업 화보 촬영. photo by NOUVELLE VAGUE(아래)
 
글=김수진 기자 sjkimcap@beautyhankook.com
사진=김세진 studiomand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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