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절제된 연기, ‘본 시리즈’와 다른 듯 닮았다

 
 
한 남자가 한 여인을 힘들게 등에 업고 갈대숲을 달리고 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길 반복하는 그의 모습은 위태롭다. 하지만 힘들게 넘어지고 일어나는 그의 모습에서는 남북 분단의 아픔도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한 여자를 살리고 싶다는 바람만이 있을 뿐이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 역시 더 이상 남북 분단의 아픔이나 좌우 이데올로기는 머리 속에 있지 않다. 14년 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쉬리를 생각하고 영화 ‘베를린’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머리 속에서도 남북 분단의 씁쓸함을 찾을 수 없다. 그냥 ‘잘 만들었다’는 감탄사만이 나올 뿐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매번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면 감정이입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거나 사회적 문제를 생각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되뇌어 보지만 이소룡이나 성룡 영화를 본 남성 관객들이 멋진 포즈 한번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영화 ‘베를린’은 우리의 분단 문제로 출발했지만 우리만이 느끼는 감정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류승완 감독은 냉전이 종식되고 이제는 통일된 국가 독일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분단을 이야기한다는 진부한 발상을 버렸다.

한국은 좋은 나라, 북한은 나쁜 나라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벗어나 각각의 상황에서 자신들이 생존하고 얻고자 하는 욕심을 그려낸다.

주인공부터 남한이 아닌 북한 사람을 선택한 것부터가 기존 작품들과 괘를 달리한다. 여기부터 우리의 감정이입은 철저하게 배제되는 것이다. 배신당한 북한 공작원에게 측은지심이 생길법도 하지만 그의 냉정한 모습과 화려한 액션은 또 다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배척한다.

베를린은 우리의 정서가 아닌 세계인들의 정서에 맞추어진 작품이다. 아마도 남북 분단에 대한 초반부의 짧은 생각은 오직 한국인들만이 영화를 보고 느낄만한 대목일 것이다.

또한 류승완 감독 스스로도 특유의 남성성을 절제하고 있지만 그가 갖고 있는 한계일까. 영화 속에서 여성의 가치는 ‘사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보면 영화의 줄거리는 진보적이지만 영화의 내제된 감정선은 남성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왜 베를린에 ‘본시리즈’가 보이는가

 
 
영화 베를린은 본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국적불명, 지문마저 감지되지 않는 비밀요원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으로부터 배신을 당한다. 그리고 드러나는 거대한 음모. 주인공은 누군가를 지켜야하며 자신의 결백을 밝혀야 하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

하나 둘 비밀을 밝혀지고, 주인공은 선택의 순간 고뇌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사람들은 한사람씩 세상을 등진다.

외로운 영웅,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진실과 만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는 비정함보다는 차가운 현실이 보인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그려질 것이라는 암시를 주며 한국형 본시리즈의 탄생을 예고한다.

냉전시대가 끝났지만 세상 그 어딘가에서는 냉전시대가 진행형이다. 본시리즈와 베를린은 그런 의미에서 배경부터가 닮아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상황과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액션과 철저한 냉점함, 그리고 짐승 냄새 가득한 고독까지도 닮아 있다. 아마도 베를린 영화 속에 본시리즈의 음악을 입혀도 전혀 문제없을 것이다.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은 자신의 옷을 입었고, 전지현은 명품을 벗었다

 
 
영화 베를린의 백미는 단연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이다. 하정우와 류승범, 전지현, 한석규 모두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탁월한 연기력이 빛났다.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연기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고 누군가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화면 구성은 철저하게 계산된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증명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빛난 인물은 전지현이었다. 하정우와 류승범, 한석규는 이미 자신들이 한번은 해보았을 연기들을 이어간다. 짐승 냄새 가득하면서도 고뇌하는 하정우의 모습과 냉혹하면서도 비열한 류승범의 연기는 이미 어느 작품에서 본 듯한 모습이다.

한석규 역시 쉬리를 거쳐 구타유발자 어느 언저리에서 적절한 능력자의 스킬을 구사하며 익숙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전지현의 절제된 모습은 아름다움으로 늘 대표에 섰던 과거와 다르다. 앞서 개봉했던 도둑들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절제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고마운 이유는 왜일까.

베를린의 최대 강점은 절제된 배우들의 호연으로 주인공은 있지만 주인공만의 영화가 아니고, 히로인은 있지만 히로인이 히로인이 아닌 점일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아파트 옥상, 또는 고가 어딘가에서 고뇌하는 본시리즈의 맷데이먼처럼 어느 구석진 골방에서 고뇌하는 하정우와 말없이 그를 지나쳐가는 전지현, 그리고 ‘빨갱이’라며 육두문자를 날리는 한석규, 비열한 웃음을 머금은 류승범이 그립다. 다시는 이들 모두를 한 영화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소중하고 감탄스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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