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동양에서 성군의 표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요(堯)임금이 어느 날 민정시찰에 나섰을 때다. 어느 마을 끝에 이르니 한 노인이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 발로 땅을 구르며’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역사 기록에 남은 것은 대략 이런 노래였다.

일출이작 일입이식(日出而作 日入而息,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경전이식 착정이음(耕田而食 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함포고복 고복격양 (含哺鼓腹,鼓腹擊壤, 내가 배부르고 즐거운데)
제력하유우아재(帝力何有于我哉,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요임금 스스로 백성들의 편안함을 확인하고, 또한 그 결과 자신이 정치를 잘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했다는 ‘격양가(擊壤歌)’다.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태평성대의 극치를 보여주는 고사로 오늘날까지 흔히 인용된다.

지금의 우리, 아니 ‘남조선’의 현 상황이 마치 요순시대의 태평성대인 것처럼 평화롭다. 북한의 핵위협이니,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이니 하는 것들은 마치 먼 나라의 얘기로 들리는 세태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움직임을 대하는 외국의 시각은, 한반도는 가히 일촉즉발, 폭풍전야의 긴장감으로 휩싸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차례나 전쟁도 불사하겠다던 북한이 결국 마지막 상황까지 연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4월5일 러시아와 영국 등 평양주재 외국 공관들에게 직원 철수를 권고하고 나선데 이어 8일에는 김양건 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가 그들의 외화벌이 창구인 개성공업지구 사업을 잠정 중단하고 북한 근로자들을 모두 철수한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은 전시상황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 북한은 핵개발이나 전쟁 위협을 수없이 반복해왔다고 하지만, 최근 북한 당국자의 발언들은 “곧 전쟁이 일어난다. 살고 싶으면 모두 도망가라”는 수준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양치기 늑대소년’ 효과 때문일까. 문제는 우리 ‘남조선’ 국민들의 무감각이다. 이젠 그런 일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좀 더 강조하는 뜻으로 표현한다면, 오늘의 우리는 요순시대 격양가를 부르듯 그저 평온하고 일상적일 뿐 좀처럼 변화의 조짐이란 없다.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물론 화들짝 놀라 물과 라면 등 비상식량을 사재기하고, 집밖에도 못나가 전전긍긍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노리는 ‘남조선’의 긴장을 조성하고, 계층 간의 갈등을 조장시켜 북한이 요구하는 핵보유국 지위보장과 경제 원조를 보장받으려는 속셈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우리를 보는 밖의 사람들은 더 긴장되어 있다. 연일 한반도의 일촉즉발 위기상황을 보도하고, 그에 대해 걱정스런 눈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친척 경조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처럼 귀국했다는 미국 교포는 자신이 한국에 간다고 하니 미국 친구들이 모두 말리더라는 것이다. 곧 ‘남북전쟁’이 터질 텐데 왜 그 같은 화약고에 가느냐고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 역시 은근히 겁이 나기는 마찬가지여서 한국의 친척 집과 친구들에게 알아보려고 전화를 하니 세상은 전혀 딴 판이었다. 그들 모두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미국 살더니 웬 걱정이 그리 많아졌느냐고 핀잔까지 하는 통에 무엇이 과연 실제상황인인지 종잡을 수 없더라는 것이다.

우리 역시 외국의 소리를 들을 때는 마치 그 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고 보고 그 나라 가기를 꺼려한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연일 전쟁을 하는’ 이스라엘이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어디 어디는 도저히 위험해 갈 수 없는 나라들이다.

하지만 외국의 객관적인 기관들이 내놓는 보고서들은 한국 역시 극히 위험한 나라 중의 하나다. 특히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사건이 실제 일어난 이후 한국은 남북전쟁 상태에 이미 들어간 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신 위험인자를 제거하기 위해 북한을 선제공격하겠다고 나선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바로 국제 해커 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다. 그들은 지난 4일 북한의 대남 선전용 인터넷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해킹해 회원 9001명의 정보를 공개했다.

국내 한 언론에 따르면 그들은 또 추가 해킹 예정일을 밝혔다. 오는 6월25일이다. 공격명은 ‘오퍼레이션 코리안 워(Op Korean War)’,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 일에 맞추어 “북한의 모든 내부 전산시스템을 점령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선언하고, “김정은 정권을 인터넷상에서, 사회적으로 지워버리겠다”고 경고했다.

어나니머스 측이 최종 파괴 목표물로 지목한 것은 북한 인터넷 시스템인 ‘광명’이다. 해당 시스템은 일반적인 인터넷 시스템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자신들이 만든 ‘닌자게이트웨이’를 북한의 폐쇄형 인터넷에 설치해 그들의 정보통신을 북한주민들과 세계 네티즌들 간의 소통이 가능하도록 개방시키겠다는 호언장담이다.

북한의 굶주린 주민들을 북한 정권의 ‘노예’로 표현한 서방언론들의 영향을 받은 듯, 마치 그들 스스로 ‘정의의 사도’나 현대판 ‘의적 로빈후드’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누가 어떤 근거로 제시한 것인지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가렛 미첼(Margaret M. Mitchell)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와 해리엇 스토(Harriet B. Stowe)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이 미국을 움직인 단 두 권의 베스트셀러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가장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책 중의 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특히 영화로 만들어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덕분에 그 소설의 대강 줄거리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됐다. 바로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다룬 남부 타라(Tara)농장의 여주인 스칼렛(Scarlett)의 얘기다.

남북전쟁 원인 중의 하나에는 노예해방 문제가 늘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남북전쟁은 다시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터지자 링컨대통령은 저자 스토 부인을 접견하고 “이 큰 전쟁(노예해방 남북전쟁)을 일으킨 책을 썼던 작은 여인이 바로 당신이었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 가축과 같은 흑인 노예들의 비극적인 삶을 그대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의 말로는, 당시 미국 남부는 노예 제도를 기반으로 한 대농장 중심의 자유무역을 주장했고,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북부는 그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남부와 북부가 각각 정부에 요구하는 것도 달랐다. 남부는 광대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수확과 판매를 위해 노예제 허용과 자유무역, 주(州)의 독자적 자치정부를 원했고, 반대로 북부는 미국식 공업화와 자본주의 확립을 위해 노예제 폐지와 보호무역, 강력한 중앙정부를 원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860년 북부의 공화당에서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링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링컨은 남북의 분열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남부가 따로 연합군을 조직해 북부에 대항하면서 남북 전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재래식 전쟁에서도 남북 합쳐 60만 명이나 희생돼야 했다.

지난해 가을 국내 한 신문은 AP통신의 평양발 기사를 인용하면서 북한에서 미국 자본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문제의 이 소설이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에 처음 번역, 출간돼 열풍을 일으킨 후 지금까지 각계각층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신문은 북한 독자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인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약육강식 상황에 공감하는 것이 소설의 인기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남북전쟁 전후 남부인들처럼 북한 주민도 고통스러운 시기를 견디는 법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한 독자는 “북한에서는 강자만이 살아남는데 그게 바로 소설의 메시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젊은 여성들은 주인공 스칼렛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용기를 잃지 않는 모습에 감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미국을 움직였고, 그 결과 오늘의 미국을 탄생시키게 되었다는 두 권 소설 저자는 모두 여성이다. 링컨이 ‘매우 여성스런’ 해리엇 스토 여사를 만났을 때 “위대하고 강력한 소설을 쓴 부인의 용모가 헤라클레스처럼 강인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는 것처럼 ‘배 두드리고 흥겹게 노래하는’ 태평성대로 가는 길은 부드러움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반도에서 ‘남북전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황량한 들판에서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희망을 말한 타라농장의 스칼렛처럼 나는 내일의 태양이 우리 민족 모두에게 찬란하게 뜰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 ‘부드러움’으로 남북통일을 대비해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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