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라는 불가능을 위하여 열정을 가지고 날마다 도전하는 당신이 유빕이다.

삼라만상 중에서 눈에 보이는 실재계의 나무와 언어로 표현된 상징계의 개념적 나무는 다르다. 고로 실재계는, 1차적으로, 도(道)와 같은 무(無)의 세계이자 도착 불가능의 세계다. 그런데 라캉이 밝힌 실재계에는 2차적인 의미가 하나 더 있기에 더욱 난해하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바깥에 있는 나무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남아서 트라우마처럼 작동하는 사물이 되면서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유와 환유로 작동하는 인간의 말이 100% 진리가 될 수 없는 이유다(라캉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진리는 전체다'라는 명제를 인용함).

실재계는 "우연히" 침투하여 침묵으로 상징계를 뚫는 유령을 작동시킨다. 한편 인간에게는 감각을 통하여 들어온 사물을 영혼에 새겨넣는 원천인 상상력이 있기에 감각에서 영혼까지 논스톱으로 연결시켜주는 상상력이 곧 유령인 셈이다.

물질 자체로서의 존재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지만 상상력이 발휘됨으로써 욕망을 일으키는 인간은, 인식론적으로 유물론과 관념론이 혼합된 존재다. 이처럼 희한한 존재인 인간의 욕망은 늘 유령으로 예술처럼 덧칠해져 있다. 고로 실재계 소속이면서도 인간에 내재된 유령을 이참에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유령 : 물질만능주의의 대항마, 사회약료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또 다른 이름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은 마르크스의 유령, 자본주의의 유령 등과 같이 유령을 애용한다. 프로이트의 리비도, 라캉의 주이상스, 들뢰즈의 욕망기계, 그리고 푸코의 권력도 모두 유령 출신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유령의 출몰은 이미 일상적 삶의 범주 속에서도 낯설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예컨대 물질만능주의에 편승한 우리나라의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 하나가 존재하기 위하여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동력이 수없이 제공되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롯데월드타워의 입구 속으로 ''빨려'' 들어감에 있어서 강제는 없다. 물질적 삶의 풍요와 행복을 빌고 누리기 위해 스스로 그 상품의 천국, 황금의 신전으로 향하는 것이다.

즉 롯데월드타워로 들어가는 입구는 욕망의 구멍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토대이자 구조인 셈이다. 이미 우리의 일상이 포스트모더니즘식 문화 양식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이처럼 우리의 상상력이 최대한 동원될 때, 존재 보다 비존재인 無가, 물질 보다 정신분석학적 의미의 유령이, 훨씬 크게 작동하고 있음을 통찰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최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하는 물질중심의 현대의료가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식 구조인 '여백'의 사회약료를 줄기차게 강조해왔다.

그 결과, 지난 6000년 동안 인류가 쌓아올린 바벨탑 같은, 약물의 독점체계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코로나 이후 '약물 위에 사회약 있다'는 명제가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하였다.

요컨대 오늘날 사회약료에서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유령론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불가능을 위한 열정'(Passion For The Impossible)으로 볼 수 있다.

▲ ‘시지프스’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고 있다. 하지만 바위는 다시 굴러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시지프스’가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자 인간의 부조리이기 때문. 제우스 신이 의아해하자 시지프스는 '나는 돌을 밀어 올린 결과가 아니라, 돌을 미는 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부조리를 통해 인간은 존재를 확인하면서 삶을 가치화시켜 나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 ‘시지프스’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고 있다. 하지만 바위는 다시 굴러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시지프스’가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자 인간의 부조리이기 때문. 제우스 신이 의아해하자 시지프스는 '나는 돌을 밀어 올린 결과가 아니라, 돌을 미는 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부조리를 통해 인간은 존재를 확인하면서 삶을 가치화시켜 나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 시지프스의 신화

 

시지프스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인의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났다. 호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시지프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들의 편에서 보면, 엿듣기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할 뿐 아니라, 특히 신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점에서 일찍이 낙인찍힌 존재였다.

도둑질 잘하기로 유명한 전령 신 헤르메스는 태어난 바로 그날 저녁에 강보를 빠져나가 이복형인 아폴론의 소를 훔쳤다. 그는 떡갈나무 껍질로 소의 발을 감싸고, 소의 꼬리에다가는 싸리 빗자루를 매달아 땅바닥에 끌리게 함으로써 소의 발자국을 감쪽같이 지웠다.

그리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자신이 태어난 동굴 속의 강보로 돌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 행세를 했다.

그런데 헤르메스의 이 완전 범죄를 망쳐 놓은 인간이 있었으니 바로 시지프스였다. 아폴론이 자신의 소가 없어진 것을 알고 이리저리 찾아다니자 시지프스가 범인은 바로 헤르메스임을 일러바쳤던 것이다.

아폴론은 헤르메스의 도둑질을 제우스에게 고발하였고 이 일로 시지프스는 범행의 당사자인 헤르메스뿐만 아니라 제우스의 눈총까지 받게 되었다. 도둑질이거나 말거나 여하튼 신들의 일에 감히 인간이 끼어든 게 주제넘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 일로 말미암아 가뜩이나 눈 밖에 나 있던 차에, 뒤이어 시지프스는 더욱 결정적인 괘씸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어느 날 시지프스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잠시 궁리한 끝에 시지프스는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신(降神) 아소포스를 찾아갔다.

딸 걱정에 천근같은 한숨을 내쉬고 있는 아소포스에게 시지프스는 자신의 부탁을 하나 들어 준다면 딸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노라 했다.

시지프스는 그 때 코린토스를 창건하여 다스리고 있었는데 물이 귀해 백성들이 몹시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코린토스에 있는 산에다 마르지 않는 샘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게 시지프스의 청이었다. 물줄기를 산 위로 끌어올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을 찾는 게 급했던 터라 아소포스는 시지프스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시지프스는 그에게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납치해 간 섬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고 아소포스는 곧 그곳으로 달려가 딸을 제우스의 손아귀에서 구해냈다.

자신의 떳떳하지 않은 비행을 엿보고 그것을 일러바친 자가 다름 아닌 시지프스임을 알아낸 제우스는 저승 신 타나토스(죽음)에게 당장 그놈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제우스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보복하리라는 걸 미리 헤아리고 있던 시지프스는 타나토스가 당도하자 그를 쇠사슬로 꽁꽁 묶어 돌로 만든 감옥에다 가두어 버렸다. 명이 다한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묶여 있으니 당연히 죽는 사람이 없어졌다.

명계(冥界)의 왕 하데스가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제우스에게 고했고 제우스는 전쟁 신 아레스를 보내 타나토스를 구출하게 했다. 호전적이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아레스에게 섣불리 맞섰다가는 온 코린토스가 피바다가 될 것임을 알고 시지프스는 이번엔 순순히 항복했다.

그런데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가면서 시지프스는 아내 멜로페에게 자신의 시신을 화장도 매장도 하지 말고 광장에 내다 버릴 것이며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고 은밀히 일렀다. 저승에 당도한 시지프스는 하데스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읍소(泣訴)했다.

"아내가 저의 시신을 광장에 내다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것은 죽은 자를 수습하여 무사히 저승에 이르게 하는 이제까지의 관습을 조롱한 것인즉 이는 곧 명계의 지배자이신 대왕에 대한 능멸이라 보니 제가 이승으로 가 아내의 죄를 단단히 물은 후 다시 오겠습니다. 하니 저에게 사흘간만 말미를 주소서." 

시지프스의 꾀에 넘어간 하데스는 그를 다시 이승으로 보내 주었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영생불사 하는 신이 아니라 한번 죽으면 그걸로 그만인 인간인 그로서는 이승에서의 삶이 너무도 소중했던 것이다.

하데스가 몇 번이나 타나토스를 보내 을러대기도 하고 경고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시지프스는 갖가지 말재주와 임기응변으로 체포를 피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천천히 흐르는 강물과 별빛이 되비치는 바다와 금수초목을 안아 기르는 산과 날마다 새롭게 웃는 대지" 속에서 삶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아무리 현명하고 신중하다 한들 인간이 어찌 신을 이길 수 있으랴. 마침내는 시지프스도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 명계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명계에선 가혹한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데스는 명계에 있는 높은 바위산을 가리키며 그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라고 했다.

시지프스는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바위는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하데스가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시지프스는 "하늘이 없는 공간, 측량할 길 없는 시간"과 싸우면서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신화처럼, 인간은 모든 것을 상징화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상징계 위에서 살고 있다. 物 자체인 진리가 전체(無)라면, 아무리 물질만능이라 하더라도, 구멍난 상징계에서 사는 우리의 존재는 온전한 실재계(無) 보다 적다 : 'Less Than Nothing'(지젝의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

까뮈는, 끝까지 가보지도 않고 중도 포기하는 '자살'은 부조리한 삶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단순한 회피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자살'이란 말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영겁의 형벌이 내장된 얼모스트 파라다이스. 그래도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기에 파라다이스라는 불가능을 위하여 열정을 가지고 날마다 도전하는 당신이 유빕이다.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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