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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강성대국’ 대신 ‘강성국가’ 표기 의미‘2012년 경제강국 어렵다’ 사실상 인정..올 가을 공식 표기 수정


‘북한 2012 강성대국 건설 유지 받들 듯’ ‘유훈통치 강성대국 강조’ 등 공중파를 비롯한 다수 언론이 북한 동향을 분석하며 ‘강성대국’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오는 2012년은 북한이 ‘강성대국’을 이루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이라는 언급이다.


   
▲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자"

그러나 북한은 사실 일찍이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강성대국’이 되기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부터 <로동신문>, <민주조선> 등에서는 ‘강성대국’이라는 말 대신 ‘강성국가’라는 말을 더 빈번하게 사용했다. 지도층의 입장변화가 아니고서는 바뀔 수 없는 단어의 선택이었다. ‘대국’에서 ‘국가’로, 목표를 하향조정한 것이다.

강성대국에서 강성국가로의 말 바꿈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강성대국은 10년 전부터 이미 북한의 목표였던 바,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김정은급에서의 승인이 필요하다. ‘강성대국’ ‘강성국가’의 개념과 차이점, 유의미한 변화 요인을 짚어봤다.


강성대국 = 사상강국 + 군사강국 + 경제강국

북한내에서 강성대국이라는 말은 1998년에 처음 나왔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의 10년 계획으로, 내년이 강성대국 1년차가 되었어야 했다. 강성대국은 북한 특유의 주체사상과 군사강국의 위력으로 경제 건설을 하겠다는 의미이다.

사상의 강국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여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튼튼히 세우고 그 위력으로 경제건설의 눈부신 비약을 일으키는 것이 주체적인 강성대국 건설방식<로동신문>(1998.8.22,정론)

선군정치를 통해서 군사강국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강국이 되겠다는 의지이다. 수출에 역점을 둠으로 이를 이루고자 했으며, 수출 품목은 핵개발 기술, 무기 등이었다. 이후 10여년 동안 '강성대국'을 신년사 등에서 전격적으로 홍보해왔다. 이러한 강성대국을 이룸에 중요한 핵심은 선군정치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신 신념과 의지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총대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총대로 고수하고 기어이 완성하시려는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로서 총대와 같이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혁명적 원칙을 저버리지 않으며 군대를 혁명의 제일기둥으로 내세워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도, 조국통일과 강성대국건설위업수행에서도 기어이 승리를 이룩하시는 불굴의 신념과 의지이다.<철학연구<(2011년2호)>

선군정치를 통해 이루는 ‘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10년 넘게 목표로 삼아온 강성대국이라는 말을 뒤로하고, 강성국가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김정일은 지난 11월말 북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성국가’라는 말을 직접 언급했다. 이후 언론들은 강성대국이라는 말대신 강성국가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했다. 변수는 ‘경제’에 있었다. 사상강국과 군사강국은 이미 이뤘지만, 경제강국은 아니었다.


강성대국 - 경제강국 = 강성국가

   
▲ 강성대국 홍보물

북한이 경제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남정책, 대외정책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남한에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산업 등이 난항을 겪었고, 이후의 계획들은 무산되기 시작했다. 강성대국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이 추진된 2008년, 2009년이었다. 남한과의 관계 개선이 힘들다고 판단한 북한 지도부는 중국을 자주 방문했다. 그러나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여러모로 ‘강성대국’을 실감하기란 어려운 시기였다. 식량 배급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현재 식량 배급을 할 수 있는 최장기간은 두 달 정도로 본다. 쌀이 생산되더라도, 가공과 운반에 필요한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홍수 피해를 입었던 지역은 아직도 살 집이 없다. 이에 ‘강성국가’로 목표를 하향조정하고, 민심을 달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성국가는 강성대국으로 가는 단계이다. 힘들지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김일성조선의 100년사를 총화하는 의의깊은 해이다. 조국청사에 특기할 우리 당은 다시 한번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향상과 강성국가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킬데 대한 공동사설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뜻깊은 2012년을 앞두고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 관철을 위한 과업과 방도들이 뚜렷이 제시되어있다. ... 장군님의 령도는 인민생활향상과 강성국가건설에서 획기적 전환이 일어나게 한 근본원천이었다. ... 최첨단돌파전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일으켜야 한다. ... 기술발전목표, 최첨단돌파목표들을 무조건 점령하기 위한 투쟁을 다같이 밀고나가야 한다.(2011.11.21, 사설)

북한은 하향조정된 강성국가를 언급하며, 특별히 2.8비날론련합기업, 흥남비료련합기업소 등의 공업소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중시사상의 위력을 남김없이 떨쳤다”며 자랑했지만, 수출 불가능한 품목과 기술이다. 공업용 식초를 식용으로 보급하는 수준이다. 강성국가로 목표를 조정하면서도, 북한 주민들을 타이를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이 죽은 후, 김일성 신격화와 김정은을 연결시키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의 남한 의존도, 생각보다 컸다


2008년 <사설>에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에 들어가자”는 내용이 있다. 당시는 이미 북한의 하부 경제구조가 마비된 상태였다. 북한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하나도 없었던 때였다. 즉 수출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필수품들은 중국의 제품들로 충당했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은 강성대국을 논했는데, ‘믿는 구석’ 중의 하나는 남한이었다. 당시 북한은 남한과의 협력을 염두에 두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10년 간 북한의 대남 의존도는 생각보다 높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2008년 2월 북한은 남한에 은연중 협력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의 대북정책과는 다른 노선을 택했다. 북측의 협력요청에 “비핵개발 3000”으로 답한 것이다. 북측 입장에서는 대남 협력 방안이 명백한 실패였다. 이후 “강성대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주민들을 다그쳤지만 유일한 성과는 과거를 돌이켜 ‘수령에 대한 그리움’을 높인 것이었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 창구 역할을 했던 빌 리처드슨(뉴멕시코 주지사)은 ‘강성대국’의 영어 번역이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변화했다는 것에 주목하기도 했다. 외무성은 ‘Prosperous and thriving’으로, 군부는 ‘powerful and strong’으로, 최고인민회의는 ‘strong and prosperous’로 번역하는 등 기관마다 강성대국을 번역할 때 강조하는 것이 달랐다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장달중 서울대 교수는 “북한 내부 엘리트 안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분석했다.

그들이 목표로 하던 ‘강성대국’이 저마다 달랐다 할지라도, 북한 내부의 어려운 현실 인식은 같았다. ‘강성국가’로의 하향조정에서 ‘2012년 경제강국은 어렵다’는 공통된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 이 글은 '통일비전연구회'의 연구성과에 크게 기대었습니다.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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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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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phzibah 2011-12-31 10:41:13

    북측 입장에서는 대남 협력 방안이 명백한 실패였다.
    이로 인해 한민족에게 유익한것은 무엇이었는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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