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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바이든·김정은에 대한 새로운 기대

2016년 11월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세계평화가 여기저기서 흔들렸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임 오바마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전략적 인내’였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자는 무대책이 아니라, “시간은 우리 편이다”는 믿음 때문에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적 정책을 유보한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 즉 북한의 핵문제는 미국의 예측을 벗어나고 말았다. 북한의 핵 고도화가 신속하게 완성되어 갔고, 시간은 북한의 편이 되어 버렸다. 다급해진 트럼프는 국내적으로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를 비판하면서 밖으로는 북한을 비판하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북한을 외교 상대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강대국의 ‘꼬봉’ 정도로 여기면서 외교적 상식을 벗어난 폭언을 감행했다.

김정은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미국이 북한의 핵공격 안에 있다고 공언했다. 트럼프도 발끈했다. 트럼프의 기질상 한반도에 전쟁만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불안한 예측이 되어 버렸다.

한반도의 정세가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아주 불안한 상태로 급변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다.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을 싸잡아 경고했다. 전쟁 반대라는 입장에서는 미국에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트럼프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전쟁 발발의 위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발벗고 북미 중재에 나섰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중재의 효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누가 뭐래도 문재인의 중재 효과 때문이었다.

남북간, 북미간의 화해 무드는 절정에 달했다. 뭔가 곧 가시적 결실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이 아무런 결실 없이 끝남으로 말미암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가장 큰 원인은 전통적 외교관계를 깡그리 무시한 트럼프의 톱다운 외교방식과, 미국의 국내정치가 요동쳤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은, 문재인의 수동적 실수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갑의 위치에 있는 트럼프와 을의 위치에 있는 남북 두 정상에 대해 그 책임을 양비론적으로 묻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책임의 90%는 트럼프에게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이 그동안 판문점과 평양의 남북 정상회담과 김정은, 트럼프의 싱가포르 회담을 완전히 무로 돌려버렸다는 평가는 역사의 성격을 외면한 것이다. 역사는 어느 것 하나라도 무의미하지 않다. 하나하나가 쌓이고 얽혀서 역사를 창조해 가기 때문이다. 문재인-김정은, 김정은-트럼프가 벌인 각각 세 차례의 정상회담은 없었던 일처럼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씨를 뿌렸으니 싹이 날 수밖에 없고, 싹이 났으니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트럼프 하고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듯한 바이든 정권이 미국에 들어섰지만 바이든과 문재인이 ‘북미관계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합의된 것을 존중하면서 재개해야 한다’고 합의하게 된 것은 트럼프 시대 북미, 남북간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열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이든은 미국 조야에서 누구보다도 능숙한 외교 전문가이다. 트럼프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한 사람이 아니고 참모들에게 휘둘릴 만큼 외교 문외한도 아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도(正道)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 역시 그동안의 국정 경험을 통해 남북 문제는 미국과의 협력 없이는 반보 전진도 쉽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한 합리적이고 평화주의적인 민족주의자다. 김정은 역시 김일성, 김정일 시대 이후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이다.

김정은 시대의 통치 철학은 이념에 지나치게 경도되지 않고 실용주의 노선을 통해 국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북한의 국정 방향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과정임을 직시해야 한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논쟁은 구시대적 유물이다. 핵 없이도 국가 안보와 체제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핵도 포기하겠다는 실용주의가 김정은의 핵심 통치철학이다. 이것은 국가 생존을 위한 전술 전략이지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이와 같은 3국 관계의 특성으로 인해 올 하반기는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극적으로 호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역사적 기회이다. ‘역사적 기회’(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항상 오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기회를 놓치면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절호의 역사적 기회를 무산시켜서는 안 된다.

한 가지 염려가 있다. 하노이 회담의 무산으로 인한 김정은의 실망과 트라우마가 너무 클 것이라는 예측 가능한 상상력이다. 하노이 회담은 사실상 사전에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약간의 차이 정도는 두 정상의 의지로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미국 국내 정세의 불안, 존 볼턴의 정도를 이탈한 집요한 훼방, 트럼프의 엉뚱한 기질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운 실망을 김정은에게 안겨주었다.

국제정치의 불가측성이라고 안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강대국의 횡포인 것이다. 김정은과 문재인이 강대국의 대통령 트럼프에게 당한 것이다. 문재인이 미국에 대해 몽니를 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지지자들도 “대미 굴욕외교”라고 문재인을 비난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인내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문재인의 인내, 인내 외교의 승리였다.

다만, 김정은의 하노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달랠 것인가가 문제다. 문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김정은의 배신감과 트라우마를 아주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 심정적 이해만으론 안 된다. 자신감이 있는 우리가 먼저 삼고초려의 정신으로 김정은을 설득해야 하고 무언가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꽉 막힌 북한 핵문제와 남북관계에 물꼬가 트일 것이다. 하노이 트라우마를 치유하고도 남을 더 큰 합의의 대로가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걸음부터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강경민/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

강경민  nils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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