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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 꼭지점 방천에서 북한의 회복을 명하다중국 평화발걸음 동행기(8·끝)

8월 9일(목) 여섯째 날

사실상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기차로 인천행 비행기를 타러 다렌까지 기차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룡정에서 두만강을 끼고 달리는 길은 온통 옥수수 밭이다. 집들은 대부분 기와 지붕으로 우리네 농촌 풍경과 구별이 없다.

3시간 정도 달렸을까. 허문영(평화한국 대표) 박사가 “1998년 나진, 선봉에 들어갈 때 건넜던 다리”라며 손을 가리켰다. 중국 쪽의 권하와 북한 나선특급시의 원정리를 연결하는 다리다. 중국, 러시아, 북한 세 나라가 국경을 이루고 있는 훈춘시의 초입이기도 하다. 다리를 조금 지나 휴게소 같은 곳에서 사진만 찍었을 뿐 가까이는 갈 수가 없었다.

   
▲ 중국 훈춘시 권하에서 바라본 나선특급시 원정리 풍경. 중국에서 나선특급시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유코리아뉴스 김성원

곧이어 훈춘시의 방천에 도착했다. 한반도 끄트머리에서 세 나라가 삼각 꼭지점으로 만나는 지점이다. 관광지답게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넘쳤다. 긴 삼각형 모양의 철조망 사이로 한쪽은 러시아, 한쪽은 중국, 한쪽은 북한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로밍해 온 핸드폰도 어느새 러시아어로 된 통신사 이름이 올라왔다. 이곳이 국경지역임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전망대에 올랐다. 러시아의 하산, 북한의 두만강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수년 전 러시아 우수리스크를 방문했을 때 ‘근방 하산에는 일제 시대 당시 수많은 독립인사들이 국경을 넘나들던 곳’이라고 말해줬던 기억이 나서 더욱 감개가 무량했다. 하산 지역 호숫가 민가에서는 닭 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곳곳에 튼튼하게 쳐진 철조망을 갈매기, 제비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나들고 있다. 일행은 북한을 향해 일제히 팔을 뻗었다. 그리고 이사야서 41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방천 전망대에서 바라본 러시아 하산. 오른쪽 강이 두만강 하류이고, 멀리 앞에는 동해가 보인다. ⓒ유코리아뉴스

   
▲ 방천 전망대에서 일행들이 북한 두만강리를 바라보며 이사야서 41장을 읽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도문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잠시 동승한 패트릭김 선교사는 “북한은 지금 밑바닥에서 조금씩 변화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북한의 문이 열릴 때를 대비해 선교와 지원 등 각 분야에서 잘 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패트릭김 선교사는 수년간 북한 현지에 직접 들어가서 활동해오고 있다.

운이 좋아서일까. 조선족으로 도문시 경제를 책임지는 전주식 상무국장을 접견할 수 있었다. 전 국장은 1998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를 회상하며 “그때만 해도 서울의 물가가 도문에 비해 월등히 비쌌지만 최근에 서울을 가보고 중국보다 오히려 싼 물건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 특히 도문의 발전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걸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오후 일행은 다렌행 열차 침대칸에 몸을 실었다. 장장 22시간의 긴 여로였다. 하지만 침대는 곧바로 토론, 나눔의 장으로 바뀌었다. 내년 평화기행을 어떻게 할 건지, 이번 평화기행에 대한 평가, 그리고 즐거운 게임 등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일행들의 나눔 속에 처음에 가졌던 기대보다 더 큰 결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남한에서 보도를 통해 북한 기사를 접했을 때는 애통하는 마음이 전혀 안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직접 북한 사람들이나 현지 사역자들을 만나면서 나의 굳어졌던 마음이 깨졌던 것 같다. 북한 또한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게 느껴졌다.”(송은지·춘천교대 학생)

“북한 주민들이 빼앗긴 자유, 억눌린 삶에 대해 얘기를 들으며 분노가 느껴졌다. 특히 정신적으로 자유하지 못한 것이 마음 아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유혜림·할렐루야교회 청년)

“그동안 삶의 현실에 갇혀 애써 기도하지 못했던 북한을 위해 기도하며 앞으로 이와 관련된 분야의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려고 한다.”(신대식·AIG 과장)

“아픔과 고통이 서린 북한 땅을 위해 기도하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회복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이연지·전주대 학생)

“이제 겸손히 더욱 더 북한을 섬기며 기도할 것이다. 아직은 주님께서 제게 ‘북한을 위해 무엇을 하거라’ 이런 것은 받지 못했지만 언젠가 시키신다면 꼭 순종할 것이다.”(이성아·전북대 학생)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목숨을 걸고 살얼음판 같은 강을 건너는 탈북자들과 손을 흔드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드넓은 꿈을 꾸었던 우리 선조들의 기상과 우리 민족을 회복시켜 열방으로 나아가게 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며 가슴이 벅차올랐다.”(김유연·이화여대 대학원생)

   
▲ 투먼(도문)에서 다렌(대련)까지 22시간의 기차 여행길에 오른 일행들이 침대칸에 앉아 지난 1주일간의 평화발걸음 감격을 나누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한여름 조중접경 지역 탐방기를 가을에야 마무리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며 꼭 나누고 싶은 글이 있다.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 백성을 향해 빼앗긴 정신을 먼저 되찾으라고 호소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을지문덕전>의 마지막 부분이다. 민족이 위기를 당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제2의 을지문덕이 나올 때라는 걸 강조하고 있는 선생의 호기(豪氣)가 곧 우리 일행의 마음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을지문덕은 이미 멀고 연개소문은 또 죽으매 인재가 묘연하여 오직 서희(徐熙·고려 초기 외교관)씨 한 사람이 거란의 사신 소손녕을 대하여 이르되 ‘당신 나라도 또한 옛적 우리 강토’라는 말을 한번 발하였을 뿐이오. 참담한 수단으로 외국과 형세를 다투려 하는 사람은 기린과 봉황같이 희귀하고 중간에 오직 고려 태조 왕건씨가 중국을 배척하며 거란의 사신을 거절하고 강토를 개척할 큰 뜻을 품었더니 하늘이 그 목숨을 빼앗아 일찍이 그 위를 버리매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후로는 우리나라 인물의 국량이 점점 좁아져서 동방의 지도가 이같이 적어졌도다. 그러나 지금은 일폭 금수강산이 파괴되어 단군 이후 4천년을 전래하던 중심 기지까지 사양하여 우리 집 형제들은 발을 디딜 곳이 없으니 어느 겨를에 압록강 서편을 생각이나 하여보리오. 슬프다. 이십 세기 새 대한에 을지문덕의 탄생이 어찌 그리 더디뇨.(중략)

어찌하여 역대의 군신들이 잔약(孱弱)하고 나태한 악한 사업으로 만백성에게 심어주며 조금이라도 밖으로 진보하는 사상은 극력으로 막았느뇨. 고로 조선 중엽에 외국 난리의 소식이 한번 오매 전국 상하(上下)가 방어할 계책이 없어서 도적의 칼날이 이르는 곳마다 어떻게 혹독한 화를 당하였던지 지금까지 산촌 관솔불 아래 백발 늙은이들이 두서넛 모이면 흔히 임진년 일을 이야기하고 마음과 뼈가 오히려 떨리나니. 슬프다. 만일 다른 나라의 진보되는 것으로 미루어볼진대 중고시대에 그렇게 강한 민족이니 지금 당하여 세력이 마땅히 세계의 으뜸이 될 것이거늘 무슨 연고로 그 타락한 경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느뇨. 내 이제야 알겠다. 그 나라 인민의 용맹하고 나약함과 넉넉하고 용렬함은 전혀 그 나라에 먼저 깨달은 한두 영웅이 고동하고 권장함을 따라서 진퇴하는 바로다.”(<신채호 작품집> 중)<끝>

   
▲ 중국 다렌공항에 도착한 중국 평화발걸음 참석자들. ⓒ유코리아뉴스

이번 일행의 조중접경 지역 순례는 상당 부분 유관지·안부섭의 <기도가 흐르는 강물 3천3백80리>에 의존했음을 밝힌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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