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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관계 개선 합의와 ‘한민족안보’

5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장급 협의를 통해 북한은 일본인 납치피해자 재조사를 시작하고 일본은 재조사가 시작되는 단계부터 대북 독자제재 일부를 해제하고 대북지원을 검토키로 했다. 이것은 매우 비밀리에 전격적으로 발표된 것이어서 한국은 물론 미국까지도 놀란 것 같다.

앞으로의 관건은 북한이 얼마나 성실하게 납치피해자를 재조사하고, 일본이 얼마나 인내심을 가지고 이를 지켜봐주느냐다. 특히 일본 내 민심의 향방이 중요하다. 2002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일본인 납치 시인과 일본인 납치자 대동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것이 오히려 북한의 ‘비인도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일본 내 ‘반북열풍’의 도화선이 된 적이 있다는 점에서 금번 합의가 잘 이행되더라도 북·일관계가 계속해서 좋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는 구조적 한계와 북핵문제라는 현실적 걸림돌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현재로서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 일본에게 뒤퉁수를 맞은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우리도 경각심을 가지고 북한과 일본의 속내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현실적인 대안 마련에 고심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이처럼 전격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배경부터 분석해 본다.

첫째, 금번 북·일간 합의 배경에는 북한과 일본 모두 국내정치적 요인이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아베 총리는 추락하는 인기를 만회해야 했고, 김정은은 어떻게든 경제 활성화를 이룩해야 했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북핵문제로 인해 중국의 압박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 경제의존도가 90%에 이른다는 것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매우 위험스런 일이다.

김일성은 생존시 ‘경제에서의 자립’을 주장했다. 그 이유는 경제적 의존은 곧 “국가가 바보가 되고”, “자주권을 상실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은 김일성의 ‘교시’를 심대하게 훼손하고 있는 상태라 볼 수 있다. 경제 교역의 다변화가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금년 초에는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매진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최근 러시아와 일본과의 관계를 가속화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러시아로부터는 이미 100억 달러의 부채탕감을 약속받았기 때문에 일본과의 물꼬를 트는 것이 다음 수순이었을 것이다. 군사안보 못지않게 경제안보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숙적’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택하도록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주목할 만한 배경은 최근 북한과 일본 모두 남한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남북관계는 지난 2월 이산가족 상봉 이후 꾸준히 나빠져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막말이 오가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을 ‘×××’이라고 욕하였고 이에 대해 남한은 북한에게 “지구를 떠나거라”라는 차원으로 대응했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을 ‘북침전쟁론’, ‘흡수통일론’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박근혜 정부와는 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와 같은 남북관계의 악화가 북한으로 하여금 경제활로를 남한이 아닌 러시아나 일본에서 찾게 만드는 요인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전통적인 ‘시계추 외교’가 복원되는 양상이다.

일본 아베 정권 역시 박근혜 정부와는 앙숙관계가 되었다. 전적으로 아베 총리가 만들어낸 국면이기는 하지만 한국도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지 못한 면이 있었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매우 이상적이고 바람직하지만 현실은 우리 힘만으로 아베의 사과를 받아내기는 역부족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우리가 압박한다고 해서 호응할 일본도 아니다. 특히 미국의 적극적인 압박이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은 오히려 일본을 활용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형국이기 때문에 한일관계에는 개입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이것은 일본을 더욱 오만하게 만들고 있다. 이성과 이상만 가지고는 국익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이 국제정치적 현실이다.

남북관계가 좋고, 한일관계가 좋은 상태에서도 과연 북일 합의가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남북한은 향후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남한은 우선 지금이라도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 장악을 위해 남북고위급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 북한이 인천아시안게임 참가를 공식화했기 때문에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처럼 공동입장이나 단일기 사용 등을 의제로 삼아 남북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드레스덴 선언을 선도적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특히 영유아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그 규모는 좀 커야 한다. 이것을 고리로 큰 대화도 개최해야 한다. 일부는 왜 ‘악마’인 북한에 대해 그런 일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지원과 대화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은 우리 땅이고 거기서 사는 주민들은 우리 국민이며 그것이 곧 민족이익이기 때문이다. 비록 금번 북일 합의가 없었더라도 우리가 선도적으로 남북대화를 이끌어 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북한 주민들은 더 큰 고통을 당하고 탈북자도 현저히 줄어든다. 북한 당국이 남한의 ‘공세’를 두려워하여 죄없는 주민들을 더욱 옥죄이기 때문이다.
둘째, 남한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는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가 훨씬 높아지고, 우리가 목도하는 바와 같이 러시아나 일본의 개입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외세개입은 우리 민족의 자율성을 그 만큼 더 축소시킨다. 민족의 자율성이 없어지면 어떤 결과가 오는 지에 대해 우리는 이미 수차례 경험하였다. 외세개입은 반드시 민족분단의 요구나 분단자체로 이어졌다. 648년의 당, 993년의 거란, 1593년의 일본, 1894년의 청과 일본, 1903년의 러시아와 일본 등이 국토분할을 요구하였으나 다행히 이행되지 못하다가 결국 1945년 해방과 함께 강대국에 의해 우리 국토는 양단되고 말았다.

   
▲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유코리아뉴스DB

바야흐로 동북아에서는 큰 패권다툼이 벌어질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강대국들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악영향으로 인해 분단이 더욱 고착화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동족은 서로 뭉쳐야 한다. 강대국들의 포효가 하늘을 찌를 때일수록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남북한 각각은 ‘국가안보’도 중요하지만 ‘한민족안보’도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한반도는 당대를 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자손만대에게 까지 물려주어야 할 신성한 땅이기 때문이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이 글은 남북물류포럼(KOLOFO) 소식지에도 게재됐습니다.

전현준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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