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는 1960년에 일어난 4.19혁명을 4.19운동이라 부른다. 그가 쓴 ‘20세기 우리 역사’에 따르면 ‘사회혁명’이란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으로부터 국가권력을 탈취하여 스스로 권력을 장악하여 새로운 경제체제를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4.19혁명의 주체 세력은 그렇지 않았다. 청년, 학생층, 지식인층, 도시빈민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와 독재체제에 항거하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스스로 권력을 쥐어 팔에 완장을 차고 사회개혁을 단행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혁명이라 부르는 데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4.19혁명’이라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한국의 대역사가가 ‘4.19운동’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정답일 수 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과 역사서가 4.19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혁명’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통쾌함 때문일 것이다.

과학사가 전공인 박성래 교수는 월간중앙 2005년4월호에 쓴 ‘과학자의 진실’에서 영어 레볼루션(Revolution)이라는 단어의 뜻, 즉 ‘혁명’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의 ‘공전(公轉)’이라고 말한다.

공전이란 지구 대기권 밖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행성이나 위성, 또는 혜성 등의 한 천체가 다른 천체의 둘레를 주기적으로 도는 운동이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것이 바로 양력 1년이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것이 또한 음력 한 달이다. 그렇다면 왜 ‘공전’이라는 말이 ‘혁명’이라는 단어로 발전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이라는 사실이 인간 의식의 큰 변화, 또는 과학 발전의 대변혁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천기(天機)를 감히 미천한 인간들에게 누설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이 일반적이지만, 중세 사람들까지에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눈에 당장 보이는 명백한 진리 중의 진리였다.

아침에 동쪽 하늘이 밝아오면서 태양이 떠오르고, 저녁이면 서쪽 하늘에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남기며 사라지는 것이 태양이었다. 하루 종일 태양은 일정한 궤적을 따라 인간이 사는 땅을 돌고 돌았던 것이다. 달 또한 마찬가지였다. 달이 인간이 사는 지구를 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였다. 그러니 밤하늘의 모든 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에 출간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꾸어 버리고 말았다. 이른바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os)의 우주체계에 정면으로 대항한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AD 127~145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지리학자·수학자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 중앙에 있고 태양계의 천체들은 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의 순서로 있다고 생각한, 이른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Ptolemaic system)를 완성한 사람이다. 따라서 지구는 신이 창조한 우주의 중심으로 아주 신성하고 거룩한 땅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그 ‘사상’은 ‘영원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이라는 반역의 말을 하고 다니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더구나 그는 가톨릭 신부였다. 오죽하면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동료 가톨릭 신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조차 그를 비판하고 나섰을까.

“하늘이나 하늘의 덮개, 해와 달이 아니라 지구가 회전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발버둥치는 오만불손한 주장이 나왔다. 그 바보는 천문학 전체가 뒷걸음치는 것을 바라고 있다.”

마르틴 루터는 코페르니쿠스를 ‘바보’라 지칭했다. ‘밑줄 긋는 여행’을 쓰는 한 블로거의 평가에 따르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많은 신자들로 하여금 교황청에 등 돌리게 만들었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은 신(神)으로부터 등 돌리게 할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가히 상상도 하지 못할 ‘천지개벽’할 말이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인간은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다. 낙원으로의 복귀,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 거룩함, 죄 없는 세상, 이런 것들이 모두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새로운 우주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사고의 자유와 감성의 위대함을 일깨워야 하는 일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괴테의 언급이다. 물론 당시 교회의 ‘믿음’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하늘의 뜻’이자 바로 ‘과학’이라 생각해 왔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이 도전을 받는다는 것은 곧 교회에 대한 도전이었다.

자칫하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이 가톨릭의 우주관, 인간관, 신앙관을 뿌리 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영원한 낙원 에덴동산’을 갖고 있는 지구라는 존재를 보잘 것 없는 태양의 부속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그 속에 사는 인간 역시 하찮은 존재에 불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천지만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를 왜 굳이 하찮은 지구로 내려 보냈다는 것인지 당시로서는 설명하기 애매했다. 인간이 과연 신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는 존재인지조차 불투명했다. 따라서 교회는 코페르니쿠스라는 이단자의 사악한 말을 입에 담지도 못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 코페르니쿠스의 조국 폴란드에서는 ‘이단자’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지 거의 500년 만에 그의 장례식을 정식으로 다시 치렀다. 그 자리에서 고위 성직자들을 포함해 폴란드 국민들은 그를 국민적 영웅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이후 60여년 만인 1609년 중세 종교 법정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가 역시 이단자로 파문당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92년 10월 복권됐다. 교회가 그들의 공적을 인정하기 훨씬 전부터 역사는 그 두 사람을 일컬어 ‘과학혁명의 주도자’라고 말해 왔던 것을 교회도 결국 추인한 것이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레볼루션(Revolution)의 진실을 말한 것이 바로 혁명이란 단어가 됐다. 그렇듯 독재로 억압받던 인권의 진실을 말한 것이 바로 한국의 민주화혁명이다. 그것은 1960년 4.19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로부터 1964년의 6.3학생운동과 1970년대의 반독재 투쟁과 부마 학생운동, 1980년대 초의 광주 민주화 운동과 군부독재 투쟁에 이어 1987년의 6월 항쟁을 마지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도 4.19혁명을 맞으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명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도 보이듯 프랑스를 민주화로 이끈 프랑스대혁명에서도 많은 피를 불렀다. 2010년 경 중동의 이슬람국가에서 일어난 민주혁명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돼야 했다.

현재로서 아직도 남은 우리의 민주화운동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남북통일에 의한 ‘북한민주화’와 영세서민들을 위한 ‘경제민주화’일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내일의 태양이 우리 민족 모두에게 찬란하게 뜰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북한민주화와 경제민주화를 위한 두 혁명이 곧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일치한다. 우리에게는 ‘홍익인간’ 정신과 ‘홍익인본주의’라는 자본주의 혁명의 두 도구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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