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 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 해피런㈜ 대표이사
가슴이 먹먹해진다. 며칠 전 양주에서 일어난 농민마트 분신자살 사건의 슬픔 때문이다. 세상 살기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희망’은 잃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연들이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딸아! 딸아! 내 외동딸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아빠 이씨와 엄마 김씨. 이 50대 부부는 부푼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토록 바라던 상권 좋은 농민마트를 경기도 양주에 차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40대 초반에 만나 늦게 결혼하고 늦게 얻은 외동딸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할 참이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양주의 농민마트 주인 김사장을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상권이 좋은 곳이라 하여 권리금도 5억5천이나 주고 마트를 넘겨받기로 했다.

마트의 월매출이 3억5천이어서 사회 통념상 권리금은 3억5천이하여야 하는데, 주인 김사장이 마트를 담보로 6억 대출을 받아준다고 하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5천만 원의 계약금을 주고 김사장과 계약서를 썼다. 5천만 원은 부부의 전 재산이었다. 보증금 1억에 권리금 5억5천이면 총 6억5천만 원이 들어가는 것이지만, 마트를 담보로 6억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니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대출금을 갚아나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약속한 6억의 대출금이 통장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권리금을 줄 때 주더라도 일단 대출금이 마트 운영계약자인 부부의 통장에 들어오고 나서 주인 김사장에게 건네지는 것이 일의 순서였으나, 그 같은 내용을 계약서에 명기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결국 6억 대출금이 김사장 통장으로 직접 들어가자 다급해진 부부는 계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계약금 5천을 되돌려 달라고 했다. 자칫 ‘덤탱이’를 쓰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인 김사장은 완고했다. 계약을 깬 것은 당신들이니 계약금을 한 푼도 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리고는 연락을 피했다.

아내 김씨는 남편 이씨에게 “양주 마트로 쫓아가겠다”고 전화를 한 후 주인 김사장을 만나 전 재산 5천만 원을 날릴 수 없다며 애걸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부를 소개해준 사람에게 소개비조로 2천만원, 마트의 밀린 임대료로 3천만원을 주었기 때문에 계약금을 내주고 싶어도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보! 나 여기서 죽을 테니 올 필요 없어요. 우리 딸을 잘 부탁해요”

엄마 김씨의 마지막 전화였다. 불안해진 아빠 이씨가 양주 농민마트로 달려갔으나, 마트는 이미 불길에 싸인 상태였다. 아내가 자신의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인 것이다. 늦게 얻은 딸을 잘 키우겠다던 온가족의 비극을 자신의 몸 하나로 모두 태우려는 듯 엄마는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그것이 지난 2월1일에 일어난 양주 농민마트 화재의 배경이라고 한다. 주인 김사장은 경찰 조사에서 “죽은 김씨와 1시간가량 충분히 대화를 나눴을 뿐 말다툼은 없었다”며 “권리금 갚을 시간을 충분히 주겠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아빠 이씨 등 안타까워하는 유족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CCTV가 화재로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김사장의 진술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결국 ‘공소권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들 부부와 같이 50대 가장들이 위기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가 갈 길을 못 찾고 방황하는 것이다. 모두 714만 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대 인구집단. 하지만 직장에서는 쫓겨나고, 자영업은 부도나는 이들의 아픔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흔히 50대 베이비부머 세대를 ‘부모’와 ‘자식’ 사이에 애매하게 존재하는 ‘낀 세대’라고 표현한다.

가정 형편상 학교 가기도 힘들어 어린 나이에 구로공단에 들어가 고향부모에 돈 부쳐준 마지막 ‘공돌이’ ‘공순이’ 세대... 결혼하여 못 먹고 못 입으며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치랴 노후대책도 없는 빈주머니 세대... 부모에게 효도했지만, 정작 자신의 자녀들은 효도가 무엇인지 알 필요조차 없다는 듯 모두 출가외인이 되어 떠나버리는 외톨이 세대...

하지만 ‘돈을 벌어야’ 그나마 남은 인생을 자식들 눈치 안보고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자영업이다. 그것이 우리시대의 어두운 현실 문화다.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집 한 채이거나 전세돈, 퇴직금이 전부. 이를 밑천삼아 김밥집 튀김집 치킨집 칼국수집 삼겹살집을 열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손발이 부르트도록 생업전선에 나서는 것이 이들이다. 또 더러는 불법 다단계판매의 유혹에 넘어가 전재산을 날리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2014년 부도를 낸 자영업자의 80%가 베이비부머 세대를 포함해 50대 이상이라고 한다. 작년 8월을 기준으로 50대 이상의 자영업자는 409만4천명. 1년 사이에 6만 명이 더 자영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전체 자영업자의 57.6%가 50대 이상. 청년창업이니 30~40대 창업이니 말을 하지만, 실제는 열 명중 여섯이 50대 이상이라는 것이다.

“내가 죽어도 가족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평생 가족 하나만을 보고 살아온 이들. 그래서 자식들에게 손 벌리며 살고 싶지 않아 생업전선에 나서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지난 살아온 세월을 믿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준비부족과 과당경쟁이라고 한다.

경험이나 특별한 노하우도 없이 몇 억 보증금과 권리금, 몇 천 프랜차이즈 가맹비와 인테리어비를 주고 가게를 열면 손님은 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게 만만치 않은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연착륙할 수 있는 사회적인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한 때다. 하지만 경제논리보다는, 이들의 인생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적 논리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

글_노규수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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