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가 독립운동에, 이정보가 정치안정에, 소동파가 민생경제를 위해 좀 더 인간의 향기를 풍겼더라면…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뭐니뭐니 해도 가을의 꽃은 국화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국화를 소재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 중에서도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시 ‘국화 옆에서’는 국민 시라 일컬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내리고 /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아무리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 시다. 봄에 처절하게 우는 소쩍새, 여름에 치는 우레와 천둥, 가을밤의 무서리가 인생의 시련이라면, 아름다운 젊음을 보내고 거울 앞에서 자신을 돌이켜 보는 누님의 모습은 가히 인간미의 완성이다.

그것이 서정주가 바라보는 국화 인생이다. 그래서일까. 늦가을의 무서리를 이겨내고 주위에 향을 발산하는 국화를 일컬어 ‘유일한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표현한 사람이 있다. 조선 영조 때의 인물 이정보(李鼎輔. 1693~1766)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三月春風) 다 지나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오상고절이란 나뭇잎이 다 떨어진 추운 겨울날이나 서릿발이 심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이다. 시조에서는 ‘국화’를 지칭한 말이지만, 실상은 이정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 비유다.

이 시의 모티브는 “국화는 시들어도 서리가 내린 추위를 견딜 가지는 남긴다”는 국잔유유오상지(菊殘猶有傲霜枝)라고 한다.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 1036~1101)의 다음과 같은 시 구절이다.

“花晝己無擎雨蓋(화주기무경우개)
    연꽃이 다 지니 내리는 비를 떠받칠 덮개가 없고
菊殘猶有傲霜枝(국잔유유오상지)
    국화는 시들어도 서리가 내린 추위를 견딜 가지는 남았네
一年好景君須記(일년호경군수기)
    일 년 중 좋은 경치를 그대 모름지기 기억하시게
橙正是黃橘綠時(등정시황귤녹시)
    등자(오렌지)가 황금색으로 귤이 황록색으로 물드는 계절을”

소동파는 조정의 정치를 비방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는 죄로 황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이 때 농사짓던 땅을 동쪽 언덕이라는 뜻의 ‘동파’로 이름 짓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이 같이 아름다운 국화 시를 후세에 남기긴 했지만, 소동파나 이정보의 정치적 행위는 기득권층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것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결코 힘없는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소동파가 비방했다는 조정의 정치는 왕안석이 기안한 신법(新法)이다. 왕안석은 당시 전체 토지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세금 한 푼 안내는 사대부와 지주들의 독점경제를 시정하고자 했다.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이들 지배층이 송나라의 모든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소동파 역시 기득권층이다 보니 왕안석이 주장한 개혁정치에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신법이 백성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명분이었다.

이정보 역시 자신 스스로를 오상고절이라 했지만, 영조의 탕평책(蕩平策)에 반대하는 시무십일조(時務十一條)를 상소했다가 면직됐다. 당시 조정은 사색당파가 얽혀 날만 새면 서로 싸우는 소리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할 때였다.

영조의 탕평책은 노론 소론 남인 북인 가릴 것 없이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론을 영의정에 앉히면 좌의정은 소론으로 하는 등 균형을 맞추면서 각 파당내의 강경론자들을 배제하고 탕평론자들에게 정치를 맡기려 했다.

조선의 후기 문예부흥을 이끈 영조의 탕평책을 노론인 이정보가 왜 반대했는지는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노론의 집권을 연장하기 위한 것 아니었겠느냐는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당 서정주 역시 친일파로 비난받고 있다. 일제 징용 찬양시를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셋은 모두 국화를 닮고자 했다. 그래서 어지러운 세상에 국화 한 송이를 빌어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전하려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염되지 않은 가을 국화의 향이다. 서정주가 독립운동에, 이정보가 정치안정에, 소동파가 민생경제를 위해 좀 더 인간의 향기를 풍겼더라면, 올 가을 국화를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더욱 편안했을 것이다.

필자 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뷰티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