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돈과 권력의 힘은 강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그것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낳았다. 돈을 잡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돈을 잡았다면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인 것이고, 권력을 잡고 싶거나 또는 다른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이 뜻한 대로 이루었다면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인 것이다. 그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이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대기업의 힘이 크다. 돈에 의한 사회적 권력이 그 몇몇 대기업 속에 밀집돼 있어 그럴 것이다. 그런 대기업 내에서도 큰소리칠 수 있는 위치인 임원이라고 하면 언제 어디서든지 목에 힘주고 다닐만하다.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고서는 감히 그에게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걸지도 않는다. 더구나 그에게 잘 보여 일감이라도 따내고, 납품대금 결제라도 빨리 받아내려면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렇게 하려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줄을 서고 있으니 그들 입장에서 보면 한국사회는 큰소리치고 살 만한 땅이다.

지난 4월15일 오후3시, 한 대기업 간부(상무)님이 미국 행차 길에 나섰다. 그런데 심사가 뒤틀리는 일이 하나 생겼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여객기 비즈니스 석 옆에 다른 사람이 앉은 것이다. 비행기 비즈니스 석이란 옆에 사람이 앉아도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하지만 이 상무님은 그것도 싫으셨나 보다. 기차나 고속버스를 탔을 때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고 혼자 가는 것 같이 혼자 타고 싶으셨던 것일까. 상무님은 옆자리가 비어 있지 않은 데 대해 담당 승무원에게 불만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감히 내 옆자리 티켓을 왜 팔았느냐는 뜻일지도 모른다.

비행기가 이륙한 뒤 3시간 후, 한국 시간으로 저녁식사를 할 무렵인지라 담당 여승무원은 그 분이 사전에 요청하신 비빔밥을 기내식으로 갖다 드렸다. 그때부터 대기업 간부의 화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밥이 설익었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기내 서비스는 세계 최고수준인지라 하는 수없이 새 비빔밥으로 바꿔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설익었다고 퇴짜를 놓는 것이었다.

그 대기업 간부는 이어 “비빔밥은 안 먹겠으니 그 대신 라면을 끓여오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미주노선의 비즈니스 석에서는 봉지 라면도 끓여준다고 한다. 결국 여승무원이 라면을 끓여오자 맛을 본 그는 “라면이 제대로 익지 않았다”고 다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끓여 온 라면에 대해서도 “너무 짜다”는 등 라면을 세 그릇이나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담당 여승무원에게 반말과 폭언을 했으며 그릇을 통로에 던지기까지 했다고 승무원들은 주장했다. 또 “안전띠를 매 달라”는 승무원들의 일반적인 안전수칙 준수 요구에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소란이 있은 후 4시간 뒤, 두 번째 기내식을 제공할 시간이 되자 해당 여승무원은 대기업 간부님에게 감히 식사주문을 받으려 했으나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다는 뜻일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이참에 그는 모든 승무원들의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셨나보다. 그 간부는 로스앤젤레스 공항 착륙 2시간여를 남기고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준비하는 주방인 ‘갤리’에까지 직접 쳐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왜 라면을 주문했는데 가져다주지 않느냐”며 손에 들고 있던 잡지책으로 담당 여승무원의 얼굴을 때렸다고 승무원들은 주장했다.

결국 다른 승무원들로부터 여승무원 폭행을 보고받은 항공기 기장(52)은 로스앤젤레스 공항 관제탑에 착륙 허가를 받으면서 이 사실을 신고했다. 기내에서 승무원을 폭행하거나 난동을 부리는 행동은 다른 승객들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중대한 범죄행위로 간주돼 체포 신청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착륙과 동시 미국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출동했다. 그 간부는 폭행신고에 대한 조사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FBI요원들의 말을 듣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이상은 최근 언론보도 내용이다.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이 일은 한 승객만이 아닌, 한 대기업 간부만이 아닌, 어쩌면 우리 한국사회가 포괄적으로 안고 있는 돈과 권력의 횡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분노한 네티즌들에 의해 그 간부의 정체를 폭로하는 신상 털기가 시작됐다. 해당 대기업도 자체 조사를 벌여 사실이라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여기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富)의 독점에 있다. 소수가 지배하는 체제다. 그로 인해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은 더 깊어만 간다. 학자들은 이 같은 빈부격차의 심화에 이어 부(富)의 세습에 의한 불공정한 소득재분배 및 기회의 불평등에 의한 시장기능의 불안정성을 자본주의 3대 문제점으로 지적하곤 한다.

이를 극복하자고 등장한 것이 바로 공동체주의(共同體主義)다. 어울림, 즉 함께 어울려 살자는 것이다. 오바마의 미국 행정부는 이를 실천하는 우선적인 방법을 교육의 개선에 두고 있다고 한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빈곤층 가정에 비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고, 이 같은 교육 여건에 따라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받는 연봉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교육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부익부빈익빈은 개선될 수 없다는 시각 때문이다.

나머지 문제점들도 마찬가지다. 부(富)의 세습에 의한 불공정한 소득재분배를 낳는 소유소득을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땅과 건물, 주식을 소유한 부모가 이를 자기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세습시켜 또 다시 기업이나 소득원의 지배구조를 만든다면 아무리 경제민주화를 떠들어댄들 매일 그 밥에 그 나물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그래서 말로만 기회의 평등을 떠들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 공동체주의자들의 주장이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의 이슈가 됐던 ‘경제민주화’ 이전에 ‘유교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동체주의도 자본주의시스템이라면 돈과 권력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으니 동양적 도덕관인 유교(儒敎)이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경제 원리에 적용시키자는 말이다. 하지만 공맹사상이 주류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유교이념은 이미 이조 500년간의 통치경험에서 실리(實利)가 명분(名分)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었던 실패한 시스템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기독교문명인 서양이나 유교문명인 동양의 공동체주의가 갖고 있는 장점을 한국경제의 개선안으로 흡수하자는 데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이 이들을 대부분 포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홍익인본주의를 더 강조하고 있다.

인본주의의 개념은 종교적 율법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르네상스 시대의 자유주의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홍익인본주의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공동체주의적인’ 홍익인간 정신에 자유주의 사상을 ‘어울림 정신’으로 융화시키는 작업이다. 그래서 ‘경제’라는 먹거리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계급으로부터의 자유, 죄악으로부터의 자유, 고독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

그 어울림의 배경은 인권(人權)과 평등(平等)이다. 대기업 간부가 돈과 권력이 없었다면 과연 일반적인 서비스 요구 수준을 벗어나 항공기 여승무원을 종처럼 부리고 폭행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정말 그 사건이 사실이고, 그 간부가 정신질환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가 빚어낸 항공기 테러다. 말로만 홍익인간 정신을 우리나라 교육법 제2조에 넣지 말고, 실제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강조해나갈 것을 교육당국에 강력히 주문한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뷰티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