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가도 가족은 남는 법.. 죽음은 남은 가족을 세상과 연결시키는 또 다른 만남의 끈이다.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한 달 전인 10월말 44세의 유명 영화배우 김주혁 씨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함으로써 그를 아끼는 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또 지난 4월 초순에는 탤런트 김영애 씨가 향년 65세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떴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진시황 같은 천하제일의 왕후장상(王侯將相)이든, 막걸리 한 잔에 취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든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공평하게 적용되는 삶의 원칙이다.

그래서 일까? 필자가 잘 아는 언론인 A기자는 자신의 부모님을 빗대어 인간의 죽음에도 음(陰)과 양(陽)의 구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부모님은 젊은 시절 아버지의 바람기로 자주 다투셨다고 한다. 그러다 어머니가 환갑이후부터 치매기를 보이자 아버지는 10여년 넘게 어머니 치매병간호에 극진하게 매달리셨다.

지난 1999년에는 치매 어머니의 병원 통원을 위해 75세 연세에 운전면허를 따시고, 아들이 마련한 자가용차를 직접 운전하며 병원에 가셨다.

하지만 그 기간은 고작 두 달... 허리가 자꾸 쑤신다는 아버지를 모시고 A기자가 병원진단을 받아보니 혈액암 판정이 나왔고, 세 달 만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불행 중 다행인지 치매 어머니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홉 달 만에 73세로 타계하시게 됐다.

A기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중증 치매에 걸린 아내를 고치기 위해 안기도 하고 업기도 하면서 대중교통으로 전국의 ‘용하다’는 대학병원, 한의원, 침뜸 전문병원 등을 두루 찾아다니시더니... 10여년의 병간호에 지치셨는지 당신이 아내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가셨기 때문이다.

처음에 아버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르셨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셨기에 A기자가 의사에게 아버지의 병을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당의사가 그 비밀약속을 깼다. 의사가 아버지에게 혈액암으로 석 달의 한시적인 삶만 남아 있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병원에 들이닥친 A기자는 의사에게 싸우듯이 달려들었다.

“당신이 의사야? 돌아가실 때 돌아가시더라도 살아계실 때만큼은 삶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거친 항의를 받자 의사는 A기자를 병원 비상구 난간으로 불러내더니 담배를 꺼내 피우며 말하더라는 것이다.

“환자에게 시한부 삶을 말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나쁜지에 대한 선택은 우리 의사들의 딜레마입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부친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긴 여행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3박4일 동남아 여행을 가도 준비할 것이 많고...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도 빼먹는 것이 많은데, 저 세상으로 가는 긴 여행에는 챙길 것이 더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가 의사로 있으면서, 부모님이 임종하시는 그 자리에서조차 자식들이 유산문제로 멱살 잡고 싸우는 모습 많이 봤습니다. 살아계실 때 정리하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평소 섭섭해 하시던 분들과도 화해하신 후 먼 길 떠나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말씀드렸습니다.”

A기자는 의사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깊은 뜻에 감사인사까지 했다. 의사로부터 예견치 못한 선고를 받은 아버지는 1주일 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더니 서서히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됐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A기자의 아버지는 여행길을 준비하셨다. 가장 먼저 동생 내외를 불러 형의 실수로 종토 분배과정에서 누락된 사실에 양해를 구하고, 어느 어느 땅은 너의 이름으로 유산 상속하겠노라고 통보하셨다.

아버지는 4남매 자녀들에 대한 유산도 잡음이 없도록 적절히 분배하셨다. 비상금으로 간직하셨던 3500만원의 비밀 예금은 자신의 장례비조로 외아들인 A기자에게 내놓으셨다. 일가친척은 물론 친구들도 하나하나 불러 그동안 섭섭한 점이 있었다면 용서해달라는 화해와 양해의 말씀도 하셨다.

이후 아버지는 정말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겠노라고 A기자에게 말씀까지 하시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가신 아버지에 대한 일기친척, 주변의 평가는 칭찬 일색이었다.

A기자는 탤런트 김영애 씨나 아버지 같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다행스런 양(陽)의 죽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생을 스스로 마감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그래서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배우 김주혁 씨가 겪은 교통사고나, 어머니와 같이 의식없는 치매환자의 경우를 ‘안타까운 음(陰)의 죽음’이 될 수 있다고 애석해한다. 이별을 스스로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무도 죽음의 여행길을 비켜갈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가족 등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그 여행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건강도 스스로 챙기게 된다. 그것이 웰빙(well-bing)에 대비되는 웰다잉(well-dying)의 길이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긴다는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이라는 고사처럼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길... A기자는 아버지가 죽음을 준비하신 일로 인해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대를 잇는 공동체가족의 인생인 셈이다.

◇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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