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화장품 분야 담당…대한민국 화장품 안전관리 제도 선진화 초석 다져...

 
 
대한민국 화장품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빠지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불모지였던 국내 화장품 산업의 태동을 알린 아모레퍼시픽(구 태평양)의 창업주 서성환 회장과 코리아나화장품 창업주 유상옥 회장 등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인물부터, 화장품 업계에 처음으로 ODM을 도입한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 브랜드숍시장을 탄생시킨 미샤의 서영필 회장 등 현직에 여전히 몸담고 있는 이들 등 이름만으로도 국내 화장품史를 써내려가는 이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내년에 퇴임을 앞두고 있는 최상숙 경인지방식약청 시험분석센터장 역시 공무원 신분임에도 대한민국 화장품史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만큼 그가 남긴 족적은 적지 않다.

최근 그가 34년여의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정년퇴임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장품 업계에서는 그가 남긴 공적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된 화두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상숙 센터장은 그동안 자신이 걸어 온 길에 대해 “다만 운이 좋았고, 고마운 시간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불모지와 다름없던 대한민국 화장품 업계에 화장품법과 기능성화장품법 제정에 일조하는 등 34년간 크고 작은 화장품 관련 이슈들 속에서 대한민국 화장품의 정책적 기반 마련에 노력해 온 그의 족적에 비해 겸손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1977년 식약청의 전신인 국립보건원의 연구생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의약품평가부 의약외품 과장, 화장품평가팀, 바이오생약부 화장품심사과장, 현재 경인청 시험분석센터장까지 공직생활 전부를 화장품과 함께 해 온 그가 걸어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34년 화장품과의 인연

 
 
최상숙 센터장이 처음 화장품과 인연을 맺은 것은 식약청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보건원 약품부 연구생으로 근무하게 된 1977년 7월부터다.

당시 그는 연구생으로 의약품과 의약외품, 화장품, 위생용품, 의료용품 등 품질관리 시험에 관한 업무를 통해 화장품 품질관리 기초 확립에 노력해 왔으며 80년대 초 샴푸와 린스 등에서 포름알데히드 검출방법을 국내 최초로 확립하고 배합한도 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세계 최초로 수지팩에서 메탄올 검출 사요를 밝혀내 행정처분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등 화장품 제조시 유해물질에 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92년 국립보건원 연구관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의약품 관련 동물실험을 수행할 장소가 미흡하다는 판단으로 동물실험실을 마련하기 위해 한 달이 넘게 새벽까지 경제기획원 담당자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7년 의약품평가부 의약외품 과장, 화장품평가팀에서 근무할 당시였다.

97년부터 2009년까지 그가 남긴 화장품 업계의 정책적 족적은 적지 않다. 당시 그는 식약청 최초로 1:1 맞춤 공부방 도입 및 기능성화장품 자가 체크 리스트를 개발하여 민원 투명성 및 편의를 제고했으며 불모지였던 화장품의 유효성평가 분야를 연구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고 국제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자외선차단지수측정방법을 개발, 고시했다.

또한 미백과 주름개선제에 대한 기능성을 측정할 수 있는 평가방법 가이드라인 및 내수성자외선차단지수측정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으며 유럽에서 화장품원료의 동무실험을 금지함에 따라 화장품독성시험 동물대체시험법가이드라인도 제정했다.

특히 그는 2007년 아토피에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수입화장품 블루캡(스웨덴)에서 세계 최초로 신물질 스테로이드인 베타메타손17-프로피오네이트 및 베타메타손21-프로피오네이트를 검출함으로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소비자 보호에 기여했으며 식약청의 권위를 한층 더 올리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이와 함께 그는 화장품법 제정에 관여했으며 기능성화장품제도 조기 정착을 통해 관련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도모한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기능성화장품법은 수입화장품사들의 거센 반발로 추진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는 업계의 발전과 소비자 안전을 생각하는 일념으로 최일선에서 싸움닭 역할을 자처했으며 이런 그의 노력들은 국내 화장품 연구개발이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노력들은 2009년부터 2012년 4월8일까지 근무한 바이오생약부 화장품심사과장 시절에도 빛을 발했다.

그는 화장품 원료 사용에 있어서 신원료 심사제도 폐지 및 네거티브제도 도입에 다른 관련 규정 개정안을 신속하게 마련해 법 개정에 따른 업계의 혼란을 최소화했으며 화장품의 표시광고 실증제 도입에 따른 가이드라인 제정, 제조판매업 등록제 도입에 따른 기능성화장품 심사결과 통지서 명의 전환 지침 마련, 화장품의 독성시험 가이드라인, 허가·심사 업무 관련 해설서, 자료집 발간 등 멈추지 않는 열정을 보였다.

실제로 최상숙 센터장은 그동안의 공직생활에 대해 “공직생활을 하면서 3일 이상 쉬어 본 적이 없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최상숙 센터장은 화장품에서만 족적을 남긴 것은 아니다. 의약외품 분야에서도 가정용 살충제를 패키지 허가 대상으로 신규 지정하여 다양함 품목 개발을 유도한데 이어 부직포 마스크, 전자식 흡연욕구저하제 등 동일 규격 제품이 반복적으로 허가 신청됨에 따라 이에 해당하는 기준 및 시험방법을 표준화하여 고시했으며 의약외품 첨가제 기준규격 및 시험방법 가이드라인 제정, 의약외품 품목허가·신고 지침 마련 등의 업무를 진행했다.

또한 제모제 및 피부연화제 등 관행적으로 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던 인체에 경미한 작용을 나타내는 물품을 과감히 의약외품으로 재분류했으며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던 치아미백제 등 새로운 영역의 물품에 대한 심사방법을 짧은 시간 내 마련함으로써 관련 사업 발전에 이바지한 성과도 올렸다.

떠나는 그가 아쉬운 이유

 
 
화장품 업계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화장품 관련 종사자들은 그가 퇴임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일부는 그와 마찰이 있었고, 일부는 그와 직접적인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34년간 식약청에서 화장품 분야를 담당하며 수 많은 파고를 함께 해쳐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업체 담당자나 대표 중에는 새로운 성분이나 원료 등에 관한 부분을 먼저 그에게 개인적으로 상의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최상숙 센터장이 식약청에 몸담은 시간 동안 국내 화장품 업계에는 많은 사건이 있었다.

최 센터장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꼽았던 탤크 사건을 시작으로 포름알데이드 및 프탈레이트 사건, 염모제의 피라페닐렌디아민 사건, SK-II 중금속 사건, 황토팩 사건, 색조화장품의 망간과 알루미늄, 니켈 사건, 블루캡 사건 등은 그 스스로에게 위기 대응 능력을 배양하는 시간인 동시에 국내 화장품 업계가 안전성에 주목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매년 1~3개씩 발생하는 화장품 안전성 관련 사건을 슬기롭게 해쳐왔으며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동시에 규제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정책적인 기반 위에 업계가 발전할 수 있는 가교 역할도 해 왔다.

이와 관련 최 센터장은 “안전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업계를 생각할 때 단순히 처벌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계몽적인 차원의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진솔한 이야기도 아끼지 않는다.

한가지 예로 기능성화장품법을 들기도 했다. 기능성화장품 제정 당시 반대 입장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 기능성화장품법 제정으로 국내 화장품기업들이 연구개발에 노력해 왔고, 이는 오늘날 국내 화장품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

퇴임을 앞둔 심정에 대해서는 “화장품 불모지와 다름없었던 시장에 약사법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화장품법이 제정되고 다양한 정책적 기반이 마련되었다는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면서 “이제는 남겨진 이들의 몫”이라고 전했다.

최상숙. 화장품업계에서 그의 이름 석 자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단순히 화장품 시장을 규제했던 식약청 공무원 한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화장품 연구개발 분야에 일조했으며 화장품 안전성 선진화 등에 34년간을 헌신했다는 의미에서다.

이제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그의 이름이 또 다른 의미에서 대한민국 화장품史를 써내려 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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