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 해피런㈜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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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성탄절을 맞지만, 올해는 유독 ‘가난한 예수’가 생각난다. 예수가 가난했기에, 결국 ‘가난한 예수’가 수많은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라 불려 불행했던 예수는 솔로몬과 같은 왕자님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다윗과 같은 임금님도 아니고,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회 지도층이나 지역 유지도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요셉은 톱질하고 대패질하는 사람, 그러니 예수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일 뿐이었다.

가난한 집에 문풍지만 거세다고 그가 태어난 날도 추운 겨울인 12월25일이었다. 칼바람 속에서 태어난 곳은 처마 밑이나 다름없는 마구간. 장작불로 군불을 지핀 대감마님댁 안방도 아니고, 대형병원의 산부인과도 아니었던 것이다.

‘가난한 자의 왕’이신 예수 탄생 소식을 천사들로부터 맨 처음 전해들은 사람은 들판에서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돌보던 가난한 목동들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라 예수의 부모가 아들의 출산을 기뻐하며 하느님께 바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제물인 비둘기 한 쌍이었다.

예수 스스로도 자신은 가난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안 때문인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면서 그를 따르겠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대부분 배우지 못하고, 먹고 살만한 직장도 변변치 못한데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서민 중의 서민들이었지만, 예수는 친구처럼 자신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걱정해주기에 믿음이 갔을 것이다.

그런 예수는 사회 기득권층에게는 분명한 걸림돌이었다. 자신들을 대신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고마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쌓아온 부와 명예를 위협하는 눈엣가시로 여겨 ‘제거의 대상’일 뿐이었다.

결국 예수가 일을 저질렀다. 어느 날 예수가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서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절름발이와 소경, 벙어리 등 장애인들과 병자를 예수의 발 앞에 데려다 놓았다. 예수가 그들을 다 고쳐 주었다. 군중이 이를 보고 크게 놀라 ‘이스라엘의 왕’이라 찬양했던 것이다.

예수가 ‘이스라엘 왕’의 짓을 또 했다. 예수가 제자들을 불러 “이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치려고 사흘 동안이나 나와 함께 지내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였으니 참 보기에 안 되었습니다. 가다가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 보내서야 되겠습니까?”라면서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이 그 주변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그와 함께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가진 자, 배운 자, 힘 있는 자들이 모여 예수를 걸고넘어지려는 계략을 짰다. 예수가 ‘왕’을 사칭했다는 것이다. 소위 3대를 멸할 대역적이었다. 사회질서를 흩트리는 간악한 무리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이유다.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층으로부터 견제받기 일쑤다. 가난한 자들의 인간적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사상을 의심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하지만 가난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선 사람이 있다.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그가 추구한 것은 행복이 공유되는 세상이었다. 서로 돕는 상생의 삶이었다.

유누스가 1970년대 중반에 겪은 방글라데시의 시민들은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린 돈의 이자로 갚아야 하는 생활이었다. 대부분의 시민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구조였다.

이를 안타까워 한 무하마드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의 은행에 찾아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담보가 없기 때문에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돈 떼먹고 도망가면 당신이 책임지겠느냐는 말투였다.

이를 들은 유누스는 1976년 직접 은행(그라민은행)을 설립했다. 150달러 미만의 돈을 담보와 신원보증 없이 하위 25%의 사람에게만 대출 가능하도록 조건을 걸었다. 2013년 이 나라 섬유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 80달러인 점으로 보면, 38년 전 1976년의 150달러는 아마 1년 치 연봉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빌려준 돈의 회수율은 90% 이상이었다. 부도내기 일쑤인 부자들의 회수율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최근 이 은행은 방글라데시 전국에 1,175개의 지점을 두고 1,600억 다카(약 3조 3,600억 원)를 대출하는 대형은행이 되어 있다.

‘가난한’ 예수와 ‘가난을 극복하려는’ 무하마드 유누스가 추구한 것은 바로 한국의 전통사상인 홍익인간 정신과 같은 맥이다. 그들에게 가난은 또 다른 힘의 원천이었기에 ‘행복의 나래’를 펴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사회적 변화를 모색했다.

구주가 오신 기쁜 성탄절이다.

올 성탄절에 나는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적 삶을 닮기는 어려울지라도 최소한 상생의 홍익인간 정신만큼은 다시 되새기려 한다. 3년 전 악덕 다단계판매 업자에게 속아 가난해진 사람들과 함께 ‘부활의 행복기업’을 세울 때의 초심을 더욱 다지려는 것이다.

유누스가 세운 그라민은행의 회수율이 높은 것은 가난한 대출자들이 서로 이자율을 낮추려는 상생의 자세가 작용한 것처럼 “행복(happy)은 가난한 사람들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분명 있기 때문이다. ■

글_노규수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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