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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평화·통일’ 세 아이를 애도하며 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7월에만 3건이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영유아 시신이 경기도 북부 한강과 임진강 하구 등에서 발견된 것이. 뉴스 기사에서는 그저 사건으로 표현하여 무미건조하게 서술함으로써, 우리의 기억과 마음속에도 매년 반복되는 사건으로만 각인된다. 하지만 사건보다 사람이 먼저다. 단순히 소비하고 금방 잊혀질 사건이 아니라, 세 명의 어린아이들이다. 부모들에게는 자기 목숨과도 같은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며, 누군가에게는 귀여운 동생이자 조카였을 것이다. 이에 필자는 이 지면에서만이라도 그들을 가칭 이름으로 부르려 한다. (본 칼럼의 취지를 반영하여 세 아이들의 이름을 ‘남북’, ‘평화’, ‘통일’로 명명한다.)

7월 2일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앞 갯벌에서 발견된, 3~7세로 추정되는 어린이 ‘남북’이, 7월 5일 김포시 하성면 전류리 한강 하구에서 발견된, 10세 전후로 추정되는 어린이 ‘평화’, 7월 16일 파주시 문산읍 임진강 통일대교 인근에서 발견된, 70㎝의 키에 옷을 입지 않은 생후 6개월 영아 ‘통일’이.

이 세 명의 아이들, 즉 남북·평화·통일은 부패 정도가 심해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아이들의 신원도 확인이 안 되고 있는데,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만 있을 뿐이다. ‘남북’이는 긴소매 윗옷만 입고 있었고, ‘평화’는 반바지만 입고 있었는데, 둘 다 옷에 라벨이나 제작사 상표가 없었다. ‘평화’의 반바지는 국내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디자인이었고, 제조업체나 유통경로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나마 ‘평화’는 DNA를 채취해 국내에 등록된 실종 아동들의 DNA와 비교했는데, 역시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평화’의 키는 110~115㎝로 우리나라 7~8세 평균(120㎝ 이상)보다 훨씬 작고 야윈 편이었다. 생후 6개월 밖에 안 되어 보이는 ‘통일’이는 국가 의무 접종 흔적이 없었다. 남한 아이들은 생후 2개월 이내에 결핵예방접종(BCG) 주사를 의무적으로 맞아서 팔에 흔적이 남지만, ‘통일’이의 팔에는 주사 맞은 흔적이 없었다. 

이처럼 라벨이 없는 옷을 입은 점, 접종 흔적이 없는 점 등을 미루어 모두 북한 어린이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발견된 곳들은 전부 군사분계선과 가까워서, 조류 방향에 따라 북한에서 떠내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과거 장마가 있는 여름철에 북한에서 시신이 떠내려온 일이 많았고, 올해 6월말부터 평양과 평안남도 지역에 폭우로 인한 침수피해가 있기도 했다. 현재 북한은 산림이 부족하고 치수시설이 미비하다. 올해는 봄 가뭄이 길었고,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하면서 식량난이 심해져서 상대적으로 비 피해에 대한 대책이 예년보다 더 부족했을 것이다. 최근 북한 곳곳에 이어진 집중호우 때문에 진행된 두 차례의 황강댐 방류가 북한 주민 시신 유실의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북한에서 수해 등으로 떠내려온 시신을 먼저 인계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북관계가 좋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의 시신이 포함됐는데도 인계 요청이 없다.  만약 북한 아이라는 신원이 확인되면 통일부를 통해 북측에 인수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부터 시행된 ‘북한 주민 사체 처리 지침’에 따라 이번에 발견된 아이들이 북한 주민이라는 최종 결론이 나오면 통일부에 전달된다. 그러면 통일부 장관은 북한에 이를 통지하고, 북한 군인은 정전협정에 따라, 민간인은 북한의 의사를 가급적 반영해서 처리한다. 북한이 인수하기를 거부하고, 우리나라에 시신의 연고자도 찾을 수 없는 경우엔 발견된 지역의 무연고자 묘지에 안장된다.

만약 조사 결과 이 아이들, ‘남북’, ‘평화’, ‘통일’이가 북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 2015년 터키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3살 어린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이 난민 인권에 관해 전 세계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아일린 쿠르디’의 희생으로 서유럽에서 난민을 적극 수용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변화가 우리나라에도 재현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이번에 발견된 세 명의 아이들이 북한 아이들이라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필자는 지금 6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통일’이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통일’이를 애지중지 키우며 ‘통일’이의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던 부모들을 위해 두 손 모은다. ‘통일’이가 이런 비극을 겪지 않았다면 언젠가 내 아이와 동갑내기 친구로 만나서 함께 손잡고 뛰어놀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슬프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다시는 이런 아이들이 나오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뿐인 지금의 현실도 안타깝다. ‘남북’, ‘평화’, ‘통일’을 잊지 않고, 애도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 그것이 “남북평화통일”을 앞당기고 준비하는 것이리라.
김태훈/ 인하대 다문화융합연구소 연구위원, 평화통일연대 전문위원

김태훈  hooni03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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