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20주년 기념 특별공연 프레스콜 개최…세월이 무색한 OB 연기력 ‘눈길’

 
 
세월이 흐르면 더 맛있어지는 장맛처럼 사람도, 연기도, 연극도 한층 더 진해지고 맛있어진다. 하지만 장도 어떤 그릇에, 어떻게, 어떤 시기에 담기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듯 사람도, 연기도, 연극도 어떤 무대에서 어떻게 어떤 시기에 담기느냐 따라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변해야 하는 것도 있고, 변한 것도 있지만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변했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고, 세월은 흘렀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첫사랑이고, 누군가에게는 어떤 시간이고, 그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사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느 순간, 다시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이것을 ‘감동’이라고 말한다.

2016년 1월 27일 오후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시 만난 연극 ‘날 보러와요’는 그렇게 과거에서 현재로 왔고,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감동으로 기억된다.

스무살의 ‘날 보러와요’가 열 살의 ‘날 보러와요’를 만났을 때...

 
 
 
 
1996년 2월 극단 연우무대에 의해 문예회관소극장(현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초연된 연극 ‘날 보러와요’가 2016년 2월 다시 우리를 찾아 왔다.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더 유명해진 연극 ‘날 보러와요’가 대학로 소극장을 벗어나 명동의 대형공연장에서 첫 공연을 올리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 20주년 기념 공연은 20년전 초연 당시 무대에 올랐던 초기 멤버들이 OB팀으로 10년전부터 바통을 이어 받아 무대에 오른 YB팀이 함께 무대에 올라 의미를 더했다.

스무살의 청년과 열살의 소년이, 혹은 20년전 서른살이었던 배우가 나이 오십이 되어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이다.

1월 27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진행된 프레스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OB팀 중 한명은 ‘감동’이라고 표현했고, 어떤 이는 ‘동창회’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이는 ‘고맙다’고 했다.

그만큼 수많은 배우들과 스탭들이 무대는 달랐지만 연극 ‘날 보러와요’로 울고 웃었던 시간이 어느덧 20년이 지난 것이다.

물론, 연극 ‘날 보러와요’는 이날 프레스콜에서 질문을 던졌던 어느 기자의 말처럼 최근 이슈가 된 1988의 유쾌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옛 이야기다.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잔혹한 사회상이, 잘못된 정부 시스템이, 안타까움을 남기기 때문이다.

▲ OB 연출 김광림
▲ OB 연출 김광림
▲ YB 연출 변정주
▲ YB 연출 변정주

그럼에도 연극 ‘날 보러와요’가 20년 동안 관객들에게 사랑 받아 온 이유는 초연부터 10여년간 연출을 맡은 작가 김광림의 말처럼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작품에만 있지 않다. 그동안 수 많은 배우들이 연극 ‘날 보러와요’를 거쳐 갔고,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사의 대표 명사로 자리 잡은 권해효는 물론 김형사에서 조형사로 옷을 바꾸어 입은 김뢰하, 용의자 김우철에서 김반장이 된 이대연, 오랜시간 용의자로 불리던 류태호, 그리고 송새벽, 박광정, 정은표, 차순배 등 수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이 무대를 거쳐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20년전 배우들과 10년을 이어 온 신구 배우들이 한 무대에 올라 선보이는 무대는 배우들에게도 큰 의미를 갖는 이른바 추억이다.

무대의 처음을 장식하는 OB팀으로는 이대연, 권해효, 김뢰하, 유연수, 류태호, 이항나, 공상아, 차순배가 나섰고 YB팀으로는 손종학, 김준원, 이원재, 김대종, 이현철, 우미화, 임소라, 양택호, 황석정, 이봉련이 20년 기념 공연을 함께 한다.

OB팀과 YB팀이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서 진행된 27일 프레스콜 무대는 같은 작품이지만 같은 역할의 다른 배우들을 보는 재미를 더했고, 다른 조명과 다른 음악이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서정미를 주었다.

권해효의 선굵은 김형사와 조금은 부드러운 김준원의 김형사가 달랐고, 부드러운 이대연의 김반장과 날이 선 목소리의 손종학이 선보인 김반장이 달랐다.

 
 
그리고 신구의 조화는 조금은 단절되어 있었지만 20년이란 세월 동안 앞의 10년과 뒤의 10년을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그 단절된 거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기자간담회에서 연출 김광림은 “20여년 동안 날 보러와요 대본은 많은 연출과 배우들을 거치면서 틈들이 메워지면서 10여번 변해왔지만 여기가 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번 무대는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봐 정인규”로 시작되는 김형사의 절정에 달하는 대사가 지난 20년 동안 새로운 살들이 더하기 빼기를 반복했던 것처럼 또 다른 연출과 배우와 무대에서 수 없이 변해 갈 것이다.

서릇 셋 권해효가 쉰둘 권해효를 만났을 때...

 
 
연극 ‘날 보러와요’는 배우 권해효를 대표하는 연극 작품 중 하나다. 그런 그가 30대에 섰던 무대를 50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 감동은 그가 프레스콜 행사에서 보여준 웃음만큼 감동으로 기억된다.

이는 비단 권해효라는 배우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초연 무대에 김형사로 올랐던 김뢰하에게도 가장 오랜 시간 무대에 올랐던 유연수에게도 그리고 이 무대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그 감동은 그대로 전달된다.

연극은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준다. 작품 자체로, 또는 음악으로, 조명으로, 혹은 연기자의 열정으로, 땀으로. 무대 위에 배우들의 숨소리마저 관객들의 가슴을 적실때가 있다.

 
 
프레스콜에서 본 감동은 분명하다. 무대 위에 배우들이 즐거워 보였다. OB팀의 무대에서는 들뜬 그들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배우들도 분명 나이를 먹었지만 그들이 열정은 여전히 뜨거운 것이다.

또한 그들은 연륜이란 것이 배려와 자연스러움을 갖게 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오랜만에 오른 무대임에도 오랜 무대 생활로 그들의 동선은 자연스럽게 흘렀다. 너무도 편안하게 흘러간 무대였다.

많은 배역이 오른 간담회 무대, 뒷줄에 앉아있던 김형사 역의 김준원이 기자의 질문을 받기 위해 일어난 순간 그를 위해 앞자리를 비켜 주던 선배들의 모습에는 배려와 함께 여유마저 느껴졌다.

OB배우들에게 20주년 기념 공연은 일종의 축제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축제는 무대 위에 그들만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도 축제가 될 것이다.

 
 
나이도, 세월도 잊은 특별한 무대. 지금은 기억 하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이야기를 별개로 하더라도 변정주 연출의 말처럼 “교과서 같은 작품”인 날 보러와요를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아쉬운 것은 20년 세월을 넘나드는 공연이 한 달여만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이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까. 90년 중반 대학로를 오갔던 이들이라면 꼭 한번쯤 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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