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위선양 헤어디자이너, 패션디자이너와 함께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미 전파

▲ 오민코삽스 뷰티아카데미 오민 대표
▲ 오민코삽스 뷰티아카데미 오민 대표
영등포미용학원 오민코삽스 오민 대표, 그는 패션과 헤어, 모두를 아우르는 국내 유일한 헤어디자이너다. 범상치 않은 눈빛에서 나오는 넘치는 에너지와 자신감, 그에 걸 맞는 실력까지, 오민은 뷰티계 ‘작은 거인’이다.

“나는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 임무라 생각한다.”

오민 대표는 패션쇼의 헤어, 메이크업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20여 년간 4000회가 넘는 주요 패션쇼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연출했다. 한국 대표 디자이너의 컬렉션이 진행되는 서울패션위크 등 주요 패션쇼에서 오민 원장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돌 정도니 그만큼 독보적이며 아직까지 그를 뛰어넘을 헤어디자이너는 없을 듯하다.

■ 필연적인 운명, 헤어디자이너
오민 대표는 처음엔 뮤지션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음악을 하며 멋에 심취해 있을 때 누군가 ‘헤어디자이너가 되면 참 멋질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남자가 미용을 한다는 것은 금기에 가까울 정도로 편견이 심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미용실에 남자가 손님으로 온다는 것도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하는 상황에서 여자 손님의 머리를 남자 미용사가 만진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배고픈 뮤지션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문득 예전의 충고가 떠올랐다. 무작정 미용학원을 찾았고 당연히 수강생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부끄러움과 편견 속에 다음날, 학원 앞에 서성였고 그를 기다린 학원 원장이 오민 대표의 손을 잡아주었다. ‘미스터 오는 국내 최고의 헤어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해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 그 날 이후 오 대표는 학원 최고의 인기남이 되었지만 취직을 위해 방문한 미용실에서 문전박대도 당해보고, 남자 미용사가 있다는 이유로 미용실 매출이 떨어지는 힘든 상황도 이겨내야 했다. 그렇게 그는 쓴물을 삼키며 국내 최고의 헤어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오민 대표가 그리던 모습이 되었다.

■ 아트와 헤어 그리고 타고난 감각까지, 패션쇼에서 빛날 수밖에 없는 이유

▲ 2013 SS 서울패션위크 백스테이지 현장에서 활약 중인 오민 대표
▲ 2013 SS 서울패션위크 백스테이지 현장에서 활약 중인 오민 대표
남자 미용사가 문전박대를 당할 정도로 편견이 심했던 시절, 오민 대표는 패션쇼의 문턱을 넘었다. “처음에 패션쇼 현장을 우연히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헤어 연출을 꼭 하고 싶었고, 해야만 했다. 나도 모르게 패션쇼장을 기웃거리며 몰래 백스테이지에 들어가 현장을 지켜보기도 했다. 경비원에게 쫓겨나기도 수
▲ 태국 황실 초청 패션쇼에서
▲ 태국 황실 초청 패션쇼에서
십 번, 드디어 기회가 생겼고 차츰 패션쇼 백스테이지 현장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 당시 패션쇼는 그에게 미용인으로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고객을 상대하며 스타일의 변화를 주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타고난 감각과 아트적인 감성은 그를 미용실에 가두기엔 한없이 아쉬웠다. 패션을 이해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의 조화로 얼마나 멋진 무대가 완성될 수 있는가’를 무대 위해서 보여줬고, 해냈다. 어느 날부터 패션디자이너가 먼저 찾는 헤어디자이너가 되었다. 노력은 그만큼의 반응으로 돌아왔다. 국내 내로라하는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루비나, 박항치, 박춘무 등 오랜 시간 쇼를 함께하며 일을 넘어서 우정을 다지고 있다. “패션디자이너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의상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헤어, 메이크업도 빛나죠. 조화와 균형이 포인트고 그 다음은 감각입니다.”

오민 대표는 매년 개최되는 아모스프로페셔널 헤어쇼를 연출하고 있으며 홍콩 패션위크등 해외 컬렉션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2011 아시아 패션어워드에서는 헤어스타일리스트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상봉 패션디자이너와의 인연

▲ 모델 오디션 중인 이상봉 디자이너와 오민 대표
▲ 모델 오디션 중인 이상봉 디자이너와 오민 대표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이상봉과 오민 대표의 우정은 업계에서 유명할 정도로 돈독하다. 이상봉 디자이너가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기 전부터 유지해온 관계로 서로의 믿음과 신뢰는 범접할 수 없는 굳건함이 있다. 최근 서울패션위크를 비롯해 런던올림픽 성공기념 이상봉 패션쇼, 태국 황실초청 패션쇼까지 언제나 함께 무대를 빛냈다. 특히 이번 런던올림픽 성공기념 패션쇼는 개인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일궈냈다. 국내 최고 패션디자이너와 헤어디자이너의 만남, 여기에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이상봉디자이너의 의상은 조각보 등 한국적인 미를 우아하면서 기품 있게 살렸고, 오민 대표는 의상 시안을 보고 ‘오색단청’을 생각해 냈다. 헤어에 기와를 얹어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런던에는 오색단청이 물들여졌다.

▲ 런던올림픽 기념 이상봉 패션쇼에서 오색단청을 선보여 큰 호응을 받았다
▲ 런던올림픽 기념 이상봉 패션쇼에서 오색단청을 선보여 큰 호응을 받았다
무거운 기와, 깨지기 쉽다는 위험 부담을 안고 어떻게 오색단청을 런던에서 선보일 수 있었을까?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철학. 깊은 고민에 빠진 오민 대표는 플라스틱 기와를 생각해 냈다. 구하기 힘든 플라스틱 기와를 지방에 직접 가서, 그것도 팔지 않으려는 사장을 겨우 설득해 얻어냈다. 일일이 자르고 모양을 만들어냈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특별 노하우로 모델의 머리에 고정시켰다.

그렇게 탄생된 그만의 오색단청은 런던 빅토리아앤 앨버트 박물관 요청으로 이상봉디자이너의 의상과 함께 영구기증 되었다.

■영등포미용학원 오민코삽스, 현장에서 빛나는 인재를 키우겠다
수십 년간 미용과 함께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체계적인 미용 교육이었다고 한다. 세계의 미용은 미의 창출에 새로운 시도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우리 미용은 어디까지 왔을까? 항상 고민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억대 연봉의 뷰티 아스티트가 점점 많아지고 미용인의 지위와 위상도 높아지고 있지만 미용을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문제는 세계시장을 겨냥한 교육의 부재였다. 4000여 회의 패션쇼와 광고, 드라마, 영화 등 수많은 비주얼 작업을 해오며 뷰티 아티스트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 미용 교육만으로는 세계무대를 빛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내가 글로벌 인재를 키우자 결심했다. “나는 내가 키운 인재가 나의 라이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되었으면 한다. 세계무대도 우수학생과 함께 다니고 있다. 실전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훗날 백스테이지에서 만났을 때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고 싶다.”

자존심마저 잠시 내려놓고 대단한 집념으로 완벽한 쇼를 위해 직접 발로 뛰는 그의 열정은, 후배들이 꼭 배워야하는 모습인 듯하다. 터닝 포인트를 물으니 ‘결혼’이라며 환하게 웃는 그. ‘기준’이란 것이 있을 때, 남들보다 헤어아티스트로 성공은 일찍 거두었지만 결혼은 늦었던 오민 대표는 그만큼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소중하다고 한다. 삶의 원동력이며 살아가는 이유라고. 앞으로 국내 최초 수준 높은 아트북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오민 대표. 이미 알려진 그만의 감각은 과연 얼마나 멋진 아트북이 나올지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어떤 젊음보다 앞서가는 트렌드, 그만이 가진 열정과 노력, 겸손은 다시금 그가 ‘작은 거인’이라 불릴 수 있는 가치를 인정하게 만든다.
 

사진=김세진studiomandoo@gmail.com
박솔리 기자 solri@beauty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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