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못 일어날 경우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것도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 노규수<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 노규수<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사랑하는 친지 여러분!

오늘은 친지 여러분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로봇다리 수영선수’로 불리는 김세진군 때문입니다. 그는 올해 열아홉 살로 서울시청 소속의 장애인 수영선수입니다.

여러분들도 보도를 통해 들으셨을 테지만, 김 군은 무형성(無形成) 장애인입니다. 선천적으로 오른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없습니다. 왼쪽 다리는 발목 아래가 없습니다. 또 오른 손도 완전하지 못해 손가락 두 개만 있습니다.

그런 그를 국제장애인수영대회의 금메달리스트로 키운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8월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올림픽 수영 10km부문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그는 지금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출전권이냐고요? 아닙니다. 정상인과 대결하는 정식 올림픽 출전권입니다. 장애인도 6월에 포르투칼에서 열리는 국제수영연맹 주최 수영대회에 나가 9위 안에 들면 올림픽 출전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친지 여러분!

김군 어머니의 눈물겨운 도전은 세진이가 네 살 때부터였고, 노력의 결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열세 살 때부터였습니다. 세진이가 이를 악물고 연습한 결과 2009년 영국 세필드 장애인수영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세 개를 따내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때 김군은 아시아 유일의 참가 선수였습니다. 엄마는 세진이가 물속에서 부력으로 의족 없이도 설 수 있는 모습을 보고 수영장에 자주 데리고 갔었고, 그래서 수영선수로 키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7년 전 세필드에 나타난 아시아 유일의 한국 출전선수단은 초라했습니다. 코치라는 엄마는 당연히 실제 수영전문가도 아니고 감독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모든 출전 경비는 자비부담이었습니다. 그들 모자는 작은 휠체어 손잡이에 태극기 하나를 꽂고 등장했던 그들만의 국가대표였던 것입니다.

거기서 세진이는 한국 대표로 당당히 금메달 세 개를 땄습니다. 2013년엔 열여섯의 나이로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과에 최연소 학생으로 입학했고, 이듬해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계영 400m에서 은메달을 땄습니다.

하지만 어린 세진이를 처음 수영장에 데리고 갔을 때부터 엄마는 세상의 편견과 싸워야 했습니다. 다른 정상인 아이 엄마들이 세진을 보고 수영장이 세균으로 오염될 수 있다며 자기 아이들을 다른 수영장으로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엄마는 혼자 이를 악물며 울어야 했습니다. 그 후 세진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의족을 달아주고, ‘넘어지는 법’부터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방안에 이불을 두껍게 깔고 수천 번을 넘어뜨리며 의족에 익숙하도록 했고, ‘일어서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도록 했습니다.

사랑하는 친지 여러분!

세진이는 생후 5개월 만에 친부모에 의해 버려진 장애아였습니다. 지금의 엄마 양정숙씨(47세)가 보육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을 때 자기만 보면 생글생글 웃는 세진이를 보고 입양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후 엄마는 ‘나쁜 엄마’가 돼 세진이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SNS를 통해 다음과 같은 ‘나쁜엄마 고발장’이라는 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세진이를 혼자 걷게 하려고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무한 반복시키다 아이 울음소리를 들은 이웃의 신고에 맞서 경찰까지 출동시킨 ‘나쁜 엄마’... 서너 시간 이상 걸리는 수술을 위해 아이를 여섯 번이나 수술실에 넣은 ‘나쁜 엄마’...”

“입원하는 동안 아이가 잠들면 대리운전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나쁜 엄마’... 레스토랑에서 세진이를 보고 불쾌하다며 자리를 옮겨달라는 말에 세진이를 목마 태운 채 기어서 식당을 나온 ‘나쁜 엄마’...”

그렇게 세진이를 가슴으로 낳은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로 인해 이혼까지 감수해야 했습니다. 아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8살에는 마라톤 완주를 시키고, 9살에는 로키산맥을 함께 등정했습니다.

그런 돌봄과 수술비, 교육을 감당하기 위해 엄마는 유일한 재산인 집까지 팔아 월세방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리운전, 파출부 등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복 누나까지 아픈 동생을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진이의 성장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지 여러분!

우리가 5년 전 모여 외쳤던 비전은 홍익인간의 나라였습니다. 함께 힘을 합쳐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자는 뜻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전 터진 이웃나라 일본의 구마모토 지진에도 구호성금을 보낸 바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김군이 올림픽에 당당히 출전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우리 주변에 바로 서지 못하고 넘어지는 사람들을 향해 따듯한 ‘입양의 손’을 내밀었으면 합니다.

김군의 어머니는 입양한 아들이 어릴 적 넘어져 울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진아! 걷는 것? 중요하지 않아. 네가 걷다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해. 혹여 못 일어날 경우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것도 용기있는 사람이야”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 양정숙씨. 그를 통해 우리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줄 알고, 잡아 줄 줄 아는 ‘입양의 사회’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어느 한 사람을 가슴 속에 입양시켜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꿈꾸는 홍익인간의 나라일 것입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필자 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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