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 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 해피런㈜ 대표이사
2014년 ‘갑오년’이 가고 2015년 ‘을미년’ 새해를 맞았다. 그래서 갑(甲)의 시대가 가고 을(乙)의 시대가 왔다고 한다. 그 말대로 올해부터는 돈 있고 힘깨나 쓰는 사람들의 ‘갑질’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 벽두인 1월5일은 매우 뜻 깊은 날이었다. ‘을’ 신분인 서민도 ‘갑’처럼 다단계판매업의 사장이 될 수 있다는 새바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기존 유통구조의 개혁이라고 선동한 ‘다단계판매’ 방식이 합법적으로 수용된 날이 20년 전인 1995년 1월5일이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방판법)이 새로 개정돼 공포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다단계판매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1991년 12월31일 ‘다단계판매’가 포함된 방판법을 처음 공포했고, 그를 근거로 1992년 7월1일부터 개정 방판법이 시행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1992년의 법은 다단계판매를 규제하는 제도였다. 1988년부터 국내에서 영업활동을 벌인 저팬라이프라는 일본계 자석요 판매업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암웨이 등 미국계 다단계판매 회사들이 국내에 몰려오자 정부가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에 의해 유통시장 개방 압력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다단계판매 규제법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판매 제품과 대금의 범위, 후원수당의 범위 등 일정 조건을 걸고 다단계판매를 제도권내로 수용한 것이 1995년 1월5일이었던 것이다.

당시 다단계판매 회원의 ‘신분’ 논리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간 유통상인의 개념으로 소개됐다. 독립 자영업자여서 엄연한 ‘사장님’이라고 했다.

귀에 솔깃한 말이었다. 더구나 구멍가게 하나 내려 해도 최소한 몇 천 만원(당시 금액)의 자본이 필요한데, 다단계판매는 누구나 무자본으로 할 수 있고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라면 밑져야 본전인 사업이었다.

그렇듯 1980년대 말 다단계판매라는 마케팅 기법이 국내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설명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유통혁신’ 방식이었다. 복잡한 중간유통 과정의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그 이익을 소비자에게 돌려주겠다는 발상이다.

강원도의 고랭지 배추 한 포기가 현지에서는 100원인데 소비자에게는 1,000원에 판매되는 불합리한 기존 유통구조를 개혁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에 대한 예시는 이렇다. 배추 수집상이 강원도 현지에 가서 농부로부터 밭떼기로 사서 차떼기로 전국 총판에 넘기고, 그것이 다시 지역총판, 중간 도매상, 소매상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복잡한 과정을 줄이면 소비자가 500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 논리다.

따라서 다단계판매 회원은 500원에 배추를 구매할 수 있을 뿐더러 주변 소비자들에게 배추를 판매해 이득을 올릴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기존 시장에서 1000원에 사야 하는 소비자라면 회원가입을 안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같은 논리가 모두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없는 악용 사례가 등장하고,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낸 것이 한국 다단계판매의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에도 불법 다단계판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취업을 걱정하는 20대 젊은이들에게 접근, 근거도 없는 ‘전자화폐’를 온라인 다단계판매 방식으로 거래하는 신종 수법도 등장해 주의가 요망된다.

또 얼마 전에는 해외여행을 70%나 저렴하게 해주겠다며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에게 30만원의 가입비와 월5만원의 회비를 받는 외국의 무등록 다단계업체 국내 영업이 언론의 지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그들의 논리에 쉽게 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는 ‘고랭지 배추’ 유통방식의 이름을 바꿔 ‘폴로티’ 유통논리를 펴고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중국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생산되는 폴로티 한 장 가격이 미국으로 가기 전에는 1달러이만, 미국 소비자는 35달러에 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경제학 교과서의 이론, 즉 ‘이윤율 = 총 잉여가치 / 총자본’ 등식의 모순이어서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소비자 직거래 방식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생산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비생산자본이 기생해 이윤을 앗아가므로, 소비자에게 유리하도록 이를 수정하자는 주장이다.

유식한 척 하는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소비자가격 35달러에 해당하는 현재의 ‘이윤율 = 총 잉여가치 / 총자본(총 생산자본 + 총 비생산자본)’에서 생산과정에 참가하지 않은 ‘총 비생산자본’에 속하는 사람들을 과감히 제외시키자는 것이다.

즉 미국 수입업자, 총판, 도/소매상, 물류업자, 상가점포주, 광고주들도 자신이 투여한 자산에 맞춰 수익율을 따지고 최종 소비가격으로부터 이익을 취하기 때문에 분배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비자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소비자에게 불리하므로 ‘비생산자본’을 줄이는 것이 정답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고랭지 배추’와 같이 틀린 논리는 아니지만, 대부분 무허가 다단계판매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다단계판매가 합법화된 지 이제 20년이 됐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지록위마(指鹿爲馬)’ 때문이다. 사슴을 끌어다 놓고 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무허가 불법 다단계판매를 벌이면서 합법적인 것처럼 교묘히 위장하는 사기꾼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마침 지난해 연말 2014년을 마치면서 한국의 시대상을 규정하는 사자성어로 전국 724명의 대학교수들은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고 한다. 분명히 70~80만 원짜리 사슴일 뿐인데, 700~800만 원짜리 말이라고 속이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본질(本質)을 정확히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

글_노규수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뷰티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