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비디오'로 돌아온 차태현(인터뷰)

"그동안 많은 영화를 찍었지만, 이런 반응은 처음이에요."

차태현(39)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아니, '얼떨떨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10월 2일 개봉을 앞둔 영화 '슬로우 비디오'(감독 김영탁)에 대한 반응에 "와~", "이건 뭐~"라는 감탄사를 쏟아냈다.

"시사회를 하고 나서, 기자와 관계자들이 '너~무 좋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사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에요. 이게 도대체 뭐지? 나한테 일부러 그러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뜨거운 반응에 대한 느낌? 좋다기보다, 아니 좋긴 좋아요. 다만 흥행에 있어서는 정말 헷갈려요. 차라리 '재미있다.', '재미없다.' 등 단순한 반응이 예측하기 쉽죠. 뭐 '아름답다', '산책하는 느낌이다' 등 별의별 감상을 다 들었어요.

심각하게 영화에 빠진 사람들이 있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감독이 원하는 감성을 따라간 분들은, 감동을 정말 많이 느끼나봐요. 나는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고 찍지 않았어요. 물론 내 나름대로의 생각도 있었죠. 감독의 코드를 잘 아니까, 그것에 맞춰서 연기했어요."

▲ 영화 '슬로우 비디오' 남상미 차태현
▲ 영화 '슬로우 비디오' 남상미 차태현

'슬로우 비디오', 단순한 코미디로 생각하면 오산

얼핏 보면 코미디영화다. 차태현의 전작 '헬로우 고스트'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살짝 배신감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포스터와 예고편만 보면 단순한 코미디처럼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풍부한 영화다. 웃음도 있고, 감동도 있고, 반전도 있다. '슬로우'라는 제목처럼 '느림의 미학'도 담겼다.

"예고편을 보고 '되게 웃기게, 그럴싸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만드는 사람들은 그게 일이죠. 영화를 보게끔 하는 것. 본의 아니게 코미디처럼 홍보가 됐어요. 재미만 생각하신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어쩔 수 없는 홍보와 작품의 차이에요. '라디오스타'를 통해서 접한 분들도 코미디영화로 생각하실 수 있죠.

친구인 가수 김종국 씨도 '좀 더 웃길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아쉬워했어요. 전 '네가 감독을 몰라서 그래. 이게 최선이야. 이게 다 웃긴 거야'라고 답했죠. 그래도 지금 이 영화를 해서 다행이에요. 20대 후반이나 어렸을 때라면 이 영화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영화 속 장부의 느낌을 주지 못하니까. 친구 홍경민 씨가 영화를 보고 한 말이 있어요. '나이 드니까 좋다.' 나이가 들어서 이 작품을 제대로 할 수 있었죠."

차태현은 '헬로우 고스트'의 김영탁 감독과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전작의 '귀신을 보는 주인공'처럼 독특한 소재를 다뤘다. 빠른 상황을 느리게, 찰나의 순간까지 보는 '동체 시력'과 'CCTV'가 등장한다. '동체시력' 덕에 CCTV 관제센터 에이스가 된 여장부(차태현)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수상한 미션에 돌입하는 과정을 그린다. 여장부는 차태현의 역대 캐릭터 중 제일 독특하다. 영화 내내 선글라스를 쓰고, 말투 또한 무뚝뚝하다. 괴팍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이다. 순애보 성향만이 그간 차태현 캐릭터와 닮은 점이다.

"소재가 주는 신선함도 있고, 최근 한국영화와 다른 독특한 느낌이 있죠. 빠르고 쎈 그런 영화들이 많은데, 이런 영화가 나오면 어떨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죠.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 다행히 아직까지 나쁘다는 얘긴 못 들었어요. 업계 반응은 좋은데,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라는 걱정이 들어요. '이 영화를 어떻게 봐달라'는 말을 하기도 쉽지 않아요.

독특한 영화라 관객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예능프로그램에서 자막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 예전엔 자막 없이도 잘 봤는데, 요즘엔 다르잖아요. '익숙한 차태현'이 독특하게 나와서 '쟨 뭐야?"라는 느낌도 줄 것 같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찍을 당시에도 '뭔가 더 긴박해야 하지 않나, 뭔가 더 쎄게 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 영화에 익숙해진, 몸이 벌써 반응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지 않아서, '슬로우 비디오'만의 색깔이 나왔죠. 이 영화는 '김영탁 감독의 성장기'에요. '헬로우 고스트'보다 훨씬 잘 만들었어요. 자기 색깔은 유지하면서, 멋지게 발전했어요."

 
 
중견 배우, 나만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는다

'슬로우 비디오'의 여장부(차태현)는 반전 캐릭터다. 약하지만, 누구보다 강인한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으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산타클로스처럼,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을 안겨준다. 실제 차태현은 어떨까?

"이 영화로 뜻밖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 있어요. 엔딩 OST '보고 싶었어'를 부른 강백수라는 인디가수에요. 노래는 히트곡도 아니고, 인디가수의 앨범 수록곡이에요. 어느날 감독이 들려줬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내가 부르고 싶었는데, 감독에게 까였죠. 회식 때 강백수 씨를 만났는데, '극장에서 자신의 노래를 듣는 게 소원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계획된 일이 아닌데, 정말 기분이 좋았죠.

여장부처럼 헌신적이진 않아도, 점점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살게 됐어요. 특히 영화 작업이 그래요. 이번에 '슬로우 비디오'를 한 이유도 그런 이유가 커요. '바보'를 제작했던 팀이에요. 그때 흥행이 안 돼서, 내가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을 만큼만 흥행했으면 좋겠어요. 전작을 뛰어넘는다면 최고죠.

어릴 때는 시나리오만 보고, 다른 건 신경쓰지 않았어요. 이제는 달라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져요. '엽기적인 그녀 두 번째 그녀'(감독 조근식, 이하 엽기2)도 그런 면이 작용해요. 나이가 너무 많아서 거절했다가 결국 승낙했죠. 의리? 김보성 형처럼 의리남은 아니지만, 최대한 지키며 살려고 해요. 반응은 다양하지만, 기대감이 커요. 조근식 감독의 영화 '품행제로'를 정말 좋아해요. 조 감독만의 또다른 '엽기적인 그녀'가 나올거에요."

 
 
뻔하다면, 변신은 안하는 것이 낫다

'타입캐스팅'. 한 배우가 특정한 느낌의 캐릭터를 꾸준히 연기하는 것을 뜻한다. 조연 배우 중에 많다. 차태현은 주연급 중 보기 드문 '타입캐스팅' 배우다. '엽기적인 그녀', '연애소설', '첫사랑 사수궐기대회','파랑주의보', '바보', '과속스캔들', 차기작인 '엽기적인 그녀 두 번째 그녀'까지. 조금씩 달라도 모두 순정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착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어떤 캐릭터가 나에게 올 지 항상 궁금해요. '왜 변신을 안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안 하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어요, 스릴러영화가 많이 들어왔는데, 정말 뻔한 내용이었어요. 착하게 보이는 내가 범인이라는 누가 봐도 뻔~한 이야기요. 그런 시나리오 중에 실제로 만들어진 영화가 없어요. 빨리 변신할 수 있는 작품과 감독을 만나고 싶어요.

최근 '대체불가 배우'라는 평을 들었는데, 최고의 찬사에요. 이렇게 똑같은 역을 많이 하는 배우에게 그런 찬사를. 하하. '그렇게 코미디만 하시면 어떡해요.'라는 얘기도 많이 들어요. 배우의 길에 진리는 없어요. 배우마다 연기가 다르고, 상황도 다르죠. 일단 '대체 불가능하다'라는 얘긴 굉장히 기분 좋아요.

'관객은 차태현이 아니라, 차태현 영화를 보러 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공감해요. 나를 보러 갔다면 되게 질렸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나보다 작품이 먼저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게 배우 차태현이 추구하는 방향이에요. 전 '슬로우 비디오'로 성장했어요. 다른 장르는 아니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크게 성장한 느낌이에요. 흥행에 성공하면 자신감도 생길 것 같아요. 캐릭터에 대한 폭이 넓어졌다는 자신감? 잘 안된다면, '난 역시 코미디가 제일 나을까.'라고 돌아갈지도 모르죠."

 
 

불혹을 앞둔 '만년 소년' 같은 대체불가 배우

차태현은 곧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불혹(40세)이다. 아직도 '소년'스럽다. 순수한 첫사랑남의 느낌도 여전하다. 1남 2녀를 둔 아버지로는 보이지 않는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은,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팬' 같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차태현을 통해 잃어버린 순수함을 찾고, 위안을 받는다.

"남들이 들으면 욕할지도 모르겠는데, 동안 외모는 DNA 때문이에요. 사실 우리 엄마를 보여주면 다 끝나요. 엄마가 지난주 칠순을 맞으셨는데, 다들 깜짝 놀라요.(차태현의 어머니는 만화 '영심이'의 성우 최수민 씨다.) 액면가는 유전자의 힘이에요. 그래도 김종국 씨는 영화 보고 '너도 많이 늙었어'라고 하던데요. 동안이라 연기할 수 있는 나이 폭이 넓은 점은 정말 좋아요.

'소년'스러움의 비결?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친구들과 노는 것도 그렇고, 생활하는 것도 그렇고. '1박2일'도 큰 영향을 미칠 거에요. 예능에서 주는 이미지가 그런 면이 많죠. 힐링을 주는 배우라...그럼 난 누가 힐링을 해줄까요? 우리 아이들은 힐링을 줄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커요. 솔직히 잘 때 가장 힐링을 느껴요.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이들이 깨는 순간 '으악!' 이런 느낌이 들어요. 하하."

차태현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배우라서, 배우이기 때문에 꼭 이미지 변신을 해야할까? 변하지 않아도 좋은, '대체불가 차태현'이기에 좋은 것은 아닐까?

뷰티한국 연예팀 이수아 기자 2sooah@gmail.com   / 사진='슬로우 비디오' 차태현(촬영 백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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