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얼마 전 온라인을 통해 중국에서 개발·생산됐다는 'AL 슈퍼 워터 마스크'를 구매했다. 써보니 괜찮더라는 지인의 추천이 있었던 데다 정식 판매되는 제품은 아니었지만 블로그나 SNS 메신저를 통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터라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제품을 받고 보니 사용이 꺼려졌다. 제품명의 일부 영문을 제외하곤 온통 중국어인 탓에 무슨 성분이 들어있는지는커녕 어디서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마스크팩을 차마 자신의 얼굴 위에 올릴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A씨는 "한글 라벨도 없는 중국산 화장품이 유통되고 있다"며 관련 사실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전화로 알렸다. 이에 대한 식약처 상담센터의 답변은 "제품은 사용하지 말고 신고는 경찰에 하라"였다. A씨는 "이런 제품이 더 이상 확산돼선 안 될 것 같아 평소 화장품을 관리하는 곳이라 생각했던 식약처에 전화를 했는데 경찰에 신고하라는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와 난감했다"고 말했다.

(본지 6월 29일자 보도 : 박신혜팩? 김수현팩? 정체불명 화장품의 수상한 마케팅)

# 한글 라벨 없는 이상한 화장품

국내 화장품법은 화장품을 제조 또는 판매하기에 앞서 일정 요건을 갖춰 식약처장에 제조업 혹은 제조판매업 등록부터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화장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또 제조업자 및 제조판매업자의 상호와 주소를 제품명, 가격, 제조번호, 사용기한, 주의사항 등과 함께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정확히 기재·표시해야한다고 못 박고 있다. 일단 한글 설명 라벨이 붙어있지 않은 화장품은 아예 제조판매업 등록조차 하지 않은 채 불법 수입된 제품으로 의심해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만약 제조판매업 등록 절차 없이 화장품을 수입·유통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이러한 처벌 규정에도 불구하고 간혹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화장품이 국내에 유입돼 암암리에 판매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이번 'AL팩'이 바로 그런 사례다.

# 제보도, 경찰 신고도 소비자가?

그렇다면 이같은 불법 수입 화장품은 어디에 알려야할까? 식약처 설명대로라면 경찰이다. 식약처에는 불법 제품을 수사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A씨처럼 소비자들은 화장품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주무부처인 식약처부터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서울시 민원서비스인 다산콜센터 또한 "불법 유통 화장품을 신고할 곳을 알려 달라"는 기자 질문에 식약처 종합상담센터와 서울지방식약처 의료제품안전과 전화번호를 안내해줬다. 규정과는 별개로 전반적인 인식과 국민적 상식은 불법 화장품 관리의 책임과 권한이 식약처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약처의 입장은 확고하다. 제보나 다름없는 소비자 민원에도, 관련 사실에 대한 취재에도 경찰에 신고해야한다는 답변만 일관적으로 내놓고 있다. "소비자 제보가 있었다면 식약처가 경찰에 고발해도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식약처 대변인실 관계자는 "권한 밖의 일이다"며 "그러다보면 ‘깔때기 효과’가 일어난다"고 일축했다. 문맥 흐름 상 신고 업무까지 하다보면 식약처의 일이 지나치게 많아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식약처 훈령에는 “제조판매업 미등록은 고발 대상”

문제는 이같은 입장이 규정도, 원칙도 아니라는 점이다. 2013년 9월 30일 개정된 '식품의약품안전처 훈령 제49호'는 화장품법을 비롯해 식약처 관련 법률 위반행위에 관한 고발 기준과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식약처, 지방식약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 소속된 공무원이 수행하는 식품의약품 등의 벌칙 규정에 관한 업무에 적용되는 이 훈령에는 '식약처장에게 등록하지 않고 화장품 제조업 또는 제조판매업을 영위하는 자'는 형사소송법 제234조에 따라 고발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있다.

훈령도 훈령이지만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식약처의 이번 사건 관련 대처는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게 중론이다.

모 화장품기업 관계자는 "제보자가 처음부터 경찰에 신고했다면 더 좋았을 수 있지만 식약처에 알린 것만 해도 훌륭한 시민의식을 발휘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식약처 업무가 아무리 과중하다 해도 불법적으로 화장품이 유통되고 있음을 인지했으면서도 수사 의뢰를 제보자에게 맡겼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화장품의 안전성을 강조해 온 식약처의 대처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고 꼬집었다.

한편 식약처는 온라인 모니터링을 통해 블로그 등에 게시된 AL팩 판매글 10여개를 관계기관에 요청해 차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제품의 판매글이 여전히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는 데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어 보다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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