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성을 가졌다고 하지만 영원히 불완전한 존재일 뿐... 사회약료를 주목하라

▲ 순수이성비판자인 칸트. 그가 생전에 활동했던 유럽의 코로나19 확진자가 6월20일 오전을 기준으로 25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중 사망자 수는 영국이 4만2,461명으로 가장 많았다. 1760년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넓히며 가장 강성한 제국으로 올라 선 유럽이 작금에 이르러 코로나19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지역으로 밝혀진 것은 어떤 이유일까?
▲ 순수이성비판자인 칸트. 그가 생전에 활동했던 유럽의 코로나19 확진자가 6월20일 오전을 기준으로 25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중 사망자 수는 영국이 4만2,461명으로 가장 많았다. 1760년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넓히며 가장 강성한 제국으로 올라 선 유럽이 작금에 이르러 코로나19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지역으로 밝혀진 것은 어떤 이유일까?

 

필자의 칼럼은 유빕사회를 지향하는 사유의 칼럼이기에 동ㆍ서양의 철학이 백두대간이다. 특히 철학삼분지계(머리ㆍ허리ㆍ다리)에서 서양철학은 다리에 해당한다.

그런데 '칸트를 모르면, 서양철학을 본질적으로 시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로 이번 기회에 칸트(Kant, 1724~1804)의 비판철학을 정리하면서 이성중심의 사유체계와 사회약료적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칸트 사유의 출발점은 항상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주체로서의 인간) : 내 안의 '오성', 내 안의 도덕법칙(정언명령), 그리고 내 안의 상상력(도덕적 감정).

이로써 칸트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이성, 眞), 행할 수 있는가(실천, 善), 그리고 희망할 수 있는가(판단력, 美)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경건한 신앙인으로서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것임을 주장하는 세 권의 책을 남겼다 :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그리고 <판단력비판>

◇ 순수이성 비판 

당시 철학계에서 영국의 경험론은 '주체가 대상을 향한다'는 대상 위주의 관점이었기 때문에 회의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유럽 대륙의 합리론은 경험을 도외시하고 '명석판명'한 실체와 인식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독단주의로 치우치는 경향이 강했다.

고로 칸트는 이러한 양자의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주체가 대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주체로 향한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를 주장했으며, 이처럼 새로운 인식론(선험적 종합판단)으로서 <순수이성비판>을 썼다 :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이것은 치열하게 진리(眞)를 추구해온 칸트의 위대한 명제로써 천동설이 지배하던 시기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획기적이었던 것처럼 '사고의 혁명'으로 평가된다.

◇ 실천이성 비판

칸트도 이항대립적 사유로써 세계를 감각직관의 현상계와 선험적인 이성의 가지계(혹은 '物자체')로 구분했다. 여기서 物자체란 생각은 가능하나 인식은 불가능한 세계이다.

비유컨대 필자가 과학기술중심의 현대의료를 핵심으로, 사회약료를 여백으로 보았듯이, 칸트도 현상계를 핵심으로 삼고, 物자체의 본체계를 이성이 지배하는 선험적인 여백으로 본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칸트는 실천이성에 의한 도덕법칙을 만들어 선포했다. 예컨대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이 그것이다.

이는 “만약 행복해지려면 OO하라!”고 하는 가언명령(假言命令)의 가설이나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행복한가 어떤가에 관계없이 무조건, 반드시, 절대적으로(Absolute Maxim) 이렇게 해야(되어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이 법을 따르려는 善의지를 가진자들의 공동체이자 이상향인 '목적의 왕국'을 주장하더니, 이 땅의 역사와 사회에서 구현할 때 나타나는 이율배반적 모순을 실감하면서 겸손하게 신을 요청하고는, 교묘하게 철학에서 신학으로 넘어갔다.

고로 <실천이성비판>은 善의지가 이 땅을 사는 각 사람의 마음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것으로, 경건함('내 위에 있는 밤하늘의 별과 내 안에 있는 도덕법칙'ㅡ칸트의 묘비명)이 온 누리에 퍼지기를 염원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도덕의 원천은 자율(Autonomie), 즉 의지의 자기 입법성에 있다. 또한 자율은 자유(Freiheit)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근대의 핵심 개념인 자유는 칸트에 의해서 마침내 철학적 토대를 얻었기에 <실천이성비판>은 바로 근대 철학의 기초를 닦은 저작으로 평가된다.

◇ 판단력 비판

질서와 체계를 중시한 칸트는 세계를 엄밀한 과학법칙이 적용되는 합법칙성으로서의 감성계와, 자유개념에 기초한 도덕법칙이 적용되는 초감성계로 이원화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고로 감성계와 초감성계의 매개가 요청되는데, 바로 이런 요청에 따라 양자의 매개 원리를 밝히고자 쓰여진 것이 <판단력비판>이고, 그 매개의 원리가 합목적성이다.

여기서 판단력이란 개별자를 보편의 형식으로 개념화하는 것이다.

고로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순수이성의 한계와 실천이성의 한계를 넘어서, 자신이 개발한 도덕법칙을 자연의 美로 연결시킴으로써 자기 마음속의 도덕적 감정으로 일치시킬 때, 초감각적인 세계로 들어가면서 자연 속에서 '신의 흔적과 계획'을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숭고美다.

또한 그는 예술가들의 천재성도 정신을 통하여 나타난다고 보았다. 즉 인간정신, 특히 無제약자인 이성의 이념이 작동하여 예술작품으로 표현되고, 이러한 미학적 이성으로 도덕적 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가의 천재성이란 애당초 오성에 갇혀있지 않고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자유의 이념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보편 이성 그 자체이다. 고로 이것이 곧 작품과정에서 실천이성으로써 내면의 도덕법칙 혹은 도덕적 명령을 따름으로써 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예컨대, 자연 자체는 실천이성이 작동하지 않지만 천재적인 미술가의 작품은 큰 감동을 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런 방식으로 미술 작품은 사회를 정화시킴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음악이 무의식을 통하여 사람을 황홀하게 치료하듯이(음악치료), 미술은 초감성적인 이성을 통하여 사람을 아름답게 치료한다(미술치료).

이는 인아사건('인류를 아름답게, 사회를 건강하게')의 이념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기에 사회약료를 통하여 유빕사회로 가는 길을 열고 있는 필자가 특별히 칸트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칸트가 세운 보편이성은 헤겔의 절대정신까지 우상향으로 거침없이 행진하더니, 20세기 양차대전을 겪으면서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하여 광기와 욕망(무의식) 등으로 여지없이 해체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날 코로나19로 더욱 절망적인 상황이다.

마치 주역의 63번째 괘(水火旣濟)에서 다 이루어진 것 같으나, 반전종시(反轉終始)로써 64번째 마지막 괘(火水未濟)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성을 가진 인간이지만 영원히 불완전한 존재임을 생생하게 각인시켜주고 있다. 

 

 
 

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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