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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그래서 행복한가?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65호

 

현대 한국인은 행복한가?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는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최초의 사례이다. 1953년 한국전쟁 종전선언 이후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31,000배 정도 증가해 2021년 현재 세계 10위권에 들었다. 세계 곳곳에 상흔을 남기고 있는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5% 이내 국내총생산 손실 수준으로 방어했고,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한국의 성장률을 4.3%로 전망했다. 숫자로 측정할 수 있는 경제적 성취를 기준으로 한국은 바야흐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하지만 세계 150여 개국의 행복 수준을 비교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2021년에 발표한 한국인의 행복 점수는 10점 기준 5.845점으로 62위 수준이다. 2009년 말 경제위기를 경험한 그리스와 내전을 경험하고 있는 터키를 제외하면 OECD 가입국 중에서 꼴찌다. 경제력 기준 세계 10위 행복 기준 세계 62위의 지금은 이 정도 부유하게 살면 행복할 것이라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동안 경제적 풍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것은 현대 한국인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행복을 온전히 살 수는 없어도, 물질적 여건이 결핍되면 행복을 누리긴 어렵다. 먹을 게 없어 기근에 시달리다가 우연히 구한 빵 덩어리 하나에 한순간 즐겁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고유한 일을 탁월하게 수행해나가는 능동적인 활동을 시민이 누리는 좋은 삶이자 행복이라고 하였다. 현대 한국인이 바라는 행복한 삶의 모습은 폴리스 시민의 행복한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 경제적 풍요를 위해 노력하고 달성한 것에 비해 우리의 삶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한국인은 불행해졌는가?

행복의 수준을 따지면 한국인이 불행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1980년부터 주요 국가의 행복 점수를 축적해 온 세계가치관조사 원자료를 분석하면, 삶에 만족하는 정도로 측정하는 우리 국민들의 행복은 10점 기준으로 1980년대 초반에 5.3점에 불과했다. 1990년대부터 점차 증가해 가장 최근 시점인 2018년에는 6.7점에 이르렀다. 비슷한 시기에 조사한 50개 국가 중 34위 수준이지만, 지난 40년 동안 1.4점 증가했다. 미국인의 삶의 만족 점수가 1980년대 초반 7.7점에서 2010년대 후반 7.3점으로 약간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과거에 비해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게 옳다.

2015년 즈음 우리 사회를 지배한 단어 중 ‘헬조선’이 있다. 지옥을 뜻하는 헬과 조선의 합성어로 지옥에 가까워 희망이 없는 한국 사회를 자조하던 말이다. 연애, 결혼, 출산, 집, 경력 등 N가지의 것들을 포기한 세대를 일컫던 ‘N포세대’라는 말도 같은 시기에 한국을 뒤흔들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헬조선’이나 ‘N포세대’라는 말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지금 전 세계를 배회하는 공포의 대상이자 시대적 화두는 팬데믹이다.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과 달리 도시를 봉쇄하지 않으면서 감염자 규모를 통제해서 그나마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제한된 일상을 살고 있다는 한국의 대처가 모범사례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불행해졌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체감하는 삶의 행복이 기대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1인당 GDP로 측정하는 경제적 풍요로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지지, 건강을 측정하는 기대여명,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주체성, 사회적 관대함, 그리고 부패를 들고 있다. 한국인의 행복과 비슷한 행복 수준을 보고하는 국가들에 비해 한국인의 행복에 대해서는 경제적 풍요로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세계 두 번째로 기대수명이 길다는 한국의 명성에 걸맞게 기대여명의 영향력도 작지 않다. 주목할 것은 사회적 지지와 삶의 주체성이다. 한국인의 행복에 대해 두 요소가 미치는 영향력은 적다. 삶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조건으로서 경제성장만을 향해 달려가다가 우리가 놓친 게 여기에 있을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에서는 ‘보다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를 발표한다. 선진국으로서 경제적 풍요뿐 아니라 삶의 풍요로움을 추구할 것을 지향하자는 노력이다. 이 지수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도 사회적 관계는 단연 한국이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노동시간은 OECD 가입국 중에서 4위 수준으로 높고, 자연스럽게 여가시간은 적다. GDP를 총 노동시간으로 나누어 계산하는 노동생산성은 당연히 낮고, 사람들은 휴식하거나 누군가와 만나고 시간을 보내서 관계를 맺기에 여유가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애초에 인간(人間)의 한자어도 사람들 사이에 모여 지내는 모습을 상징한다.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갓난아기로 태어나 돌봄을 받고 교육을 받아 성장한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공존한다. OECD 가입국 중에서 한국인의 장시간 근로자 비율이 높기로 악명높다. 노동시간을 일주일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했지만, OECD에서 장시간 근로자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은 주당 노동시간이 5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더라도 장기간 근로자이다. 일을 하느라 바쁘다. OECD ‘보다 나은 삶의 질 지수’의 사회적 지지 현황을 보면, 성인 한국인 10명 중 7명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다고 응답했지만 다른 선진국의 평균 8~9명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인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사회적 지지체계의 중요성이 새삼 떠오른다. 선진국의 경험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정책이 충분하지 않다.

불평등이 심각하다. 가진 사람은 많이 가졌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지지 못했다. 어느새 잊힌 ‘헬조선’이나 ‘N포세대’와 같은 단어와 다르게, ‘격차’와 ‘불평등’이라는 단어는 언론기사에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어느새 더 많이 갖기를 바라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기도 한다. 삶의 방식이 다른 차이를 인정하는 문화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격차와 불평등은 공정을 갈구하게 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은 다른 사람들도 갖지 못해야 한다.

고등학생이 희망하는 장래희망의 1위는 교사다. 2위는 간호사이고, 3위는 과학자 혹은 연구원이다. 그 뒤를 군인과 의사가 따른다. 같은 기간 초등학생이 희망하는 장래희망 중 부동의 1위는 운동선수다. 2위는 의사이고, 3위는 교사이다. 그 뒤를 크리에이터와 프로게이머가 잇는다는 데에 주목할 만하다. 초등학생들이 그 시대를 풍미하는 새로운 직업 형태를 꿈꾸는 동안 성인기가 가까울수록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다.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48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인상적이다.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미래 모습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게다가 공무원 숫자는 지원자 숫자에 미치지 못하는 31만 명 정도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지만 바늘구멍이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83세 정도이다. 일본, 스위스 등을 이어 세계 6위 정도로 장수한다. 80년을 넘게 사는 것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고등교육을 마치고 일을 찾아 20대 후반에 독립한다면, 일은 성인기 이후 약 50년을 살아가는 삶의 형태와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데 안정적인 직업, 특히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입사하기를 바라다가 이루지 못한다면 실패한 삶이 되어버릴 수 있다. 과연 모두가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랐는지는 알 수도 없다. 규격화된 삶의 방식은 상위 몇 퍼센트만을 구제해서 성공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나눌 수 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참지 못할 일이다.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정해져 있다면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돌아볼 이유가 없다. 삶의 방식을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할 필요가 없다. 단순히 기분이 좋고 행복을 추구한다면, 에리히 프롬의 저서 제목처럼 「자유로부터 도피」해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는 게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으로서 가치 있고 만족할 삶을 살고자 한다면 도피하고 외면할 자유가 아니다. 앞서 보았던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인의 행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만 수준이 낮은 또 다른 지표가 삶의 주체성이다.

1998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인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1999년에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경제성장은 사회발전의 도구일 뿐,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유가 원래의 목적이라고 했다. 공공정책의 역할은 결핍된 여건을 충족해서 성별이든 인종이든 계층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차별 없이 개개인이 원하는 삶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말했으니, 이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며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며 질문할 것은 ‘얼마나 행복하냐’보다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이다. 물론 행복 자체가 의미가 있다.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행복 점수가 가장 높은 핀란드가 7.842점인데, 한국은 5.845점이다. 점수가 낮은 이유에 대해서도 분명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행복 점수를 1점 올리는 데에 집중하기에는 현대 한국인이 지향할만한 행복의 결이 점수만 바라던 과거와 같지 않다.

우선 획일적인 삶의 잣대를 가지고 상위 1%를 가려내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개인들은 자신이 살기 바라는 삶의 방식을 주체적으로 탐색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겠다. 강남 고급아파트에서 살기를 원할 수도 있지만 전원주택을 꿈꿀 수도 있다. 석사나 박사학위를 목표로 할 수도 있지만, 경력이 전문성을 갖기에 더 나을 수도 있다. 바라는 삶의 방식은 성별이나 계층에 의해 제약받을 것도 아니다. 차별 없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개인은 역량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계적으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이 가져서는 안 된다거나 모두 같은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공정 담론은 아니다.

삶의 다양한 모습을 수용하는 근저에는 성숙한 시민의식, 연대 의식, 공동체 의식이 자리한다. 올림픽이 끝났다.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된 세계적 축제였다. 인상적인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예년처럼 금메달의 숫자에 연연하진 않았다. 대신 노력한 선수들의 땀방울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냈다. 설사 메달을 얻지 못했더라도 소위 인기종목이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응원했다. 설사 우리 국가대표가 아니어도 공감하고 축하했다.

불평등도 문제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더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거리두기가 연장되고 접촉을 줄이면서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줄었고 실업자가 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상황에 희망을 버리기도 한다. 취약계층의 생활 수준이 더 어려워졌다. 국민총행복의 관점에서 행복한 국민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덜 행복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공정이다.

부탄에서는 국민총행복을 국정목표로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2016년 개정 예산법에 근거를 두고 국민의 삶의 질을 제고할 수 있는 공공정책에 예산에 우선 반영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2019년에 웰빙예산을 도입해 취약계층의 행복을 중장기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정부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경제적 풍요로움이 목적으로서의 국민총행복을 높이기 위한 수단임을 인지하고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덜 행복한 취약계층을 발견하고, 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정책을 설계하고 예산과 행정력을 배정해 운영한다. 정책이 국민총행복에 기여한 효과를 평가해 다음 해 정부예산 배정에 반영한다. 그리고 다시 취약계층을 발견하고 이들이 행복하기에 효과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정책을 기획한다. 행복예산제는 공공정책의 목적을 국민총행복으로 돌리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도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으로 지원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행복예산제 도입을 고민할 때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김성아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학부에서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경제적 이유이든 무엇이든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자립하는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가는 일을 하기 위해 행복경제학과 복지정책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정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역량 있는 현대 사람들이 전 생애 동안 자유롭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복지사회를 만들어가는 데에 도움이 되려는 희망을 가지고 행복과 소득보장정책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김성아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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