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일본에 전하고자 했던 홍익인간 사상을 통해 우리도 일본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 <사진=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 <사진=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만일 정치인 중 누군가 한 사람이 앞장서서 “일본을 배우자”고 외치고 나온다면 세간의 반응이 어떨까?

아마 모르면 몰라도 인터넷에서 악플러들에게 시달림을 당할 것은 물론 일부 언론으로부터는 ‘친일 매국노’라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독도문제, 위안부문제 등으로 국민감정이 예민해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 총칼에 맞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3.1절이 올해 97주년이다. 그동안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며 한국과 일본은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가깝고도 먼 나라’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침략의 피해자인 우리의 상처가 더 크고 깊은 셈이다. 아직도 아픔은 살아 있어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3월1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프로축구 한일전에서 한국의 FC서울이 일본의 산프레체 히로시마에 4-1 대승을 거두자 국내 언론의 보도 제목이 남달랐다.

어느 신문은 “FC서울, 3·1절 승리로 일장기 울렸다”고 했다. 또 어느 신문은 “FC서울, 3·1절 히로시마전 4-1로 대승… 일장기 내렸다”고 썼다.

담당 기자가 굳이 ‘일장기’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아마도 3월1일 삼일절 태극기와 대비시키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경기 후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기자 회견에서 “의미 있는 삼일절에 국민에게 작은 위안을 전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렇듯 어느 경기에서나 한일전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선수들이나 코칭스탭을 압박하고 있다. 관전하는 국민들 역시 일본에 지면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이 “왜 졌느냐?”고 선수들을 몰아세우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한일 관계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1909년10월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유언이 바로 “일본과 서로 도와야 한다”는 한일 간의 평화와 홍익인간 사상이었다.

안 의사는 한중일 동양 삼국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죽기 열흘 전부터 쓰기 시작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에서 한·중·일 세 나라가 서로 협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안중근 의사가 제시한 상호 이해와 협력 방안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문제 등이 포괄적으로 망라되어 있다. 그중 가장 필자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바로 경제 분야다.

우선 안 의사는 “원활한 금융을 위해 삼국 공동의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생각이다. 요즘으로 치면 ‘EU(유럽연합)’의 정책개념과 비슷하며, 더 나아가 한중일 FTA가 추구하는 공동시장의 금융모델과 같은 셈이다.

안 의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경제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양평화론’에 “한국과 청국 두 나라는 일본의 지도 아래 상공업의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기록했다. “두 나라는 일본과의 경제적 격차를 인정하고, 먼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게서 경제를 배우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 자칫 ‘친일파’로 매도당할 수도 있는 판국이다. 하지만 선각자였던 안 의사는 당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입장에 있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을 마지막 유언장과 같은 ‘동양평화론’에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안 의사는 비난받지 않았다. 그가 뤼순 감옥에서 목숨을 내던지며 민족 앞에 제시한 ‘동양평화론’이 바로 우리 민족이 추구해온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이 서로 돕고, 서로를 이롭게 하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평화의 길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당시 그의 동양평화론을 무시했다. 안 의사가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 1909년3월15일부터라고 한다. 사형수인 안 의사는 자신이 동양평화론을 마칠 때까지만 사형을 연기시켜 달라고 간청했고, 그의 요구를 일본이 수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고작 열하루 만인 3월26일 사형을 집행했다. 안 의사가 구상한 동양평화론의 <1. 전감(前鑑)> 편만이 쓰여졌을 때다. 목차 순서대로 하면, 그는 조금 더 살아서 <2. 현상(現狀)>, <3. 복선(伏線)>, <4. 문답(問答)> 편을 쓸 예정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이제 가고 없다. 하지만 그가 동양평화론을 통해 일본에 전해주고 싶은 홍익인간 정신은 우리에게 남아 있다.

세월은 가도 그의 유업은 남아있는 것... 동양평화를 위해, 그리고 동양 삼국의 발전을 위해 그가 실천하고자 했던 홍익인간 정신을 이제 후세들이 일본에 전해줄 때다. 그것이 바로 서로가 잘 살기 위한 화평의 길이다.

▶글_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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