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한국의 다단계판매 산업이 도대체 언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고질적인 병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7월21일 공개한 ‘2012년도 다단계판매업자의 매출액·후원수당 등 주요 정보’ 내용을 보자. 상위 1%미만 판매원은 연간 1인당 평균 5,046만 원의 수당을 받는데 비해 나머지 99% 판매원의 연간 1인당 평균수당액은 40만5,000원에 불과했다. 99명이나 되는 판매원이 한 달 교통비 정도에 불과한 돈을 1년치 수당으로 받으며, 단 한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판매활동에 나서는 꼴이다.

이것은 금년만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한국에 다단계판매가 도입된 지난 1990년대 초부터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악순환이다.

다단계판매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쳐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같은 소득의 불평등 때문이다. 단지 먼저 등록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늦게 등록한 후순위 판매원들의 판매활동에서 얻어지는 판매이익을 가로채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다단계판매의 이미지개선 노력은 큰 효과를 거둘 수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공정위가 파악하고 있는 2012년 기준 우리나라 다단계판매원은 모두 469만9,818명이다. 이중 단돈 1원이라도 수당을 받는 사람은 118만2363명이다. 나머지 351만7,455명은 수당 한 푼 받지 못한 채 물건을 팔거나 물건을 스스로 소비하고 있다. 물론 그중에는 자신이 필요한 제품만 사서 쓸 뿐 판매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많다.

수당의 총액을 보자. 작년에 상위 1% 판매원이 벌어간 수당 총액은 5,942억 원이었다. 나머지 99%의 판매원이 받은 수당 총액은 4,744억 원. 99%의 총액이 1%보다도 작다. 무엇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돼 있는 것이 우리나라 다단계판매의 현주소다.

수당 분포 비율을 보면 상위 6%미만에 들어간 판매원은 1인당 466만원을 받았다. 상위 6%이상∼30%미만은 54만원, 상위 30%이상∼60%미만은 9만6000원, 상위 60%이상∼100%까지는 2만3000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발표하면서 공정위의 관계자는 “상위 판매원은 높은 수익을 얻으나, 대부분의 판매원 수입은 크지 않은 바, 이는 상위판매원으로 수당이 집중되는 다단계 판매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했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이 같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한국에서 본격적인 정치적인 문제로 제기된 것은 지난 1965년의 일이다. 1961년 5.16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박정희정권이 ‘조국근대화’를 위한 경제개발 정책을 제시하고, 자본력과 기술력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산업체를 중심으로 자금지원에 나서 수출산업과 중화학공업을 육성하자 야당 지도자였던 윤보선이 이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당시 제대로 된 산업기반 시설은 물론 국고에 돈 한 푼 없었던 한국의 입장에서 박정희가 선택한 경제정책은 집중화였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로 일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무상원조 2억, 유상원조 3억,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도합 8억 달러의 돈을 이리저리 나누어 가져봤자 푼돈이 되고 만다는 생각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야당지도자 윤보선은 여당인 박정희정권을 공격했다. 경제학자 넉시(Ragna Nukse)가 ‘후진국의 자본형성론’에서 빈곤의 악순환 구조를 제시한 것과 같은 논리로 박정희정부가 “특정 경제사회를 형성, 정치자금 염출만을 목적으로 한 경제정책이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민정당(民政黨)의 최고위원인 윤보선은 한 언론에 기고한 ‘우리 당의 새해 주장’이라는 칼럼에서 이 같은 ‘소득재분배의 양극화 현상’을 제기하고, “부자일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뱅이일수록 가난해진다”는 순환론적 경제를 비판함과 함께, 이를 1967년5월에 치러졌던 제6대 대통령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그렇게 보면 ‘부익부 빈익빈’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쟁은 50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지독한 골치 병임에 틀림없다. 해묵은 난제 중의 난제다.

그렇다면 부익부(富益富), 즉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현상이 왜 서민들의 업종이라는 다단계판매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야당 정치인들이 여당 정권을 비난할 때 흔히 제기하는 문제와 같이 대기업 위주,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과 똑 같은 논리다. 다단계판매 기업들이 대부분 상위 리더 사업자 몇 명과 야합하거나, 많은 판매실적을 보여주고 있는 몇몇 고액 수당자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이 재벌과 야합하는 정경유착과 똑같은 현상이 대부분의 다단계판매 기업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면 정답이다.

소위 리더 사업자라고 하는 고액 수당자들은 하위판매원들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무기삼아 툭하면 수당지급 구조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변경을 요구하고, 이에 대해 회사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다른 회사로 떠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까지 비일비재 발생하고 있다.

내가 2000년대 초부터 10여 년간 불법다단계추방 시민운동을 벌이면서 어쩔 수 없이 해당 다단계판매 기업과 기업주를 비판해야 했지만, 실상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해당 기업이 몇몇 리더 판매원들의 협박과 횡포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즉 수당지급 기준을 고쳐 하위 판매원들에게 갈 수당을 리더들에게 몇몇에게 몰아주는 사례다.

문제는 이에 대한 해결책이다. 50년 전 야당지도자 윤보선이 지적한 “부자일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뱅이일수록 가난해진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경제민주화란 글자 그대로 경제정책의 수립부터 시행까지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정책을 폄으로써 소득이 골고루 분배되게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볼 때 경제민주화가 가장 필요한 업종이 있다면, 그것은 단일 업종에 469만9818명이 등록되어 있는 다단계판매 분야가 아닌가 한다.

2013년7월 대한민국 정부가 “상위판매원으로 수당이 집중되는 다단계 판매의 특징”을 지적한 것처럼 상위 1%의 판매원들이 모든 것을 독점함으로써 지독한 ‘경제독재’가 매일 펼쳐지고 있는 곳이 바로 다단계판매 업종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도 필요하고, 기업과 판매원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 다단계판매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2012년 다단계판매 시장 점유율 암웨이 31.1%, 허벌라이프 17.4%, 뉴스킨 11.2%)의 책임의식도 절실하다.

그것이 바로 판매원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적(social) 또는 민주적(democratic) 다단계판매 시스템이다. 상위 리더사업자 몇몇이 좌지우지하거나,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 아니라, 모든 판매원들이 자신이 노력한 만큼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누구든지 1등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그래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또한 다단계판매 기업주들의 마인드도 중요하다. 서민들이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기업, 즉 소셜(social) 기업의 역할과 기능을 한시도 잊지 않아야 기업과 판매원 모두가 성장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가장 홍익인간 정신에 충실한 시스템이라면 기업과 판매원, 판매원과 판매원이 사회적 권리와 책임의식, 상부상조와 경제민주화로 상호 연결되는 소셜 네트워킹 시스템(Social Networking System)이 될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당장 실현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실천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자 대세가 되고 있다.

노규수_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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