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법학박사ㆍ해피런(주) 대표)
▲ 노규수(법학박사ㆍ해피런(주) 대표)
내 의식의 정체성 일부를 미리 말할 필요가 있겠다. 그래서 “나는 반미주의자가 아닙니다. 친미주의자입니다”를 선언한다. KBS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희극여배우들’ 코너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박지선이 “나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 청초한 편입니다”라고 선언하듯이 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미국의 역할과 입장을 그런대로 지지해온 편이다.

그렇지만 미국에게 항의할 일이 있다. 그것은 미국 부흥의 힘이 결코 기독교가 아니니 기독교를 남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독교가 미국의 공식적인 국시(國是)는 아니겠지만,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공부한 이 땅의 목사님들 중 상당수는 “미국은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된 배경에는 기독교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나는 반 기독교인이 아니다. 친 기독교인이다. 나 같은 친 기독교인 입장에서 보아도 미국 부흥의 배경은 결코 기독교가 전부는 아니다. 미국 부흥의 힘은 어쩌면 미국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을 대량 학살하고, 아프리카 밀림에서 원숭이 잡듯 끌고 온 흑인노예들의 희생에서 나왔다.

그런 부분을 진정으로 회개하는 기독교인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과거를 회개하고 화해의 손을 내미는 진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기독교는 메이플라워(May Flowers)호 선상에서 시작됐다. 1620년 12월 추운 겨울에 영국을 떠나 신대륙으로 향하던 그 배에는 청교도 분리주의자 35명, 영국 종파주의자 60명, 메이플라워호 승무원 6명 등 총 101명(남자 72명, 여자 29명)의 기독교인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선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하라”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로 서명했다. 그것이 미국 기독교의 시작이다.

하지만 조찬선 목사의 <기독교죄악사>에 따르면 신대륙 미국에 처음 이주한 그들이 한 일은 교회건설이 아니고 식량도적질이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오랜 항해 끝인지라 그들은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인디언 원주민들의 식량을 훔쳐야 했다. 신앙인일지라도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하는 사람은 없는 법인 것이다.

연이은 도둑질에 격분한 플리머스 지역의 인디언 부족 왐파노악(Wampanoags)의 마사소잇(Massasoit) 추장은 청교도들의 상륙촌을 포위했다. 그들 인디언들은 평소 보지도 듣지도 못한 낯선 이방인들을 일시에 전멸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청교도들의 사정이 딱하기 그지없었다.

인디언들은 오히려 추위 속에 병들고 헐벗고 배고파 곤경에 처한 청교도들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갖다 주면서 온정과 구호의 손길을 폈다. 제임스타운에 거처를 정한 존스미스는 그 정성에 눈물로 감동해 “인디언들을 보내신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기록했다. 더구나 그 인디언들은 청교도들이 추운 겨울을 이기고 이듬해부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각종 종자 씨를 뿌려주고 농사짓는 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인디언들의 식량으로 배를 채운 청교도들은 이후 대대적인 인디언 살육에 들어간다. 미국에 정착하고 2년 후인 1622년부터의 일이었다.

미국 보스톤 남쪽의 청교도들이 또 다시 식량을 약탈한데 격분한 인디언들이 청교도들을 공격하려 하자 협상을 하자는 명목으로 인디언 연합군 부족 4명의 추장들을 평화회담장 특별만찬에 초대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잠복해있던 청교도 청년들이 그들을 일시에 암살해 버렸다.

청교도들은 네 명 추장의 목을 긴 장대에 매달아 20년 동안이나 동네 어귀에 걸어 두었다. 인디언들에게 공포심을 주기 위한 것이었고, 이를 피해 멀리 떠나는 인디언들의 집과 토지를 차례차례 접수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서부개척은 그렇게 인디언 멸종으로부터 시작됐다. 1855년 미국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는 지금의 미국 땅 북서쪽 끝자리 워싱턴주 수쿠아미(Suquami) 지역에 살던 인디언 부족에게 대표단을 보내 땅을 팔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인디언 추장 시애틀(Seattle)이 그에 대한 대답으로 ‘백인 대추장’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 기병대들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들소들,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한 가족이다…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그대들이 약속한 보호구역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마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인디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가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기억될 때라도,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백성 인디언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임을 기억해 달라…”

피어스 대통령은 추장 시애틀의 편지에 감복한 나머지 이 지역을 ‘시애틀’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미국 서부 워싱턴 주의 주도 ‘시애틀’이란 지명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러나 미국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 수천 만 명은 그렇게 차례차례 사려져 가야 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기독교나 미국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야 함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한 것이다. 새로운 박근혜 정부가 곧 들어설 예정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들의 공약도 있었다. 나를 행복공동체의 작은 ‘추장’ 쯤으로 인정해준다면 나도 내 ‘친지’들을 위해 경제와 정치 분야 ‘대추장’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415만4천명의 다단계판매원(공정위 조사, 2011년 말 기준)들은 그대들이 말하는 서민 중의 서민이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요, 자매요, 한 가족이다. 그들은 우리의 한 부분이고, 우리는 그들의 한 부분이다. 그들이 우리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음을 기억해 달라”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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