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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론? 아직은 시기상조다통일비전연구회 소속 탈북자 주진욱씨 기고

운전 중에 라디오를 통해 북한이 정오에 ‘특별방송’을 한다는 뉴스를 두 번이나 듣고서야 무엇인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 안았다. ‘학습효과’라고 할까? 중대방송도 아닌 특별방송이라는 반복된 용어는 김일성의 사망을 이미 전에 경험했던 탈북자들에게 무언의 느낌이 강하게 안겨주었으리라 본다. 아니나 다를까. 정오의 뉴스는 김정일의 사망소식 이였고 울먹거리는 북한 아나운서의 모습은 흡사 17년 전 김일성 사망을 전해주던 아나운서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동하게 보는 듯 했다.

샴쌍둥이(Siamese twins)적 남북한 존재는 이번에도 그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충격 그 자체의 북한만큼이나 한국에서도 난리의 도가니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김일성 사망을 경험해 본 한국이 역시나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 의식적인 동형화의 광경으로 새삼스럽게 안겨왔다. 분단체제 형성이후 남과 북이 적대적 의존관계와 반사적 이익관계를 수없이 반복하며 서로의 체제를 지탱해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렇게 내화되어 있는 사실과 근거들을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은 김정일의 급사가 충격적 사건일 수가 있으나 이것을 북한정권의 붕괴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되며 특히 강압적∙외부적인 힘으로 북한을 점령해 보려는 상상 역시 자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했듯 김정일은 생전에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웠다. 김일성에 비해 카리스마가 없고 정통성마저 부재한 김정일 정권이 곧 붕괴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김정일 체제는 17년간 건재했고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이제 김정은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일천한 김정은에 대한 평가역시 제 각각이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체제의 내구력과 통치기반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지하듯 북한은 김정일 사망을 비록 이틀 후에 공식발표했지만 일사불란하게 김정은으로의 계승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북한의 아나운서는 애통한 표정으로 김정일의 사망을 알리면서도 김정은 동지의 영도 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꿀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가 명실상부한 후계자임을 천명했고 22일에는 노동신문과 민주조선을 통해 김정은을 ’혁명위업의 계승자·인민의 영도자’로 명시, 사실상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심장 속에 영생하실 것이다’는 장문의 1면 사설에서 “김정은 동지의 영도는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 나갈 수 있는 결정적 담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민주조선 역시 사설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혁명생애는 영원불멸할 것이다’에서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위대한 중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룩하신 최대의 공적이고 우리가 받아 안은 최상의 특전이다’라고 언급함으로써 사실상 김정은 체제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처럼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김정은 체제를 출범시킨 근간에는 혁명을 대를 이어 완성해야한다는 후계자론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이 체제의 핵심적 요소로, 지탱의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이러한 근거로 김정일 사망과 북한체제의 붕괴를 동일시하는 오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김정일의 사망이 체제변화의 전주곡이 될 수 있음은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논의되어야 할 변수들은 단기적이지 않는 중장기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북한주민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봉기라든지,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 이완이나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 등은 어느 정도, 혹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은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김일성 사망이후 김영삼 정부는 ‘북한붕괴’의 집착 때문에 잃어버린 4년을 보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김일성은 자연사 했지만 김정일은 비명횡사 한다. 길어야 3년이다’라는 안기부(지금의 국정원)와 북한전문가들의 말을 믿고 3년을 훌쩍 넘긴 임기 4년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결국 닭 쫓던 개의 신세가 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통미봉남’을 자초했고 결국 북한의 핵무장도 저지하지 못했다.

현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김영삼 정부와 같은 나쁜 선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북한붕괴’의 일변도에서 벗어나 실용적이며 외교적인 결단이 필요할 때이다. 지금까지 남과 북이 분단체제에서 어떤 도식과 토양을 만들어 변천해 왔는지를 안다면 이념적 ‘욕심’을 극복할 수 있다. 또 왜 남과 북이 샴쌍둥이로 일컬어지고 어떻게 적대적 의존관계와 반사적 이익관계로 분단체계를 관리해 왔는지를 돌아본다면 상황적 ‘오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같은 성찰 속에서만이 김정일 사망이라는 이번 사건을 향후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조성으로, 나아가 중장기적인 플랜으로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 등을 유도할 수 있는 여건 등을 마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작금에는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보기관과 통일부마저 제대로 된 첩보를 건지지 못했다. 오히려 남한 내 탈북자들이 먼저 김정일의 사망을 파악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한국정부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의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시점에 탈북자단체에 의한 ‘전단살포’ 등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감정을 다스리고 현실을 직시하며 교훈을 통해 미래를 여는 지혜가 요구된다. 큰 이익에 작은 손실을 감수하는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통일비전연구회 소속 주진욱(2002년 탈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 박사과정)

주진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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