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법학박사ㆍ해피런(주) 대표)
▲ 노규수(법학박사ㆍ해피런(주) 대표)
수도 서울의 중심부 땅속을 원을 그리며 달리는 지하철 2호선! 말도 많고 사연도 가지가지인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오늘도 어김없이 돌고 있다.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하는지라 나 역시 그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아침에는 강남에서 타고 가다가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독산역에서 내림으로써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정말 많은 사람들과 몸과 몸을 부딪치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2001년 이후 지난 10여 년간 나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종점’을 내 마음 속에 몇 번이고 건축했었다. 더 이상 ‘눈물의 지하철’을 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다니며 2호선 역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다단계 판매원들의 진정한 안식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나는 시민운동 동료들과 함께 그 첫 ‘종점’을 2년 전 4월 봉천역에 세운바 있었다.

서울 테헤란로에는 불법 다단계판매, 기획부동산, 해외광산 개발, 비상장 주식의 코스닥 상장, 줄기세포 및 신약 개발, 동남아 레저타운 개발, 원목 및 원유 등 원자재 수입, 캄보디아농업개발 등 가지가지를 미끼로 한 불법 유사수신 업체들이 아직도 즐비하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기꾼들의 눈속임에 넘어가 여전히 지하철 2호선에 몸을 싣고 있다.

불법조직일수록 자신들은 제대로 된 회사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진짜고 회사가 망해도 손해 보지 않는 앞 번호를 줄 테니 빨리 와서 회원 등록하라고 재촉한다. 얼마 전에는 선릉역 5번 출구에서 줄기세포 건으로 만나자던 사람이었는데 1주일 전에는 역삼역 4번 출구에서 미국진출 한류프랜차이즈 건으로 보자고 하더라도, 미덥지 않지만 오직 잃어버린 돈을 찾겠다는 생각에 그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제는 다시 강남역 1번 출구에서 주식투자 건으로 보자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사당역 8번 출구에서 아프리카 금광개발 건으로 기다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또 한 사람의 ‘지하철 2호선 돌아이’는 탄생하게 된다.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며 무슨 역 몇 번 출구에서 보자고 전화하는 사람이나, 이번에는 진짜겠지 하는 심정으로 그를 찾아가는 사람이나 모두 가슴에 피멍이 들어있기는 마찬가지다. 한탕을 노리는 불법 다단계판매·유사수신, ‘떴다방’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역을 전전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불법 상술에 빠지지 않도록 2001년과 2002년에 걸쳐 시민운동 단체를 두 개씩이나 만들어야 했다. 지하철역 주변에서 무려 30여만 건의 피해사실을 접수하고 불법조직으로 넘어간 돈을 환불받게 하거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힘겨운 법적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2011년 4월에 들어서는 봉천역에 ‘종점’을 꾸며, 그 안에 불법 다단계판매 피해로 가슴을 난도질당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영원한 쉼터’를 만들고 싶었다. 더 나아가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었고, 미래로 향해 뛸 수 있는 ‘도약대’를 설치하고 싶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나 역시 1990년대 초반 지하철 2호선과 테헤란로를 휩쓸고 지나간 ‘자석요’ 사기판매의 피해자였다. 또한 ‘자석요’가 좋다고 사돈의 팔촌에게까지 선전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다단계판매의 비인간적 상술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임경배씨 등 시민운동 동료들과 함께 지하철 2호선의 ‘종점’을 만들고 싶었다.

이제 그 희망의 새싹은 1호선 독산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문제의 2호선을 과감히 뛰어넘는 결단이 필요했기에 충청도 수안보에는 공동 전통약초 재배단지를 만들고, 이를 원료로 한 친환경 건강식품도 개발했다. 나 같은 지하철 2호선 피해자들과 함께 행복을 영원히 공유하겠다는 의미에서 ‘해피청’ ‘해피장’ ‘해피몸’ ‘해피잠’ ‘해피라면’이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과거 유흥가가 밀집했던 강남 지하의 2호선 전철과 지상의 테헤란로가 제대로 활기를 띠게 된 것은 IMF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1998년부터 펼친 벤처창업 지원정책 때문이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나 직장을 잡지 못한 젊은이들이 IT창업 ‘대박신화’를 꿈꾸며 테헤란로에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저축은행 본점의 50% 이상이 아직도 테헤란로에 밀집돼 있다.

하지만 벤처열기의 거품은 심각했다. 일부 회사를 제외하고 코스닥 상장 주식도 쪽박이었다. 결국 ‘대박신화’를 노리던 벤처기업들은 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구로디지털 등 외곽지역으로 이전해야 했고, 그 빈 사무실을 다단계판매 업체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공제조합이 출범하기 전인 2000년대 초에는 300~400개의 다단계 업체들이 테헤란로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 다단계판매사들도 대부분 공제조합(특수판매, 직접 판매)의 소비자보호 시스템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공제조합에 가입된 회사들은 고작 90여개 남짓이다. 이들이 암웨이 등 외국계 기업들과 힘겨운 시장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건전 다단계판매 국내기업들이 많이 탄생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그들과 함께 과거 지하철 2호선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모여 ‘잊혀진 계절’을 노래하면서 이제는 진정한 ‘강남스타일’을 노래하고 싶다. 싸이의 노래가 가식적인 삶을 풍자한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진정한 ‘해피스타일, 행복스타일’로 전환시키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하철 2호선 승객들이 머무를 수 있는 ‘대합실’을 1호선 독산역에 건축 중이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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