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 해피런㈜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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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상징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성탄절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의 삶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여야 한다고 강조하신 ‘아기 예수’의 가르침!

예수의 말씀은 지난 2000년간 온 인류에게 축복이 된지라 크리스마스를 맞는 지구촌은 예나 지금이나, 종교가 같거나 다르거나, 피부색이 검거나 희거나 모두 모여 그의 탄생을 기리며 기쁘게 찬양하고 있다.

2000년 전 예수가 살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우리나라 역시 100년 전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겪어 잘 알지만, 그때 많은 지식인들이 일본 총독부의 감시와 친일파들의 모함으로 죽어가야 했다. 예수 역시 로마의 앞잡이들과 기득권층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예수가 유대사회를 향해 서로 미워하지 말고, 시기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강조할 때였다.

어느 날, 기득권층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웅성거리며 한 여인을 예수께 끌고 왔다. 그 여인의 죄목은 외간 남자와 간음을 했다는 것. 당시 간음한 여인은 돌로 처 죽이라는 것이 구약의 율법이었다. 그들은 예수에게 물었다.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선생이시여!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 현장에서 잡혔소. 간통 현행범이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인을 돌로 처 죽이라고 명했는데, 선생님은 이 여인을 어떻게 하라고 명하시겠습니까?”

예수가 돌로 처 죽이라고 말하든, 그러지 말고 용서하라고 말하든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말을 빌미삼아 예수를 ‘부도덕한 인물’로 트집잡고자 했다.

예수는 그런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다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썼다. 그랬더니 더 웅성거리는 것이었다. ‘무언의 대답’을 듣거나, ‘땅의 글씨’를 볼 생각 없이 그들은 말로 확실히 답해주기를 원했다. 결국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중에 죄지은 적이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이 말을 듣자 순간 조용해졌다. 곧 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둘씩 떠나가고 예수와 그 여인만 남게 되었다. 예수는 그 여인을 일으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용서는 예수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돌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1996년에 타계한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이라는 가톨릭 사제는 ‘용서’야말로 ‘위대한 사람의 증표’라고 했다.

그는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학의 교수였다. 하지만 강단을 떠난 그는 남미 페루의 빈민가와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정신박약아를 위해 봉사하는 등 평생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오직 빈민구제와 봉사, 대학 교수와 가톨릭 사제로 살아오면서 얻은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용서는 사랑을 잘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용서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용서란 ‘인간 가족’이라는 연약한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증표입니다”

장발장이 처음 감옥에 간 이유는 굶고 있는 누나의 아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죄였다.

19년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온 그가 교회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잡혔을 때, 교회 주교는 장발장을 끌고 온 경찰 앞에서 그 은식기를 자신이 주었다고 말했다. 거기에 왜 이것은 안 가져갔느냐며 은촛대를 얹어주기까지 했다. 프랑스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빅톨위고의 명작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설은 물론 영화, 오페라 등으로 널리 알려진 그 주교의 용서로 인해  절도범 장발장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를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도록 만들었다. 용서가 낳은 위대한 사랑이었다.

나는 최근 대한항공 여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접하고 우울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 나를 당혹하게 하는 것은 ‘한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지는 일부 대중들의 과격한 폭력적 모습이었다. 인터넷 댓글로 올라오는 글들 중에는 자제가 필요한 저주성 글이 너무 많았다.

물론 그 여인은 확고한 ‘갑’의 위치였다. 그래서 ‘을’에 있던 여승무원과 사무장을 윽박지르고, 이륙하려던 비행기마저 되돌리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 여인에게 당한 여승무원과 사무장의 상처는 평생의 흉터로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을’의 편에서 ‘갑’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온라인 공간과 일부 언론에서 부추기는 집단적 돌던지기는 다소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방법까지 제시하며,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나는 조금도 그 여인의 잘못을 두둔하거나 대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치유의 방법 중에 ‘징계’와 ‘용서’라는 두 가지 약이 있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용서’도 ‘징계’만큼이나 사회적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용서도 위대한 사회통합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하자는 뜻이다.

현재와 같은 집단최면의 돌팔매질 분위기에서 어는 누가 감히 “이제는 그만 대한항공 여 부사장을 용서하자”고 말 할 수 있겠는가. 남보다 더 큰 돌로 강하게 치면 칠수록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분위기 아닌가. 남보다 더 큰 목소리로 남의 잘못을 말해야 의인이 되는 사회 아닌가.

하지만 이젠 조용히 우리 자신의 허물이 없는지도 되새겨보아야 하는 2014년의 성탄절이다. 비록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바리새인들에게 끌려온 간음한 여인’에게 결코 돌을 던지지 못했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나는 친지들과 어울려 어깨동무를 하며 2015년 새해를 ‘화해와 용서’로 맞고 싶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랑은 ‘용서’라고 하기에…. ■

글_노규수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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