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읽다 졸리면 책을 베개 삼아 낮잠으로 더위를 식혀도 좋다. <소나기>와 같은 첫사랑의 추억이 꿈에 나타날 수도 있을 테니까..

장마가 언제 왔던가? 하지만 기상청 예보는 올 장마가 벌써 끝자락이란다. 오늘 아침 서울 경기 지방에 비가 내렸지만, 올 여름의 강수량은 크게 부족할 전망이다.

필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와 그 뒤에 나타나는 무지개를 좋아한다. 더위를 식혀주는 한여름 소나기는 그 자체가 청량제가 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서울에서 무지개를 본 기억이 언제인지 가물가물 하다.

소나기는 뜨거운 아스팔트와 바쁜 일상의 열기를 식혀준다. 분주히 길 가던 순간 소나기를 피해 지하철역사 입구로 뛰어들면, 비구름 너머 한강변 고향마을 풍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느티나무 그늘 밑에서 무더위에 부채질하던 정다운 옛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려지는 아련한 추억이 여름 소나기의 선물이 될 듯싶다.

“소년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며칠째 소녀는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소녀는 물속에서 건져낸 하얀 조약돌을 건너편에 앉아 구경하던 소년을 향하여 ‘이 바보!’ 하며 던졌다. 소녀는 갈밭 사잇길로 달아나고 한참 뒤에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갈꽃 저쪽으로 사라져갔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풍경이다. 이성에 눈떠가는 사춘기 소년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감정이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작품. 도회지에서 내려온 소녀와 시골마을 소년은 그렇게 만났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수숫단 속에서 함께 비를 피하게 된다. 비가 그친 후 소년은 물이 불은 개울물을 소녀를 업어 건네주었다. 그 뒤 며칠 만에 소녀는 핼쑥한 얼굴로 개울가에 나타났다. 그 날 소나기를 맞은 탓으로 앓았다는 것이다.

소년이 보니 그 소녀의 분홍 스웨터 앞자락에는 소년의 등에 업혔을 때에 묻은 검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대추를 건네주며 다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시골마을을 떠나게 된 것. 소녀가 내일 이사간다는 날 밤, 소년은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초시댁두 말이 아니어.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버리구.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가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구….”

올 여름 <소나기>는 그리 많이 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7월17일의 초복에 이어 27일의 중복도 지났다.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여름... 하지만 8월16일의 말복이 지나면 금년 더위도 서서히 식어갈 것이다.

복날 보양식을 먹던 풍습은 중국 진나라 이전부터 내려오던 동양의 식문화였다. 한나라 때는 “복(伏)이라고 한 것은 음기가 양기에 압박되어 상승하지 못해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뜻으로 복일(伏日)이라고 이름한 것”이라 기록돼 있다고 한다.

더위로 음양의 균형이 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무기력해지고 허약해질 수밖에 없어 영양을 보충해야 한다는 논리다.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 만큼 못 먹던 시절의 얘기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영양과잉이 문제다. 일부 국가에서는 너무 먹어 뚱뚱한 사람들에게 비만세까지 물리고 있다. 그런 만큼 살을 빼려는 다이어트가 하나의 산업이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니 더위를 이기겠다고 너무 보양식에 얽매이지 않기를 권한다. 보신탕이나 용봉탕, 삼계탕도 좋겠지만, 그 음식들 이상으로 우리는 평소에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정신의 영양이다. 출판계가 불황이라고 할 만큼 2000년대 들어 책을 읽는 독서인구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정보에 빠진 결과다.

하지만 ‘검색어’를 통한 읽기로는 정신영양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번 여름휴가에는 <소나기>와 같은 문예소설을 한 두 권쯤 읽어보면 어떨까. 아마도 더위에 치친 심신에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책을 읽다 졸리면 그냥 자도 좋다. 책을 베개 삼아 휴가철 낮잠으로 더위를 식히는 것도 제법 그럴듯한 호사가 될 것이다. <소나기>와 같은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이 꿈에 나타날 수도 있을 테니까.

▶필자 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뷰티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