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을 대한민국의 노벨상감으로 추천하는 당신이 유빕이다.

라캉은 '소외된 주체($)가 자신의 존재결여(◇)를 대상 a로 채우고자 한다'는 명제를 환상($◇a)으로 공식화하면서 상징계의 언어(他者)로 시작되는 욕망(Desire) 이전에 충동(Drive)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고로 무의식을 도식화하면 본능에서 충동으로, 충동에서 욕망으로 발전하면서 일종의 방어기제로써 '인간은 타자(他者)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것이고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다'라는 명제로 정리된다.

이 무의식 관련 이론을 바탕으로 필자는 지난 주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에서 라캉과 동시대에 정신분석의 측면에서 결코 붙잡히지 않는 거세의 흔적을 찾아 욕망과 충동의 심오한 세계를 이미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무진기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체로 소설에서 의식의 흐름이란 인간의 정신 속에 끊임없이 변하고 이어지는 주관적인 생각과 감각, 특히 주석 없이 설명해 나가는 문학적 기법이다. 즉 인물의 파편적이고 무질서하며 잡다한 의식세계를 자유로운 연상작용을 통해 가감없이 그려내는 방법을 말한다.

한편 우리의 주체는 분열되어 있다. 예컨대 무의식은 서울에 가기 싫지만, 의식적으로 서울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언표). 이 경우, 보다 근원적인 힘은 무의식에 있다면서 '무의식이 의식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소외된 주체들이 살아가는 상징계(기표연쇄망)를 중심으로 <무진기행>을, 1968년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설국>과 함께 무의식과 의식의 관점에서 비교해보고자 한다.

 

▲ 소설가 김승옥
▲ 소설가 김승옥

 

◇ 무진기행 : 김승옥, 1964

 

<무진기행>은 서울이라는 일상의 현실세계(욕망)와, 무진(霧津)이라는 탈일상의 공간(충동)을 대상 a로 그려낸 무의식의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대상 a 즉 오브제아의 '모호성'을 안개로 탁월하게 형상화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윤희중은 남들 보기에는 번듯한 제약회사 간사이고, 조만간 아내와 장인의 힘으로 전무 승진을 앞두고 있지만, 실은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후 오직 출세만을 위해 재혼인 아내와 결혼한, 처가의 데릴사위같은 존재이다.

즉 사회적으로는 성공하였으나 내면적으로는 공허하고 피폐한 상태의 주인공이다. 무진으로 가는 버스 안 풍경은 그가 완전히 지쳐있고 그 핍진한 삶에 얼마나 지독한 염증을 느끼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무진에 도착한 후 주인공은 우연히 인숙이란 음악교사를 알게 되고, 후배인 박의 연모의 대상이자, 동기인 조의 육탐의 대상인 그녀와 하루 만에 친해져서 몸과 마음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즉 소외된 주체들, 특히 수컷들 사이의 경쟁에서 팔루스를 당당하게 확보, 향유하는 승리자가 된 것처럼 보인다(That's it!).

그러나 예정되어 있던 일주일의 휴가기간 동안 그녀와 애인 행세를 하며 신나게 지내보려는 찰나, 서울에서 '회의에 참석해야 하니 긴급하게 상경하라'는 아내의 전보가 도착하고 주인공은 이 행복한 꿈에서 깨어날지 말지 한참을 망설인다.

이는 상징계의 끈질긴 억압과 고정관념에 의한 불안의 증상('세상이 왜 이래?')이 다시 찾아온 것으로, 주인공 자신의 순수 욕망이 아닌 타자의 욕망대로 욕망하며 살아야 되는 세상이 싫다는 의미이기에 증상은 진리의 전령인 셈이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이렇게 결심한 후 희중은 인숙에게 '(전략)...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저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지만,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버렸다.'

차마 자신도 속이지 못할 거짓말을 그녀에게 할 수 없었고, 희중은 결국 현실 속에 주저앉고 만다. 무진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주인공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인숙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자유의지 없이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무력함과 비참함 등의 불편한 진실 때문이다.

요컨대 주인공은 현실 세계에서는 성공한 사람이지만 자기 일에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기 위하여 고향인 무진을 찾는다. 그렇지만 거기에서도 자신의 실재를 찾지 못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알 수 없는 행동만 하게 된다. 

겉보기에는 그저 희미한 안갯속에 하는 여행이지만, 사실 안개는 주인공이 염원하는 욕망의 부분대상으로서,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오브제아다. 즉 안개는 침묵함으로써 가부장적인 상징계를 빠져나가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는 '기표 너머의 유령'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生 자체가 누구도 알 수 없는 안갯속의 삶, 곧 환상이자 신기루같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실재로부터 소외된 우리는 쾌락원칙에 따라 욕망의 근원이자 비언어적 세계인 충동(Drive)의 세계로 잠시 떠나보지만, 결국 현실원칙에 의거하여 자신이 떠나온 일상인 욕망(Desire)의 세계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 196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 196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1948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이 유명한 첫 문단으로 시작하는 <설국>은, 시마무라라는 도쿄 남자가 설국의 한 온천장(니가타)에서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게이샤 고마코에게 끌려 그곳을 찾아가면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타고 전개된다.

공허함과 우울함에 시달리는 시마무라는 고마코와의 관계를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고마코가 있는 온천장에서 부엌일을 하는 요코에게도 끌리면서 삼각관계를 만든다.

열심히 살아가는 두 여인이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를 현실세계로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시마무라가 지닌 허무의 벽을 넘지 못한다.

줄거리보다는 자연 배경과 인물에 대한 묘사(언표)가 압권이며, 허무주의적인 시마무라와 순수하고 열정적인 고마코와 요코의 대립을 통해 삶과 인간 본성, 인간 행위의 즉시성과 찰나성, 자연의 무한함과 인간 행위의 유한성을 미학적으로 짚어나간다.

<설국>은 또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동경을 노래한다. 즉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하찮은 곤충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시마무라는 유심히 관찰한다. 몸부림치다 이윽고 조용한 죽음을 맞이한 곤충을 손에 쥐고서, 그는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가' 하고 읊조린다.

이처럼 주인공의 비정하고 절제된 시각을 통하여 환상적이고 싸늘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섬세하고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문체로 묘사되는 모습들, 곧 근대화로 손상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간직한 설국의 풍광, 아름답고 관능적인 고마코, 맑고 순수한 요코의 모습 등은 농밀하고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현실세계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준다.

단순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비교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상징계를 넘나듦으로써 시대를 앞서간 무의식적 소설이란 측면과 보편적인 인간애로 승화시키는 내용면에서, 상징계 내부에 갇힌 의식의 흐름을 바탕으로 투명하게 직조된 소설로써 노벨상을 수상한 <설국>에 비해 <무진기행>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알차고 아름답다.

소설 출간이후, 실제로 서울역에서 무진행 기차표를 끊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무진기행>을 대한민국의 노벨상감으로 추천하는 당신이 유빕이다.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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