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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씨 일기 연재를 시작하며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한 사람의 진실이 그 민낯을 드러내는 곳은 병상 위에서, 또 감옥 안에서가 아닐까. 둘의 공통점이 있다. 죽음 혹은 절망이 코앞에 닥쳐 있다는 것. 즉, 죽음과 절망 앞에서 인간은 가장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고백록이 그렇고 감옥에 갇힌 사람의 편지나 일기가 그렇다. 그들의 글을 읽는 사람이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것도 거기서 묻어나는 절박감, 진실함 때문이다.

여기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우성씨의 옥중일기를 세상에 내놓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성실하고 모범적이던 한 탈북자 출신 공무원이 어느 날 아침(그는 2013년 1월 10일 아침, 간첩 혐의로 국정원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됐다) 국가권력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 직후 세상은 두 종류로 갈렸다. 그를 간첩으로 내몬 세상(D일보 등 언론이 가장 발 빨랐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고 지지해준 목회자와 신부, 동료, 그리고 변호사들.

 

   
▲ 유우성씨가 지난해 1월 수감부터 8월 석방될 때까지 구치소에서 기록한 노트 5권 분량의 일기장과 구치소에서 처음 기록한 1월 18일 일기 내용(오른쪽). ⓒ유코리아뉴스

그는 후자를 믿고 용기를 냈다. 서울구치소에서 써내려간 일기들은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항변이기도 하지만 진실을 위한 싸움의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각오하고 다짐하지만 숱하게 실망하고 절망한다. 그의 절망의 눈빛, 한숨 소리는 그의 일기 행간마다 그대로 배어난다. 마침내 지난 여름, 법정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국정원과 검찰, 주요 언론들이 덮어씌운 ‘간첩 혐의’를 무죄라며 벗겨줬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항소했고 우성씨의 간첩혐의를 입증하겠다며 새로운 증거까지 제시했다. 1년 남짓 싸우는 동안 우성씨도 변했다. ‘국정원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며 그래도 국정원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버리지 않았던 그가 자신과 같은 억울한 희생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끝까지 싸우기로 한 것이다.

그가 이렇게 결심하게 된 데는 지난 연말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변호사들과 보면서다. 국정원의 조작으로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든 경우가 자신 말고도 대한민국 현대사엔 많았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성씨가 끝내 승소하는 것, 그것은 우성씨 개인의 승리로 그치지 않는다. 숱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증거들을 조작해서 간첩을 양산해낸 구조악을 밝혀내는 일이고 그래서 마침내 그들마저 구원하는 일이고, 누구든지 그들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성씨 개인의 일기를 여기에 연재하는 이유다. 우성씨의 일기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된다. -편집자 주

내 나이 34세. 인생에서 반은 아니지만 3분의 1은 훨씬 더 살았다. 제일 좋았던 청춘시절을 대한민국에서 보냈으며, 그동안 또 노력도 하면서 살아왔다. 2006년 5월 21일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에 항상 아버지와 동생한테 미안했고 좀 더 잘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현재 인생에서 제일 왕성하게 활동하며 일해야 될 나이에 구치소에 구류되어 있다. 그것도 사랑하는 동생의 거짓 진술 때문에 나는 손에 이중수갑을 차고 몸에 밧줄을 묶고 국정원에서 하루종일 조사를 받아야 했다. 하루에 몇십 번씩 그냥 콱 죽어버릴까, 아니면 될 데로 되라, 하고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절대로 했다고 비굴하게 누명쓰고 합의 볼 마음은 죽어도 없다.

국정원 선생님들은 나를 너무 싫어한다. 미워 죽을 지경이다. 많은 증거물 앞에서도 계속 아니라고만 대답하는 내가 정말 미웠을 거다. 나는 요즘 들어 많은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국정원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정말정말 운이 나쁜 로또 맞은 놈인 것 같다. 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이렇게 국정원 조사받고 억울함을 당해야 하는지 나는 정말정말 운이 나쁜 놈이다!!!

   
▲ 지난해 8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에 의해 무죄 선고를 받고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직후 유우성씨가 호주인 친구와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DB

동생이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도 많이 해봤다. 아마 철없는 동생은 대한민국에서 나처럼 정말정말 살고 싶어서, 북한 보위부 임무를 받았다고 피해자처럼 자신을 위장해서라도 여기서 살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마음속 깊은 곳에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그동안 너무 고통스러워 이 오빠가 너무 미웠을 것도 같다.

마음속 한편은 동생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앞으로 다시 보고싶지도 않다!!! 그러나 동생 곁에 남아 있는 건 아빠와 나밖에 없다. 한국에서 나는 자유를 누리며 9년을 살았다. 그러나 어린 동생은 2006년 5월 어머님 사망 이후 집에서 엄마 역할과 집안일을 다해야 했다. 마음껏 부모 밑에서 뛰어놀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은 나이지만 허리가 안좋은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동생 마음이 이해될 것도 같다. 그리고 동생한테 정말 미안하고 지금도 너무 보고 싶다!

앞으로의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지 나도 모른다. 국정원 선생님 말대로 지금 현재는 나한테 이로운 증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조건이 불리하다. 아마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나중에는 괘씸죄까지 추가되어 실형을 더 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한테 가족이 소중한 것처럼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의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도 귀중하다.

다른 것은 다 용납하여도 그들의 신원을 북한 보위부 개××들한테 보냈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나중에 모든 불리한 증거물들이 내가 했다고 (증명)해도 나는 내 양심에 떳떳이 책임을 질 것이다. 내가 만약 국정원 선생님 말대로 합의하에 북한 갔다고 거짓 진술하면 돌아가신 어머님과 중국에 계시는 아버지, 또 나 자신한테 너무 부끄럽고 나중에 내 자식들한테도 평생 머리 못들고 살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 나쁜 짓도 하고 좋은 일도 하고 계집 짓도 하지만 내가 한 거는 한 것이고 아니한 것은 아니다!!!

억울하게 구속되고 형을 살더라도 내 자신과 가족들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자!!!

요즘 내 마음이 많이 나약해졌다. 희망이 없어 보이고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혹시 죽으면 황천에서 엄마를 만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약해지는 나의 마음을 바로잡고자 한 번 더 힘을 내고 이렇게 마음속에 생각을 글에 옮겨봤다.
사람은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는다고 한다. 나는 요즘 아침마다 기도한다. 하나님을 찾게 되고 구원을 요청한다. 평상시 교회 잘 안나가고 기도 잘 안하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순서없이 나의 심정을 적어봤다. 언젠가 내가 다시 이 글을 어떤 데서 어떻게 다시 읽을지? 아니면 다시 읽지 못할지.

2013년 1월 18일 구치소 독방에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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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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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7-03-17 22:30:58

    이거 지나간 기사지만 그래 고향그려야~!!!! 유우성 아니 유가강은 탈북자가 아닌 탈북화교맞다~!!!! 아직도 유우성씨와 유가려남매를 악마로 내몰생각인가? 내가봐도 정말 보기가 역겹다~!!!!   삭제

    • 고향그려 2014-10-04 20:47:34

      유우성은 탈북자가 아니다. 그는화교이지 왜 탈북자로 묘사하는지 모르겠다.감옥안에서야 다 억울하겠지...
      화교로서 북한에서 잘살고 잘먹고 살다가 여권을 가지고 중국에 들어와서 여권으로 한국온 사람이 무슨 탈북자인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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