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돌아가는 당신이 유빕이다.

 

의식의 지향성 개념을 확립한 후설(Husserl)의 현상학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두 사람이 바로 사르트르(Sartre)와 메를로퐁티(Merleau-Ponty)인데 절친이면서도 서로 정반대의 길을 걸어갔다.

사르트르는 의식하는 자아(自我)를 "텅 빈 것"으로 보았기에 칸트(Kant)의 관념론으로 돌아간 반면, 메를로퐁티는 의식 주관 즉 '체화된 의식'을 감성, 경험, 지각, 욕망, 의지 등이 "꽉 찬 것"으로 보았기에 니체(Nietzsche)의 관점주의로 기울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두 사람의 '자유'에 대한 입장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있고 흥미로운 일이다.

 

▲ 인문학적,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사상과 저서들을 남긴 사르트르의 저작이다. 존재란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그의 고민과 주장들을 책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르트르는 그렇게 존재의 의미에 대한 끊임  없는 의문을 풀어 가는데 있어 스승이라 할 수 있는 하이데거의 현상학 개념을 이어받는 한편, 더 나아간 사상적 틀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자료=온라인서점 yes24 책소개)
▲ 인문학적,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사상과 저서들을 남긴 사르트르의 저작이다. 존재란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그의 고민과 주장들을 책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르트르는 그렇게 존재의 의미에 대한 끊임 없는 의문을 풀어 가는데 있어 스승이라 할 수 있는 하이데거의 현상학 개념을 이어받는 한편, 더 나아간 사상적 틀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자료=온라인서점 yes24 책소개)

 

◇ 사르트르의 절대적 자유 : <존재와 무(無)(1943)>

 

20세기 전반 양차대전의 발발로 그동안 서구 사회를 이끌어왔던 기독교적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회의, 인간 이성에 대한 불신, 실존적 불안, 세계의 부조리와 무의미 등이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인간성의 회복'을 강조하는 실존철학을 몰고 왔다 :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인간은 자유롭지 않은 자유가 없다.'

 

인간만의 특별함에 대해 근대 철학에서는 '이성(理性)'을, 하이데거(Heidegger)는 '실존(實存)'이라는 존재의식을 들었다면, 사르트르는 (끊임없이 자신을 벗어나 외부를 지향하는) 의식이라는 '자유(自由)'를 꼽는다.

인간은 '피투(被投)성이', 즉 우연히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자신의 의식을 통해 세계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물들과 구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죽을 때까지 미래를 향해 고독하게 자신을 창조해나가야 함과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 끊임없이 타자(他者)와의 갈등과 투쟁의 반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 세계에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사르트르의 존재론이 시작된다.

그는 의식을 가지지 못했다는 면에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를 사물존재(事物存在)로 부른다. 헤겔(Hegel)과는 달리, 사르트르의 '즉자(卽自)'는 사물존재(그저 그렇게 있음. 즉 아직 대상이 나타나지 않은 것)에게만 적용된다.

한편 이 세계의 무차별적이고 미분화된 암흑 상태를 꿰뚫는 빛은  인간존재(대자존재로 칭함)의 의식으로부터 온다. 여기서 '대자(對自)'란 의식 안에서 (이물질이 들어와) 대상화(對象化)가 일어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즉자'를 부정한다.

헤겔이 신의 세계에서 즉자와 대자 관계를 설정했듯이, 사르트르는 삼라만상 중에서 인간만이 그럴 수 있다고 보았다. 고로 즉자의 부정, 이것이 곧 무(無)의 개념이다.

즉 그대로 있음[有]을 부정함이 무(無)다. 그렇다고 의식이, 혹은 인간이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그 내부가 텅 비어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요컨대 즉자존재(卽自存在)는 '존재 그 자체'로서 보이는 대로가 그것의 전부인 것을 말하고, 대자존재(對自存在)는 '의식 그 자체'로서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다는 뜻이며, 대타존재(對他存在)는 '인간 그 자체'로서 타인과 대면한다는 의미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거기에 그냥 머물러 있지 않는다. 우리는 늘 미래의 가능성을 지향하며 나아간다. 이처럼 무성(無性)으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향하여 나아감이 '자유'인 것이다.

한편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타자의 시선을 회피할 수 없는 "불안한" 운명이다. 왜냐하면 자기 안의 타자도 타자이기에 이러한 대타존재는 사물화ㆍ객관화ㆍ즉자화(卽自化)를 통하여 결국 자기를 굴복시키는 존재이므로.

그 결과, 사르트르가 '내 속에 있는 타자의 시선은 지옥이다'라고 설파하면서 마치 라캉(Lacan)의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사르트르의 관심은 인간에게 주어진 비극적 조건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 스스로 극복('자유')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보여 진다.

 

▲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독일 고전 철학의 가장 큰 대표 철학자. 칸트철학을 계승한 독일관념론의 완성자라 일컫는다. 일부 평론가들은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에게 흘러들어와 독일 관념론이라는 호수에 고였다가 헤겔을 통해 흘러나갔고 이후 모든 사상의 원천이 되었다”라고 지적한다. (자료 = 네이버 백과. 현대 철학의 원천, 헤겔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2008. 강성률, 반석)
▲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독일 고전 철학의 가장 큰 대표 철학자. 칸트철학을 계승한 독일관념론의 완성자라 일컫는다. 일부 평론가들은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에게 흘러들어와 독일 관념론이라는 호수에 고였다가 헤겔을 통해 흘러나갔고 이후 모든 사상의 원천이 되었다”라고 지적한다. (자료 = 네이버 백과. 현대 철학의 원천, 헤겔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2008. 강성률, 반석)

 

◇ 메를로퐁티의 상대적 자유 : <지각의 현상학(1945)>

 

메를로퐁티(이하 퐁티)가 말하는 지각은 본능적인 하부구조(무의식)와 지성의 작용을 통해 그 위에 구축된 상부구조(의식)를 포괄하며 꽉 차있기에 생명적인 속성과 합리적인 지향을 모두 포함한다.

고로 우리는 자연적 세계를 따라 사회적 세계를 대상이나 대상의 총합으로서가 아닌, 실존의 장(場)이나 차원(次元)으로서 재발견해야 한다.

이는 경험론적 지각과 차별화되며 과학적 사유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세계로 참되고 정밀한 세계의 분출이 일어나는 원천이 된다.

사르트르와는 달리, 퐁티의 대자존재는 타자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인간 존재를 ‘세계-내-존재’로 구조화했기에 코기토는 더 이상 사유하는 자아가 아니라, 행위하는 자아이자 몸적 존재다. 움직이는 몸인 나는 타인과 대상, 그리고 세계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다.

예컨대 우리는 시ㆍ공간적으로 타인과 부대끼며 정(情)으로 살아왔기에 '내 안에 너 있다'는 것은 곧 ‘세계-내-몸’을 의미하며 상호주관성으로 연결된 유기체로서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고로 퐁티는, 현상학의 가장 중요한 열매가 세계, 즉 합리성이라는 개념 속에서 극단적인 주관주의와 극단적인 객관주의를 접합시킨 것이므로, 세계와의 접촉점인 몸(혹은 실존)이야말로 절대적인 원천이면서 그 "탈자성(脫自性)"에 의해 세계로 열려 있는 지향적 의식의 담지자(擔持者)로 보았다.

즉 신체가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주체임을 역설한다. 타자의 신체가 나의 신체와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이 신체에 관하여 타자가 제2의 자신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나의 신체와 타자의 신체가 신체도식(身體圖式)에 의해 뭉뚱그려진 한 의미를 공유함으로써 의사소통이 되는 동시에 상호주관성이 핵심 개념이 된다.

즉 외부 없는 절대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사람들은 퐁티가 사르트르의 절대적 자유를 비판한다고 평가한다.

그 결과, 퐁티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세계에 의해 조건지워진, 상대적 자유를 말하며 그것이 ‘상황의 자유’이자 ‘선택의 자유’임을 강조하는 관점주의(니체)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상호주관성과 시ㆍ공간적으로 제한된 자유로 말미암아 우리는 늘 변화에 열려있는 가능성의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뿌리에는 여지없이 유서 깊은 독일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3H(헤겔ㆍ후설ㆍ하이데거)가 공연한 말이 아니다. 이 산맥을 넘어야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지평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전으로 돌아가는 당신이 유빕이다.

 

▲ 저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 저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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