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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지원에 한국교회 중심돼야

독일교회의 반성과 대동독 지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10월 독일교회가 사죄하는 고백을 했다. 슈투트가르트 사죄고백(Stuttgarter Schuldbekenntnis)이 그것이다. 나치의 범죄를 목도하고도 “보다 용감하게 고백하지 못했고, 보다 진실 되게 기도하지 못했으며” 그 체제를 용인했던 점을 깊이 사죄했던 것이다.

독일교회를 배경으로 한 마르틴 루터의 동상 (출처 픽사베이)

진지한 자기성찰과 반성과 함께 각 종파로 분리되었던 개신교계는 그 후 하나로 결집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 결과 1948년 독일개신교 연맹인 「독일개신교연합회(Evangelsche Kirche in Deutschland: EKD)」가 만들어진다. 1969년 「동독신교연합회(BEK: Bund Evangelischer Kirche in der DDR)」가 결성되어 분리해 나갈 때까지 EKD는 동서독 거의 모든 개신교파를 포괄하는 조직이었다. 당시 「독일개신교연합회」에는 다양한 분파 즉, 루터파, 혁신파 또는 캘빈파 그리고 통합파가 각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동서 냉전에는 어느 이념의 편에도 서지 않았다.

처음부터 개방적이었으며, 교회로서의 독자성을 상실한 동독의 교회를 끌어안았다. 동독 정권을 인정하면서도 양 지역 교회공존을 위해 노력했다. 종교대회(Kirchentag)는 이를 확인하는 행사였다. 1949년부터 매 2년마다 개최된 이 대회는 EKD 산하 전독일 교회의 모임이자 대화의 광장이었다. 1980년대 초 청소년들의 대거 참여가 이루어지면서부터 종교대회는 동서독교회가 함께 참가하는 평화운동의 성격을 띠게 된다. 군비축소와 전쟁억제, 평화를 호소했다. 정부와 국제사회, 국제기구에 평화를 호소하고 협력을 구했다. 서독교회의 대동독 지원은 이런 평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독일에서부터 세계평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도움과 지원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1년 예산의 약 40%를 동독교회를 위해 사용했다.

동서독은 분단되었지만 교회는 하나였다. 같은 성서를 읽고, 같은 찬송을 불렀다. 비록 다른 체제와 이념 속에 있었어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였다. 동독의 모든 교회는 서독에 자매교회를 갖고 있었다. 동독의 독재정권이 분단을 고착시키려 해도 이를 와해시키는 힘을 교회가 가졌던 것이다. 평화를 바탕으로 한 동서독 교회의 교류·협력, 이는 오히려 동서독의 긴장을 완화하는 촉매제였다. “디아코니아 재단”을 동독에 상주시키고 형제애로써 동독교회를 지원했다. 그것을 견지하는 힘은 「실천하는 대화(praktisches Dialog)」와 「섬김의 신학(diakonische Theologie)」에 있었다.

동독교회를 돕는 데는 두 가지 원칙이 지켜졌다.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도 동독교회의 자존심을 지켜주었으며, 지원한 돈의 사용처를 단 한 번도 확인·추궁하지 않았다. 동독교회의 자존심이 훼손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동독정권이 교회의 유일한 재정수단인 교회세를 폐지하고, 교인들에게 보험과 연금제도를 금지하고, 신앙 활동을 범죄행위로 규정하여 신자들을 감옥에 가두려고 했을 때, 서독교회는 대화하고 기도하며 철저히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서독교회는 통일보다는 동독주민의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신장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이것이 독일통일로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동서독의 통일이 동독주민의 서독을 향한 심장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동독과 서독 지도자가 키스하는 장면을 그린 벽화. 동서독의 화합을 상징한다. (출처 픽사베이)

단절의 남북관계에서도 인도지원은 있어야

「유진 벨 재단」이 북한 주민의 결핵치료 사업을 위해 2017년 1월에 보내야 할 물품반출을 신청했으나, 한국 정부가 난색을 표명한 것이 구랍 신문에 보도되었다. 2016년 8월 통일부는 “한국을 대북 결핵 퇴치의 기지로 생각해도 좋다”는 이야기 했는데도 말이다. 갑자기 바뀐 입장을 물으니 “김정은에게 물어보라”는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지원은 베푸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의 방향이 아니다. 주는 사람의 거만함도, 받는 사람의 비굴함도 없어야 한다. 진정어린 지원은 도울 수 있기에 도우는 것이요, 필요하기에 받는 것이다. 교회가 이 중심에 서야한다. 하나님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서독의 교회는 이 말을 바탕으로 동독 교회를 위해 일을 했음을 우리는 잘 안다.

북한의 아이들. ⓒstephan

모든 대화가 단절된 남북관계에서도 교회만은 문을 열어야 한다. 식량·의료기구·의약품·의복의 지원이 중요하다. 북녘에는 지금 당장, 수술용 진통제와 마취제가 필요하다. 북한에서 약품생산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현지에 빵 공장을 세워야 그들의 생체구조가 변하는 것을 중단시킬 수 있다. 그래서 북한으로부터 스스로 변화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 기독교 복음의 정신은 이웃사랑이다. 이웃사랑의 정신에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영역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독일 교회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대동독 지원은 그 바탕 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국교회도 용서와 화해로 북한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대동독 인도적 지원이 주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통일의 바탕이 되었듯이 우리도 이념을 넘어 동포애적 사랑을 북녘 동포들에게 보내야 한다. 통일 이전에 마음의 통일이 더 중요하다. 인도주의적 지원은 마음의 지원이다. 탈정치다. 한국교회는 독일교회로부터 정치적 분단에 초연하는 “신앙적 초월성”을 배워야 한다.

기도하자. 한사코 기도하자. 「디아코니아」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동독 형제들의 아픔에 동참한 서독교회의 용기를 배우자. 서독교회는 동독주민들에게 사회주의 정권의 유물론적 세계관과 전혀 다른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인식시켜 주었다.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킨 것은 그런 가치관과 세계관 때문이었다. 그들이 “우리는 한민족이다”라고 외치며 통일을 염원했던 것은 서독 교회와 인간적으로 묶인 사랑의 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교회에도 사랑의 띠를 만들자. 대북 인도주의 사업의 중심에 한국교회가 있게 하자. 이제라도 새롭게 시작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새해 아침에 간절히 기도하자.

김영윤 / (사)남북물류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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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kimyy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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