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머릿속의 맨정신이 아닌, 사회적 연결망과 神의 세계와 연계된 新개념의 '정신(이성)'임을 주목하라.

지난 4호 칼럼에서 칸트철학을 정리한 것은 마치 조국 근대화를 위하여 대한민국에 어렵사리 경부고속도로를 완성한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여세를 몰아 호남고속도로의 건설이 필수적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고로 이번 호에서는 헤겔(Hegel)의 <정신현상학 Phänomenologie des Geistes(1807)>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그 의의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당시 독일 관념철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의 순으로 이어진다. 칸트가 주장한 인식불가의 物자체와 선험적 주체를 비판하면서, 피히테는 '자아'로, 셸링은 '자연'으로, 헤겔은 '정신'으로 제각기 관념적인 통일을 시도했다. 

자연과 인간을 망라하여 생명을 중시한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맨정신으로 읽으면 접근이 되지 않는다. 칸트로부터 이어지는 '자유'라는 최고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무한자인 神의 개념이 전제되어 있기에 헤겔철학은 철저히 무한도전적인 낭만주의(오직 神만이 가능함)에 속한다. 

즉 '정신'이란 단순히 유한자인 우리가 생각하는 머릿속의 맨정신이 아니며 사회적인 연결망과, 한걸음 더 나아가, 神적인 법칙과 연계된 新개념의 '정신(이성)'임을 주목해야 한다. 新개념은 늘 先이해를 요구한다.

 

▲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 1770~1831). 그의 철학적 명제는 “이성적인 것만이 현실적일 수 있으며, 현실적인 것은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한다”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노예가 땀 흘려 일하면서 자연을 정복하고 사물의 이치를 깨우치며 지식을 쌓음으로써, 노예가 주인보다 더 높은 단계에 이를 수 있음을 설명한다.
▲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 1770~1831). 그의 철학적 명제는 “이성적인 것만이 현실적일 수 있으며, 현실적인 것은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한다”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노예가 땀 흘려 일하면서 자연을 정복하고 사물의 이치를 깨우치며 지식을 쌓음으로써, 노예가 주인보다 더 높은 단계에 이를 수 있음을 설명한다.

◇ 先이해 

하나... 아무리 절대자라도 자신의 내부에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깥으로의 움직임을 '외화(外華)'라고 하며 이 고통스런 외화(자신을 내어주기 때문인데, 이를 '부정'이라 함)를 통해 창조작업을 진행한다. 

그런 연후에 절대자는 '자기복귀' 운동으로 자기에게로 돌아간다. 즉 헤겔은, 칸트의 초월적인 신과는 달리, 신이 이 세계(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를 만들고 난 이후에도 역사의 발전 단계별로 개입하는 내재적인 신으로 보았다. 

둘... 절대자가 내부에 앉아 있음이 '즉자(卽自)'이고, 자신을 부정하며 만든 대상이 '대자(對自)', 복귀 후에 즉자-대자 관계인 '종합'(부정의 부정)이 생긴다. 

이 정반합의 발전적 도식인 변증법적 운동을 고전적인 이항대립의 극복 메커니즘(방법론)으로 개발한 것은 인류사적인 쾌거로 인정해야 한다. 헤겔은 애당초 이것을 '지양'(止揚)이라고 불렀고 후일, 마르크스는 유물론에 적용함으로써 세상이 절반으로 나누어져 채색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셋... 주관정신은 의식, 자기의식, 이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의식에는 감각, 지각, 그리고 오성(悟性)이 포함된다. 감각은 안과 밖이 구별 없이 무엇인가 있음('이것')을 느끼지만, 지각은 대상을 움직이고(여기서 '운동'이 있음에 주목), 들어온 그 이미지를 붙잡는다. 

자연에 있는 사물(대상)이 우리의 눈(감각)을 통하여 머리 안으로 들어올 때, 예컨대 꽃 한 송이는 실체가 아니라, 그 이미지(혹은 그림자)가 들어와 표상으로서의 '이것'이 된다(지각). 

이때 꽃의 입장에서는 부정과 보존이 동시에 발생하는데 이것이 지양(止揚)이다. 이처럼 우리의 감각과 지각은 다른 것이고 그 차이는 바로 지양에 있다. 헤겔은 주관정신에서 변증법적 운동을 일찍이 발견하여 그 이후에도 일관성 있게 사용한다. 

넷... 오성은 바깥에서 지각을 통하여 들어온 대상('이것')이 인간의 내면, 즉 머릿속에서, '추상적 구별'을 통하여 마침내 현상('꽃 한 송이')으로 바뀌는 단계에 있다. 이처럼 오성은 대상을 내면화하는 추상(抽象)의 힘이다. 

즉 인간의 의식 안에서 꽃 한 송이가 다른 사물들과 구별되고, 자기와도 구별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보는 현상세계다. 

다섯... 오성(悟性) 안에는 자기의식의 단초(端初)가 들어 있다. 바깥의 사물 입장에서 오성은 의식과 사물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꽃 한 송이가 내면으로 들어와도 오성이 반성을 통하여 꽃 한 송이가 들어왔음을 구별(인식)하지 못하면 현상이란 의식작용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오성(추상능력)은 인간이 동물 세계와 구별되는 핵심 요소이고 주관정신의 키워드는 추상이다. 

여섯... 삶은 동(動)ㆍ욕(欲)ㆍ쟁(爭)이다. 헤겔은 변증법적 운동을 주창함으로써 절대자도, 인간도 움직임(動)이 있어야 역사가 발전한다고 보았다. 또한 자기의식 단계에서 삶의 본질이 욕망(欲)과 투쟁(爭)임을 통찰했다. 

즉 자기의식(의 확실성)은 스스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바깥에서 들어온 대상(타자)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일어나며 자발성이 특징으로, 욕망을 낳는 계기가 된다. 인간은 바깥의 자극이 없으면 욕망(자기의식)도 없다. 

고로 자기의식은 곧 욕망충족을 위한 인정투쟁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이 부분이 정신분석학이나 현대철학(라캉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일곱... 자기의식의 단계에서 그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등장하는데, 우리의 의식 안에서는 노예가 승리의 주역(정신적 '역전')임을 강조한다. 

마르크스는 여기에 착안하여 '노동자여 일어나라!'며 인정투쟁을 계급투쟁(현실적 '역전')으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 사이에는 간극이 있기에 불행(분열된 자아)이 있게 마련이다. 이 분열된 자아는 이성의 단계에서 극복된다. 

여덟... 개념 있는 인간이란 이성적 인간이다. 그런데, 자연적이고 학문적인 이성도 역시 유한적이므로 지양되고, 보편자인 도덕 안에서 실현된다고 보았으나 무한자인 절대정신이 소외되어 있기에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즉 주관정신은 의식의 모순을, 객관정신은 역사의 모순을 발견함으로써 절대정신으로 이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 유한자와 무한자의 대하드라마 

헤겔이 사유한 이 세계는 변증법적 운동으로 1단계가 끝난 후,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로 이행하며, 지속적으로 역사의 발전에 따라 움직이다가 마침내 '절대知'에 이르러 완성된다. 즉 정신이 스스로 정신임을 자각한 정신, 이것이 곧 절대정신이다. 

이제 ‘자기 확신적 정신’은 절대정신으로 지양된다. 그리고 절대정신이 직접 자기를 직관하는 것은 종교의 단계에 와서야 가능하다. 절대적 정신이 직접적, 대상적으로 직관되고 표상되는 단계가 종교인데, 그것이 순수 사유 또는 개념으로서 자각되면 '절대지(絶對知)'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역사의 변증법을 다룬 대하드라마로서 <정신현상학>은 3단계의 '정신'으로 직조된 것이다 : 주관정신, 객관정신, 그리고 절대정신. 

결론적으로 헤겔은 칸트의 선험적 종합판단인 12범주의 선험적 형식이 내장된 오성과 보편이성의 인식론을 형식주의로 거부하고, 대상(생명)을 '있는 그대로'인 전체로 볼 것을 주장했다. 고로 진리는 전체이기에 과정도 중요하게 취급함으로써 단계별로 심층 분석했다. 

하지만 자연의 변화는 인간정신처럼 그렇게 대립과 모순의 지양으로, 즉 헤겔의 변증법적 운동으로 작동하지도, 설명되지도 않는다. 자연은 변증법의 한계 밖에 있고 변증법적 존재론의 대상 범위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사회 및 역사에 국한된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오늘날 관념철학의 정점을 찍은 절대정신에 대한 비판(비현실적 소설)이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지젝처럼 '헤겔로 돌아가자'는 철학자도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더욱 지젝에게 한강이 흐르는 강가에 앉아서 인아사건과 사회약료, 그리고 유빕사회를 가르쳐주고 싶다(상선약수).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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