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조국근대화의 역군들이 나라를 잘살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들을 위해 ‘가방모찌’를 해야 할 차례입니다.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청년실업이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제조업 하시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생산현장 인력을 도저히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농촌도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농사도 지을 수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래서 외국 근로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군요. 대신 임금은 한국인보다 적게 주어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서 막노동이라도 해서 돈을 벌겠다고 몰려오는 세상이니, 한국 참 대단한 나라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을 치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대부분 대졸 학력자들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어서 그럴까요? 

요새 우리 젊은이들은 3D업종 근처에도 안 간다고 합니다. 소위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직종을 말합니다. 여기에 멸시(Despise)당한다고 믿는 직업까지 합쳐 요즘은 4D시대라고 한대네요. 

한국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한․중 국교수립 영향으로 한국의 국가적 지명도가 높아진 이후, 중국의 실업률이 크게 증가한 1995년부터라고 합니다. 

그 당시 중국의 노동가능 인구 8억 명 중 18.57%에 이르는 1억5,000만 명이 일자리가 없어 빈둥빈둥 놀고 지내는 처지였다는 군요. 당연히 큰 사회문제가 됐겠지요. 

그래서 연변 조선족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먼저 한국으로 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이 통해서 좋았고... 우리 측에서는 일제를 피해 만주지역으로 이주해간 동포들의 귀환이라는 민족적인 이유 때문에 환영하게 됐던 것이지요. 

이후 이들이 중국 한족까지 초청하게 됐고, 동남아 사람들도 한국의 노동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 우리나라가 겪은 가난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이지요. 

제가 어릴 적 살던 서울 광진구 한강변 마을에도 북한의 꽃제비 같은 거지들이 참 많았습니다. 나이가 대부분 형뻘이어서 그들에게 밥도 퍼다 주고, 밭에서 오이를 따다 보리밥에 비벼먹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는 그들의 ‘가방모찌’(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는 사람) 일도 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거지 노릇이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할 처지였습니다. 물론 나이도 아직 어렸지만, 일 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었습니다. 편의점 알바 자리는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지요. 누가 데려다 막일이라도 시키고 그저 밥만 먹여줘도 감지덕지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우리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3D업종 같은 거 가릴 처지가 아니었지요. 목숨을 담보하는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은 총 들고 베트남 정글로 갔고, 또 독일 탄광 막장으로 갔으며... 누나들은 간호사가 되어 독일 병원 중환자실에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영안실에서 시체를 닦으며 돈을 모아 고향 땅 부모형제들에게 부쳐주어야 했습니다. 

그분들이 보여준 한국인들의 근면성 덕분에, 실제 우리 동네에서 같이 놀던 거지 형들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70~80년대의 중동 건설시장이지요. 그때 사막에서 벌어 온 돈이 우리나라 경제부흥에 큰 종자돈이 됐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저는 동네 거지 형들과 함께 했던 배고픔의 추억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눈물겨운 시절이었지요. 그런데 오늘의 우리 젊은이들은 한국에 그들의 일자리가 없다고 부모세대를 원망하며 방황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주말이면 회사 친지들과 충청도에 있는 ‘자미원’ 농장에 나가 땀을 흘립니다. 이 나이에 열심히 일할 곳이 있어 좋습니다만, 그 보다 더 가슴 뿌듯한 것은 함께 일하는 친지들 중에 60~70년대 조국근대화의 역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그분들의 ‘가방모찌’ 역을 결코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분들과 그분들의 후손이 영원히 일할 수 있는 ‘행복의 땅’을 그들과 함께 일구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젊은이들을 위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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