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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 교회면 무조건 해야”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 인터뷰①-“통일운동은 의식(意識)을 양보하는 데서부터”
  • 윤은주·김성원 기자
  • 승인 2017.01.2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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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은 세 번 핀다. 나무에서 피고 (떨어져) 땅에서 피고, 그 다음에 마음에도 핀다.”

폭설이 내린 위로 동장군까지 몰아친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시 덕이동 거룩한빛광성교회 담임목사실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탁자 잔에 놓인 연분홍 꽃. 웬 꽃이냐고 물었더니 정성진 목사(62)의 입에서 설명인지 시인지 모를 언어가 튀어나온 것이다.

담임목사실에서 가장 먼저 손님을 반긴 동백꽃잎이 담긴 찻잔. 교회 꽃장식을 하다가 떨어진 것을 정성진 목사가 주워다 놓은 것이다. ⓒ유코리아뉴스

그러더니 또 꽃 자랑을 한참 한다. “나는 꽃 전문가야. 꽃을 내 핸드폰에 17,000장 찍었어. 사진기 가지고 다닐 시간은 없으니까.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지 꽃부터 보러 가고, 꽃을 보려고 공원엘 가고, 박물관엘 가지. 그 다음에 전통 거리에 가서 찻잔을 사와. 그 다음에 십자가가 있으면 사오고.”

십자가가 다음 순번일 만큼 꽃을 좋아한다지만 사무실엔 십자가도 무지 많다. 캐비넷 안엔 전 세계에서 사다 모은 각양각색의 십자가가 쌓여 있다. 마치 세상에 빛 볼 그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 같다. 정 목사가 탁자 위에 놓인 십자가를 가리켰다. 그다지 특이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 받침대를 보라는 것이다. 작게 구불구불 여러 갈래 골이 파져 있다. 정 목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십자가는 자연 그대로야. 귀한 작품이지. 그 밑에 받침대의 골들이 바로 벌레 길이야. 벌레가 나무속에서 판 거지. 원래 전시용인데 똑같은 걸 만들어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사정해서 그냥 가져왔어. 이걸 볼 줄 아는 사람은 드물어.”

꽃과 차 속에서

또 있다. 이번에는 차다. 의자 옆에 놓인 주전자를 끓이는가 싶더니 그 물을 찻잔에 붓고 곧바로 탁자 앞에 놓인 꽃게 인형 위에다 부어버린다. 무지가 탄로 날 테지만 궁금한 걸 침묵할 수는 없는 노릇. “왜 차를 버리세요?”

“잔을 씻는 거지. 잔을 데피기도 하고. 이게 중국 어른들의 놀이야. 완상, 완구라고도 하지. 임상옥의 계영배를 재현한 거야. 이게 특징이 70%까지 채우면 안내려가다가 가득 차면 내려가는 원리야. 잔 안쪽 옆에 구멍이 있고, U자 관이 있는 거지.”

윤은주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왼쪽)이 정성진 목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여기서 백과사전의 힘을 빌어야 한다. 완상(玩賞)은 ‘어떤 대상을 취미로 즐기며 구경한다’는 뜻이다. 계영배(戒盈杯)는 이렇게 되어 있다. ‘잔 속에 관을 만들어 그 관의 높이까지 술을 채우면 새지 않으나 관의 높이보다 높게 채우면 관 속과 술의 압력이 같아져서 수압 차에 의해 술이 흘러나오는 잔을 말한다. 계영배는 곧 과음을 경계하려고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이 술잔은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려고 하늘에 정성을 들이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실학자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후 이 술잔은 조선 시대의 거상 임상옥의 손에 들어가는데,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그만큼 차를 마시면서도 욕심을 경계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언제부터 차를 하기 시작했는지 물었다. “한 10년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10년이면 2007년, 정 목사가 암진단을 받던 해(물론 암 진단은 오진도 아닌 자료가 바뀌어서 생긴 해프닝으로 결론났다. 그 얘기는 뒷부분에 나온다)와 겹친다. 건강상 이유가 더 커 보인다.

홀짝홀짝 차를 마시던 정 목사가 갑자기 손목시계를 뚫어져라 본다. 워낙 바쁜 분 붙들고 인터뷰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목사님, 다른 일정 있으신 거 아니죠?”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손목시계에서 사람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시계가 아닌 손목시계 폰이었던 것이다.

“은퇴를 대비해 기계 친화적으로 지내려고 해. 기계에 적응 중인 거지.” 첨단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대한 정 목사의 답변이다. 그러면서 정 목사는 “핸드폰도 전화 외에는 거의 안쓰지. 컴퓨터도 못써. 이메일만 보는 정도지. 그런데 은퇴를 대비해서 좀 해야겠다 해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 거지.”

정 목사는 3년 후인 2019년 말에 은퇴하겠다고 교회에 선언한 상태다. 65세 조기은퇴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다. 요즘 다 하는 카톡도 안하시는지 물었다. “그거(카톡을 포함한 SNS를 가리킴) 하는 거는 천하의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해.” SNS의 특징이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건데 점점 표현이 강해져 결국 상대방을 공격하고 스스로도 무너뜨리고 만다는 것이다. 꽃, 차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인터뷰의 주목적인 통일에 대한 얘기는 한참을 지나서야 꺼낼 수 있었다.

 

“북한선교는 무조건 하는 것”

거룩한빛광성교회의 5대 비전 속에 ‘북한선교전초기지’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지역적 관련성이 클 것 같은데요. 과거 북한과의 교류협력 하시면서 현장에서 얻으신 교훈이 많으셨을 텐데 소개해주시죠.

북한선교는 무조건 하는 거야. 독일 사람들처럼 우리의 염원이 하늘에 닿아야 하나님께서 (남북을) 열어주시지 지금 우리는 너무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 그러니까 무조건 북에 줘야 해. 난 교인들에게 ‘많으나 적으나 누구나 100% 통일선교헌금을 드릴 때 하나님이 통일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라고 강조하는데, 그런데도 10분의 1밖에 통일선교헌금을 안한다. 그렇게 강조하는데도 안 해. 북한에 대해 미움이 더 많은 거지. 목사가 그 정도로 얘기하면 좀 따라줄 만도 한데 교회운영을 자율적인 시스템으로 만들어 놓고 보니 강제를 못해.

지금 한국교회가 대북 지원을 못하고 있는 게 공식 기구를 통해서만 하려다 보니 정부 눈치 보느라 못하지 않나 생각해. 시국에 따라 휘둘리는 거지. 우리는 미국에 법인을 내서 무조건 주는 방법으로 엔지오를 들여보내지. 황해도에 1000명 수용할 수 있는 고아원도 지어줬고, 8000평 농장도 했는데 너무 잘 하니까 8만 평을 준다고 하는데 할 수가 없었어. 종자값만 3000만원이 드니까. 미생물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니 길이가 1m 무게는 12㎏ 되는 무가 나왔어. 비료를 못 먹던 땅이 미생물 비료를 주니까 흥분한 거지.

우물 파주기도 하고 있어. 하와이 사는 친구가 들어가서 2주간 작업하고 나오는데 그 친구 통해 랜턴을 보내기도 했지. 북한에는 전기가 약하니까 발전기를 돌리면 3시간까지 불을 밝힐 수 있는 랜턴이 있어 보냈지. 그 다음에 그 친구가 원산에 가서 윈드서핑도 롤러브레이드도 최초로 가르쳐줬어. 중국에서 생리대 공장, 이불공장을 해서 북한에 들여보내고 있고, 안경점도 하고 있고, 빵공장, 세탁소, 구두수선소도 평양에서 하고 있어. 난 북한 뉴스가 나오면 자세히 들여다 봐. 대학생들이 양복을 입고 나오는데 그걸 세탁할 데도 없고 구두 수선할 데도 없고 해서 하게 된 거지. 지금 또 하는 게 결핵약 보내기야. 기아대책과 우리 교회가 매칭으로 하는 거지. 또 하나는 미주 두레본부 하고 면단위 진료소(보건소)를 6만 불 들여서 매칭펀드로 하기로 했어. 미주 두레가 2만 불, 장로님 한 분이 1만 불, 우리 교회가 3만 불 내서 짓기로 했지.

그리고 우리 교회에는 매 주일날 12시에 탈북민과 남한 사람 50명 정도가 모여. 통일선교위원회가 주관하는데, 그 중엔 탈북민 신대원생에게 풀 장학금을 줘서 이제 3학년 올라가는 친구도 있지. 북기총(북한기독교총연합회)에 얘기해서 올해 탈북민 신학생 한 명을 더 선발해서 지원하려고 해. 작년부터는 탈북민 공연단을 만들어 명절마다 공연도 하지. 북한선교는 사람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한국교회가 대부분 북한선교를 이래서 안하고 저래서 안하는데 교회는 통일을 절대적으로 예수 방법으로 하는 거야. 국방부는 군인 방법으로 외교부는 외교적 관점으로, 정부는 정부의 각도로 하는 거고, 우리(교회)는 성경적 방법으로, 예수 사랑으로 하는 거지. 그런데 보수는 전부 정부처럼, 군인처럼 그렇게 하고, 또 진보는 전부 진보당처럼 하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되지. 교회는 정부의 관점도 정당의 관점도 아닌 예수 사랑으로 하는 거야.”

정성진 거룩한빛광성교회 목사 ⓒ유코리아뉴스

한국교회가 평화통일을 추구하면서도 북한을 과도하게 두려워하거나 적대시하는 면이 있습니다. 북한이 핵문제나 정치범수용소 등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데 이런 북한을 상대로 한국교회가 대북관이나 통일관에 있어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면 그 내용은 뭐가 될까요?

분리 대응이지. 인권 문제를 얘기 안하면 안돼. 나중에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걸 어떻게 막겠나. 그러나 우리가 서로 적대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적대시) 관점을 가진 사람은 그 관점대로 하지만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겠다’ 하면서 해야지. 우리는 어쨌든 갈라졌던 민족이 화해하고 용서하고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관점이니까 꾸준히 해야지.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는 북한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른 시각의 싸움이야. 정치가 그렇지 않나. 그런데 남남갈등이 훨씬 심해. 저쪽(북쪽)과 싸우는 강도보다 이쪽과 싸우는 강도가 훨씬 심하지.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어. 나는 통합진보당 그 정도만 아니면 전부 원탁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포용력을 왜 교회는 가질 수 없을까 그게 안타까워.

 

“통일운동은 의식(意識)을 양보하는 데서부터”

한국교회가 대북지원에 어느 민간단체보다 관심이 많은데 정부가 남북관계를 단절하는 대북정책을 펼때 민간 교류는 단번에 중단되고 맙니다. 한국교회가 정부를 향해 인도적 차원의 민간교류를 막지 말라고 주문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교회는 정부 하고 불가근불가원을 해야지. 정치에 대해서 가까우면 데이고 멀면 얼어죽어. 정치에 너무 밀착해서 하나가 됐다가는 다음 정권에 피를 보지. 요즘처럼 이렇게 북한의 문을 닫는 것은 안 될 일이야. 통일의 창구를 열어야 하는 거고 공단도 개성만 할 게 아니라 훈춘, 나진, 블라디보스톡 3각주에서도 해야 한다고 봐. 그걸 다른 나라에 뺏기면 되겠나. 지금 나진항엔 중국 부두가 생겼고 러시아 부두도 생겼어. 중국 부두 두 개, 러시아 부두 하나야. 우리는 그걸 왜 못하나. 돈을 더 주고서라도 해야지. 그게 통일이고 나중에 남는 장사야. 처음엔 밑져야, 자본을 깔아야 나중에 남아. 그런데 왜 목사가 나라가 이꼴이 됐는데도 청와대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소리를 하나. 청와대에 가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면 목사가 얼마나 유치한가. 인간이 다 죄인인데 예언자로 가야지. 정치인들이 왜 우리의 축복을 받아야 하나 예언해야지. 난 초청해도 안가. (비판)제대로 역할을 못할 거면 아예 안가지. 나 보고 이번에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하라고 했는데 좋은 얘기 할 거면 뭣 하러 가나. 그게 가치가 있어야지. 들어야 할 대상이 없는데 내가 왜 가나. 대통령이 없지 않나. 누구를 향해서 말하나.

 

올해 국가조찬기도회는 3월 2일에 예정돼 있다. 이번 기도회에서 설교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는 것이다. 탄핵을 당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 참석을 못할 거라는 게 정 목사의 설명이다.

평화통일연대 이사직을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평화통일연대(전신은 평통기연) 활동에 대해 평가해주시고 앞으로 더욱 중점을 두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말씀해주십시오.

의식(意識, 이념을 뜻하는 듯)을 양보해야 해. 확산을 위해서지. 통일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은 다 오게 하고, 그러려면 강연을 해야 해. 가령 이런 거지. 지금 평화통일연대가 3.1절, 8.15 예배를 하지 않나. 예를 들어 우리 교회에서 기도회를 해도 문제가 뭐냐 하면 교인들 수준과 너무 동떨어진 사람들이 강사로 오는 거야. 대중과 유리된 통일운동, 너무 앞서가는 진보적인 통일운동을 해서는 안돼. 그건 목회자도 마찬가지야. 목회자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안돼. 유식한 사람이 대부분 교회부흥을 못시켜. 그만큼 대중과 유리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지. 언어 자체가 학문화, 전문화되어 있다 보니 성도들이 알아듣기 힘들어. 내가 왜 설교를 잘한다는 얘기를 듣나 하면 내 수준이 성도들과 비슷하기 때문이야. 설교 때 좀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화면에 띄워서 해설하고 풀어줘.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들도 한자가 나오면 사람들이 다 몰라. 설교는 쉽게 알아듣게 해야 하고 재미있게 해야 해.

그러더니 정 목사는 뭔가 자료를 가지러 간다. 설교문 파일이다. 거기엔 주요 용어들을 박스로 쳐서 한자와 원문을 쉽게 설명해 놨다.

‘교도소’ 하면 사람들이 알 것 같지? ‘교’가 무슨 교일까? 사람들이 모른다. ‘교’가 바로잡을 교(敎)다. ‘도’는 이끌 도(導)다. 그럼 설교에서 교도소를 이렇게 풀어준다. ‘죄인을 바로잡고 이끌어준다’는 뜻. 이걸 다 알 것 같지? 모른다. 그냥 대강 아는 거지. 이런 것들을 전부 설교에서 얘기해준다. 늘 성경을 인용하고 쉽게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하고, 성경이나 사회 이야기를 해준다. 한자, 히브리어, 헬라어로 쉽게 풀어주지. 성도들이 다 아는 것 같지만 모르는 말들이 너무 많다. 이런 것들을 쉽게 해주는 재주가 내겐 있는 것 같아.

통일운동도 다 끌어안아야 해. 보수가 안와도 진보가 끌어안아야지. 큰 사람이 이기는 거야. 그런데 그걸 못해. ‘우리 편, 네 편’ 따로 노는데 어떻게 통일이 되겠나. 정부가 기독교를 갖고 놀고, 북한이 남한을 갖고 놀고 그러니까 우리만 매번 당하는 거지. 하나 되는 게 우리의 과제인데 안타까워.

 

대형교회 목회자가 사회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민중신학에 감사한다고 했다. 신학생 시절 고영근 목사를 통해 접했던 민중신학이 지금까지도 그를 이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의 민중신학 이력과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서 2015년 5월 <국민일보> 인터뷰 일부를 인용한다.

“모태 신앙인 정 목사는 15세가 되던 해 권사였던 모친이 교회 사찰이 되면서 교회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삼수까지 하다 군대를 갔고 이후 공장에서 일하다 서울장신대에서 야간신학을 시작했다. 거기서 민중신학을 접했다. 졸업하면 민중과 함께 평생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간 곳이 충북 음성군의 폐광산촌인 금왕읍 금왕교회였다. 신자는 6명이었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 140명을 전도했다. 그렇게 2년을 사역했다. 그러다 목사 안수를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방통대(행정학)와 장로회신학대 신대원에서 공부했다. 이후 봉천제일교회, 광성교회에서 부목사 생활 10년을 보냈다. 그의 멘토는 고(故) 고영근 목민선교회 목사다. 서울장신대 시절 목민선교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고 목사를 따랐다. 고 목사는 전국 교회를 돌며 부흥회를 인도하면서도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등 정의와 사랑의 복음에 충실했다.”

정 목사의 시각을 균형있게 잡아주는 데는 신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신문 배달을 하면서 읽기 시작한 신문을 지금도 거의 매일 정독하다시피 하고 있다. 균형감각을 갖기 위해 <조선일보> <한겨레>를, 기독교를 감안해 <국민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읽고 끝내는 게 아니라 중요한 자료는 스크랩을 하고, 스크랩한 자료 중에서도 중요한 건 밑줄을 긋고 반드시 필사를 한다고 했다.

책꽂이에 가득한 게 전부 시집이다. ⓒ유코리아뉴스

 

식물도감 책도 여럿이다. ⓒ유코리아뉴스

정성진 목사는 시에도 조예가 깊다. 책장에는 오래 된 시집들이 설교자료만큼이나 차곡히 쌓여 있었다. 손수 지은 시들도 30여 편 된다며 직접 몇몇 자작시를 낭독했다. 인터뷰는 정성진 목사의 시를 음미하며 마무리 됐다. 그 중 몇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성진 목사가 직접 보여준 자작시 목록. ⓒ유코리아뉴스

‘다즐링의 황혼’이란 시다. “황혼이 오기 전엔 꽃만 꽃인 줄 알았습니다 황혼에 서서 보니 잎도 꽃이요 가시 없이 꽃이 꽃일 수 없으며 잎이 없이 꽃이 붉을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푸르른 날엔 산꼭대기만 정상인 줄 알았습니다 석양에 서서 보니 비탈도 정상이요 골짜기가 꼭대기임을 알았습니다 깊은 골짜기 없이 산이 높을 수 없으며 비탈길 없이 정상에 오를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우울증을 앓는 아내’ “오늘도 전화 속 아내는 무표정이다 전화를 하자니 반응이 두렵고 전화를 안하자니 후한이 두렵다 밥상머리에 앉으니 할 말이 궁하고 실없는 소리로 적막을 끊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 구석에 쪼그린 너의 모습이 짠하게 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마음이 야속하기만 하다 손을 잡아보지만 돌아누워 벽을 쌓는다 간격은 건널 수 없는 바다 딸을 대할 때는 훈풍이 불고 나를 대할 때는 삭풍이 분다 남편은 항상 저 혼자 잘 사는 존재라 생각하지만 나도 엄마 외치며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위로받고 싶은데 위로해야 할 아내가 웅크리고 있다 우울하지만 우울할 수도 없는 소년이 엉거주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꽃이 지니 잎이 보이네’ “꽃이 지니 잎이 보이네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전엔 보지 못했네 그때는 꽃향에 취해 보지 못했네 꽃만 보다 미처 보지 못했네 꽃이 지니 비로소 잎이 보이네 저리도 겹겹이 싸여 꽃을 피우고 있었네 보는 이 없어도 마주하고 돌아가며 꽃을 피웠네 그땐 아무도 보지 못했네 꽃이 지니 비로소 잎이 보이네 그 푸른 멍울 속에 꽃이 들어 있었네.”

정 목사는 5년 전 꽃을 찍다가 문득 잎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주위가 다 시이고, 누구나 시인이라는 게 정 목사의 시론이다. 지도자 역시 시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지도자의 필수조건은 크고 세밀한 것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시가 그걸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 진행 : 윤은주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

정리 : 김성원 기자

*은퇴를 준비하는 거룩한빛광성교회 및 교회 개혁 이야기는 정성진 목사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윤은주·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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