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흔히 빨갱이들은 믿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반공교육을 받고 자랐던 세대인지라 6.25 한국전쟁을 직접 겪으신 집안 어른들이나 선생님들로부터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담긴 분노의 표현들을 많이 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반공’이라는 단어조차도 모르고 태평성대처럼 지내왔다. 2000년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비행장에 내려 김정일 위원장과 포옹을 하고, 이후 다시 등장한 노무현대통령이 20007년10월 김정일과의 회담을 위해 육로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평양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반공’이 아닌 ‘민족’이란 단어에 익숙해졌다.
 
그러던 내가 요즘 어릴 적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개성공단 폐쇄사건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과거 정권들이 김정일을 만나는 대가로 몇 조원을 퍼주기 했느니, 남한에도 급식비를 못내는 아이들이 몇 만 명인데 몇 천 억 원의 식량지원을 하고 있느니 떠들어도 무심코 넘어가던 나였는데, 이번에는 고개를 갸우뚱해야만 했다.
 
정말 어른들의 말씀대로 사회주의 체제의 북한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공산주의자들과는 정말 그 어떠한 일도 함께 할 수 없는 것인가?
 
개성공단 사업은 ‘햇볕정책’을 내건 김대중 정부의 치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1998년2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대화는 이전 김영삼 정권 때보다 훨씬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 여세를 몰아 남한의 현대아산 측과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2000년8월22일 개성공단 개발 합의서를 체결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그 같은 일련의 공로들로 인해 그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김대중 정부가 합의한 개성공단 사업은 2003년2월에 출범한 노무현정부에 의해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취임 4개월 만인 2003년6월부터 즉각 개성공단 건설에 나선 노무현 정부는 1년만인 2004년6월 개성공단 시범단지 2만8000평의 부지를 조성했으며, 다시 6개월 뒤인 12월부터는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 제품이 이른바 주방용품인 냄비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된 첫 제품이라 하면서 그 냄비를 ‘통일냄비’라 불렀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 ‘북한 퍼주기’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일면서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북한은 개성공단을 우리 측을 압박하는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될 때마다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들이밀며 위협했다. 그것이 결국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터지고 만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남북 간의 대화에는 서로가 쓰는 문법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할 정도의 골수 공산주의 국가에 사회주의 체제다. 현대국가의 형태를 가진 중세왕국이라고 할 정도로 김일성 가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나라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가족 3대’의 말이 절대복종해야할 어명(御命)으로 작용되고, 밥은 굶어도 빛나는 주체사상을 잊으면 안 된다.
 
2003년8월 대구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이 도로변에 설치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때 함께 악수하는 사진이 새겨진 플래카드를 “불경(不敬)스럽다”며 떼어내고 이를 사진 찍은 지방지 기자의 카메라까지 빼앗는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이들은 도로변 가로수들에 걸려 있던 가로 6m, 세로 0.9m 크기의 플래카드를 조심스럽게 떼어낸 뒤 “장군님의 사진이 지상에서 너무 낮게 걸려 있는 데다 비를 맞도록 방치돼 있다”며 주위에 있던 ‘남조선 주민들’에게 항의했다.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높이에 걸고, 비가 오더라도 안 맞게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그 플래카드는 예천군농민회 등 지역주민들이 차를 타고 지나가는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환영하기 위해” 제작해 가로수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남북정상회담 때 웃으며 악수하는 김대중-김정일의 사진을 플래카드에 넣으면 북한 선수단이 더 좋아할 것 같았고, 그래서 플래카드 환영 문구도 “북녘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로 했던 것이다.
 
이 항의사건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80년대까지 주입식 ‘반공’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북한 체제를 실증적으로 이해하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되었다. 우리와 같은 민족이지만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해준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남북 간의 민족 정체성 찾기였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다가는 평화통일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고, 자칫 제2의 6.25와 같은 핵전쟁이라도 터지면 민족은 하루아침에 멸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일어났다. 그래서 정치를 떠나 남북이 우선 경제적으로 협력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체 사상체계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홍익인간 정신이었다. 북한과 남한이라는 이질적인 체제를 이끌어온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인정하고,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함께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영훈 교수(정치학)의 지적처럼 ‘인간의 복지’를 국가와 정치가 추구할 최상의 목표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홍익인간이다. 개개인들에게는 이웃과 공동체를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하고, 헌신하는 삶을 안내하는 사상이다.
 
그래서 정영훈 교수는 “홍익인간 정신에 의한 상생의 삶은 고대 한국인들이 갖고 있던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알려주고, 현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공동체를 다듬고 개개인의 삶을 영위하는 과제에 관련된 지혜와 지침을 준다”고 지적했다. 우리 남북한 한 민족의 역사 속에서 현재의 고민들을 해결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과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신문화 유산이 바로 홍익인간 사상이다.
 
홍익인간 정신은 남북의 분단과 대결을 종식시키고 민족통일을 완성하며, 나아가 지구촌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성원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과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정신의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고 한국인인 셈이다.
 
개성공단 사건으로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할 것은, 극한 대결구도의 우리 민족이 과연 어느 길로 가야 할 것인가의 진로 문제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극도로 민감할 때인 금년 1월, 북한은 1992년 채택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무효화를 선언해 버렸다. “남조선 괴뢰역적패당이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유엔의 반공화국 ‘제재’를 실현시켜보려고 악을 쓰며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후 북한은 수없는 전쟁불사 위협을 쏟아내고 있다. 결국 우리 민족이 함께 살아가야 할 정신은 ‘홍익인간’ 사상 외에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남북한이 서로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사상이 바로 홍익인간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족 내부를 윤리적으로 정화하고 통합하는 과제와 관련하여 홍익인간이 갖는 의의는 지대”할 수밖에 없다.
 
그 홍익인간 정신은 우리 남한 내부에서 더욱 필요하다. 타인과 사회에 대해 이로움을 줄 것을 안내하는 구체적이면서 실천적인 내용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체제에 대한 우월성을 분명히 입증해야 한다. 사랑하고 봉사하며 타인을 배려할 것을 강조하기에 우리 남한 사회의 통합에 이어 민족사회의 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실천사상이 될 수 있다.
 
북한은 통일 이후 한민족의 정통성을 자신들이 더 확보하고 있다는 근거를 갖기 위해 단군릉을 복원하고 1993년부터 홍익인간 정신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제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에 투철한 북한 지도부가 됐으면 한다. 그나마 남북 간에 상생의 연결 끈이 아직 ‘홍익인간’으로 남아있어 다행이다.
 
2013년5월 현재 개성으로 가는 길은 막혔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개성공단은 재가동되어야 하고, ‘통일냄비’는 계속 생산되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10여 년 전부터 홍익인본주의를 주변에 강조해왔던 것을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시민운동으로 전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나와 이웃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길, 바로 홍익인간 만세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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