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 해피런(주) 대표이사
▲ 노규수 해피런(주) 대표이사
지난 11월3일 밤 11경이었다. 나는 TV채널을 돌리다 모 케이블TV에서 방송되는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를 우연히 보게 됐다.

프로그램 명 자체가 눈길을 끌었다. 국가 원수끼리 국가 간의 현안을 놓고 의논하는 ‘정상회담(頂上會談)’이 아니고, 한국에 유학 왔거나 한국에서 생활하는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 인생의 현안을 의논하는, 정상(頂上)이 아닌 사람들의 문화적인 토론회였다.

그날 ‘회담’은 각국에서 존경받는 국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프랑스 대표 로빈 군은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1821)을,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 군은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07~1882)를, 중국대표 장위안 군은 관우(關羽:?~219)를, 캐나다 대표 기욤패트리 군은 테리 폭스(Terry Fox. 1958~1981)를 각각 자국의 영웅으로 소개했다.

그중 난 테리폭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캐나다의 영웅이라 했다.

자료를 보니 테리폭스는 실제 캐나다 국민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그가 한 쪽 발로 뛰었던 캐나다의 거리와 도로변에는 그의 동상이 속속 건립돼 있다고 한다. 고작 2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이렇다 할 영웅이 없던 나라에서, 테리폭스의 등장은 캐나다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 놓았다는 것이다.

테리폭스는 18세 때 골수암에 걸려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불편한 다리를 딛고 일어나 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22살 때인 1980년이었다. 그의 오른쪽 다리는 의족이 대신했다. 암 연구를 위한 자선 마라톤의 시작이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것을 ‘희망마라톤(Marathon of Hope)’이라고 불렀다.

그는 재깍재깍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병상에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또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희망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선 것이다.

테리폭스는 잘려진 다리에서 의족을 타고 흐르는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캐나다 국토를 달렸다. 그는 다다른 곳에서 지역주민들에게 암 연구와 암환자 재활을 돕기 위해 1달러씩 기부해달라고 말했다. 2400만 캐나다 국민들은 점점 그의 호소에 귀 기울여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곧 그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장애자들도 용기를 내어 함께 달렸다. 그러자 신문도 뛰고 방송도 뛰었다. 온 국민이 함께 뛸 정도였다.

그러나 ‘희망마라톤’은 143일 만에 한계에 다다라야 했다. 그때까지 그가 뛴 거리는 5,373km. 암이 폐까지 전이되어 중단해야 했던 것이다. 9개월 뒤 결국 테리폭스는 캐나다인들의 슬픔 속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TV로 생중계됐다고 한다. 그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는 국가적 영웅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테리폭스 건물, 도로, 공원 등이 캐나다 전국에 속속 만들어졌다.

부모들은 지금도 테리폭스를 기리기 위해 캐나다 각지에서 매년 열리는 ‘희망마라톤 대회’를 통해 어린 자녀들에게 테리폭스를 이야기하며, 그의 용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영웅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이었다. 그가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스 황제에 즉위한 것 같지만, 실제 나폴레옹은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가장 앞장서 진압한 민주시민군 부사령관 출신이었다.

그의 황제 즉위도 민주적인 방식에 의해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였다. 그가 처음 빈부귀천이나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고 투표권을 부여한 것이 오늘날 프랑스 민주주의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영웅은 150년 전 이탈리아를 통일한 가리발디였다. 그는 프랑스 침략을 받은 이탈리아의 국력을 결집시키고자 통일을 택했다. 그는 “우리 민족만이 우리나라의 주인”이라는 명연설을 통해 ‘붉은 셔츠의 비정예 독립군’을 지휘하면서 이탈리아 통일을 저해하는 기득권 세력과 프랑스를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그가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이탈리아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자신의 부귀영화에 관심이 없는 깨끗하고 용감한 애국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웅은 힘에 의한 것이 아닌, 민심에 의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영웅의 출현을 또 기다릴 것이다. 그런 만큼 영웅이 되기 위한 조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비정상회담’을 보면서 느낀 영웅의 조건은 단 하나,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와 국민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만이 공공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진리다. 영화 ‘명량’에 등장하는 이순신장군이 새삼 그리워진다. ■

글_ 노규수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에 선정.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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