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원 방송연예예술학부 박둘선 교수

 
 
톱모델 박둘선이 교수가 되었다. 1998년 슈퍼엘리트모델 대상을 수상한 후 시원시원한 마스크와 이국적 매력으로 각종 컬렉션과 매거진, 해외무대를 종횡무진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톱모델로 군림했던 그녀 인생의 또 다른 막이 열린 것이다.

2013학년부터 한국예술원 방송연예예술학부 모델 전공 전임교수로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하게 된 그녀는 스스로를 엄한 선생님이라 칭한다. 이미 창신대에서 1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박둘선 교수는 “모델을 키운다기보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며 단순히 모델로서의 테크닉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모델로서의 자질, 노력, 인성 등 기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히로인에서 이제는 무대 뒤편의 조력자로 자리바꿈을 한 그녀이지만, 섭섭함보다는 얼굴 가득 설렘과 충만한 의욕이 느껴진다.
 
한 때 톱이었다가 기억 속으로 사라진 그렇고 그런 모델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재능을 후배들과 한국 패션계를 위해 기꺼이 바치겠다는 진짜 톱모델 박둘선의 아름다운 이야기.
 
미모가 여전하다. 한동안 어떻게 지냈나?
그렇게 봐주니 감사하다.(웃음) 사실은 한동안 운동을 쉬었는데 한국예술원 방송연예예술학부 모델 전공 전임을 맡으면서 다시 열심히 운동 중이다. 모델과 교수가 살찌고 관리 안 된 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동안 가방과 주얼리 관련 사업도 하고 강의도 하며 바쁘게 지냈다. 작년 가을 평소 안면이 있었던 한국예술원 교수이자 ‘롤러코스터’의 성우로도 유명한 서혜정 교수님으로부터 교수직 제안을 받고 한국예술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어 사업은 접은 상태다.
 
교수직 제안을 여러 곳에서 받은 것으로 안다. 한국예술원을 선택한 이유는?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강의를 나가면서 늘 아쉬웠던 점이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워킹 등 테크닉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자신의 매력이 무엇이며,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파악이 우선이다. 학생들이 이러한 부분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교수의 도움이 큰데, 거리상의 제약 때문에 늘 쫓기듯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점이 아쉬웠다. 한국예술원은 우선 서울 중심가에 위치해 있어 좋았고, 예술을 가르치는 곳답게 자유로운 분위기에 학생들을 배려하는 공간 구성도 매력적이었다. 또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지는 않지만 학교와 나, 학생들이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 발전가능성이 그 어느 곳보다 높으며, 나와 학생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주신다는 한국예술원 측의 약속도 믿고 싶었다.
 
데뷔 이후 줄곧 톱모델의 길을 걸었는데, 그래도 아쉬움이 있다면?
세계무대에서 좀 더 나의 이름을 알리지 못했던 것. 그리고 그보다 더욱 큰 아쉬움이라면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순간순간이 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었는데, 왜 그때는 톱이라는 자리에 연연해서 제대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그걸 지키기에만 급급했었을까 하는 것이다. 톱이라는 위치에서 내려올 때 자연스럽게 내려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마지막까지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나와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기본을 더욱 탄탄히 다져놓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스승인가? 좀 엄할 것 같은데…
난 무서운 선생이다.(웃음) 좋은 모델이 되려면 타고 나는 조건도 좋아야하지만, 치열한 노력 역시 수반되어야 한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모델로서의 자질과 기본을 갖출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기 때문에 기본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음 약한 면도 있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고 돌아오면 또 쿨하게 받아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모델로서의 테크닉만 교육시키는 모델 양성 아카데미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떤 모델이 훌륭한 모델인가?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예전 스승님께서 무대 위에 서는 단 한사람은 모두 톱모델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는 무조건 톱이길 만을 원했었는데, 돌이켜보면 ‘톱’이라는 정의 자체를 잘못 생각한 듯하다. 모델은 무엇보다 자신을 파악하는 일이 가장 핵심이다. 또 옷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며,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 매력적인 보디핏과 언어 구사 능력, 성실함까지 갖췄다면 세계적 모델로도 성장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 사실 모델은 예쁜 얼굴보다 매력적인 용모가 중요한데, 요즘은 패션도 다양하듯 모델도 다양한 스타일이 사랑받는다. 오히려 장윤주 선배처럼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함으로 트렌드를 리드하고 오랫동안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델이 진정한 톱모델이 아닐까? 그 선배는 정말 시즌을 타지 않는 모델이다. 우리는 유명했던 모델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져간 것을 많이 봐왔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트렌드, 또 대중이 선호하는 스타일을 넘어서 오히려 자신이 대중과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모델이 진정한 톱모델이다.
 
모델 선배로서, 또 스승으로서 학생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고 싶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기 자신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요즘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인의 꿈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른다. 나는 모델의 길을 걸었던 선배로서, 또 스승으로서 학생들에게 꿈과 자존감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모든 사람들은 다 매력적이며, 그 자체로도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을 소유한 존재이니까. 우리 과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모델을 꿈꾸기보다 단지 유명해지고 싶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도록 길을 안내해주고, 모델이 아니더라도 잘할 수 있는 것을 캐치하여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등 자신의 길을 찾도록 해주고 싶다. 한국예술원의 장점 중 하나가 시스템 자체가 매우 자유롭고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모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면 연기나 영화 관련 학과로 전과가 쉽기 때문에 학생들도 부담 없이 마음껏 부딪히며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 본다.
 
2013년은 터닝포인트가 되는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예전에는 욕심도 많고 꿈도 많았기에 삶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행복하게 살자는 주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떠한 형태로든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삶을 살고 싶다. 현재는 스승으로서 학생들을 좋은 모델로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톱모델이 되어도 그 자리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톱에서 내려오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모델을 만들고 싶다. 한혜진이나 혜박을 이을만한 모델들이 눈에 띄지 않아 걱정이다. 나의 제자들 가운데 한국 패션계를 짊어질 차세대 모델들이 배출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을까? 톱모델 박둘선의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사진=김세진 studiomandoo@gmail.com
김수진 기자 sjkimcap@beauty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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