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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화교남매 간첩조작사건’ 피고 유씨, 마침내 입열다피고신문에서 유씨,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

너무 억울했다. 기가 막혔다. 눈물이 났다.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원 탈북화교남매 간첩조작사건’ 피고인 신문에서 유씨는 이처럼 복잡한 심경을 법정에서 그대로 쏟아냈다. 그렇다고 감성에 호소하지는 않았다. 상식을 붙잡았다. 조목조목 검찰의 공소사실을 따졌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해도 되지만 가급적 구체적인 진술을 해달라”는 재판장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유씨는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설명하고 호소했다.

감정에 복받친 유씨가 두 차례 정도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하자 재판장이 잠시 휴정을 선언하기도 했다. 피고의 진술 중간중간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고의 여동생도 눈물을 훔쳤다. 외국인 신분(화교)으로 출국을 연장해오던 여동생은 중국에 홀로 남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3일 오전 출국했다.
다음은 28일 있었던 피고 유씨에 대한 주요 신문 내용이다.

   
▲ 피고의 여동생이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기에 앞서 국내 지인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검사: 북한에서 준의사로 근무하며 전문적으로 탈북자 대북송금 수수료 챙기는 일도 했었나?
▲피고: 전문적으로 했다는 표현은 너무 과하다. 병원서 의사로 일함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적었다. 화교 신분으로 합법적으로 1년에 2~3회 중국 왔다갔다했다. 중국 내 탈북자들 부탁받고 북한에 송금하는 일도 했다.
△검사: 화교임을 숨기고 탈북자라고 주장해서 대전에 정착한 것은 인정하나?
▲피고: 국정원 조사 때 이미 할아버지 대부터 북한에서 살았고 독립유공자라는 걸 솔직히 말했다. 단 하나만 숨겼다. 화교라는 사실이다. 그걸 말씀 못드렸다.
△검사: 화교 신분을 속이고 대한민국에 정착한 이유는?
▲피고: 난 북한에서 태어나 학교의 거의 전 과정을 북한 아이들과 같이 놀고 같이 지냈다. 엄격한 법적 잣대로 보자면 모르겠지만 북한 내 친구들도 그렇고 난 한번도 내가 화교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검사: 2005년 탈북자 최모씨의 부탁받고 북한에 송금한 적 있나?
▲피고: 이미 2007년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사안이다. 탈북자 송금해 줬던 사람은 최씨, 또 다른 최씨, 그 누나, 그리고 그 친구 이게 전부다. 최씨가 저한테 “다른 사람한테 부탁했더니 돈 떼먹고 해서 그러니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준 것이다. 최씨와는 어릴 적부터 회령에서 같이 자란 사이다.
△검사: 남한에서 주민번호를 두세 번 바꾼 적이 있는데 왜 바꿨나?
▲피고: 내가 남한에 와서 받은 주민번호는 음력 생일로 되어 있다. 진짜 생년월일은 양력 10월 26일인데 진짜 생일을 찾고 싶었다. 처음에 신고할 때는 두 개 다 신고했는데 음력인 9월 18일로 돼 있는 걸 나중에 확인했다.
△검사: 보통 탈북자가 한 번 정도는 주민번호를 바꾸는데 두 번 세 번 바꾼 건 탈북자라는 사실이 밝혀져서이고 중국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 아닌가?
▲피고: 중국에 가야 해서가 아니라 북한 내 자격증을 인정받으려면 북한에 있을 때의 생일과 똑같아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 내 본명은 탈북자 중에도 2~3명이 더 있을 정도로 흔한 이름이다. 취직을 앞두고 남한에서 남한 사람처럼 살자고 생각해서 그렇게 바꾼 것이다.
△검사: 아버지가 보위부에 인입돼 보위부에 3000위완(중국화폐) 건넨 사실이 있나?
▲피고: 그런 사실 없는데 국정원에서 주변 조사 후 저한테 밀입북 사실을 물었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 대부터 일본과 싸웠기에 북한 국적이 될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2006년 당시 북한에 갈 때 도강하지 않고 세관으로 들어갔다’고 하니까 ‘탈북자가 세관으로 들어가는 게 말이 안된다’며 ‘북한 공작원 아니냐’고 물었다. 그때 점심시간에 밥 먹으면서 고민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탈북자가 세관 통해 북한에 다시 들어간다는 게 말이 안되지 않나. 그래서 내가 뭘 줬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TV나 노트북을 줬다고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진술했던 것이다. 3000위완 줬다는 건 장례식 마치고 돌아가며 얼핏 들은 게 있어서 그렇게 진술한 것이다.
△검사: 피고의 국정원에서의 진술에 따르면 2006년 8월 보위부에 뇌물 줬다고 되어 있는데?
▲피고: 사실이 아닌데 화교 신분을 숨겨야 하기에 그렇게 진술했다.
△검사: 2009년 영한우리 활동할 때 90여명 회원 정보를 수집한 적 있나?
▲피고: 회원은 90명이 안된다. 자원봉사자나 어르신들의 큰한우리가 있고, 영한우리 이렇게 두 개가 있다. 어르신들께서 탈북자들이 있는 영한우리에 찾아오셔서 격려해주시곤 했다. 제가 회장이던 2012년 2월, 그때 영한우리 회원수가 30명 미만이었다. 그것도 전부가 탈북자가 아니라 남한 사람이 절반 정도 된다.
△검사: QQ 메신저(중국에서 주로 쓰는 메신저) 통해 회원 파일을 중국 여동생 통해 보위부에 보낸 사실이 있나?
▲피고: 그런 사실 전혀 없다.
△검사: 그 이후에도 탈북자 정보를 계속 수집하지 않았나?
▲피고: (한숨) 제가 제일 억울한 부분이다. 결론을 얘기하면 탈북자 정보를 수집한 게 아니다. 제가 수강 신청할 때 도와준 분들이 주로 종교단체 분들이다. 그런 학우들이 없었으면 졸업 못했을 것이다. 그때 가톨릭의 김모 신부님 건의를 받아서 누군가는 탈북자를 컨트롤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톨릭재단 청년부와 영한우리를 만들게 됐다. 일대일 멘토를 통해 남한 정착, 학업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주로 했다.
△검사: 여동생이 합법적으로 남한에 들어가서 활동하라는 보위부 지시를 오빠를 통해 받았다고 국정원서 진술했는데?
▲피고: 그런 사실 전혀 없다. 혹시 그렇다고 한들 중국에 왔다갔다하면서 주는 게 훨씬 덜 위험하지 않겠나.
△검사: (2011년 여름 밀입북 관련) 당초 귀국 예정일을 넘겨 2011년 7월 11일에 귀국한 이유는?
▲피고: 아버지와 동생이 2011년 7월 7일 중국에 나오게 돼 있었는데 세관에 나갔지만 못만나고 왔다. 사연 들어보니 아버지가 대장염이 있어서 그 약을 가지고 나오다가 세관에 걸려서 벌금을 냈다고 하더라. 그 다음날 나오려고 했는데 김일성 사망일이어서 안되고 7월 9일 세관 문을 연다고 해서 다시 7월 9일 동생과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 어머니 유골을 아버지와 여동생이 가지고 오는 거여서 장남으로서 어머니 유골 받아서 장춘에 가서 묻어야 했기에 7월 10일 묻고 버스 타고 장춘서 베이징으로 이동했다. 서울시에 근무한 지 얼마 안되어서 그렇게 하면 안되는데 어머니 유골을 묻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함)
◇판사: 30분만 쉬었다 하자.

   
▲ 연세대 재학 당시의 피고 유씨 모습 ⓒ유코리아뉴스

(속개)
△검사: 서울시청 같은 부서 근무자는 ‘피고가 입국 예정일에 연락했는데 연락이 안돼 중국서 여권과 가방을 분실했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했는데?
▲피고: 하루 이틀 늦을 거라는 보고는 했다.
◇판사: 실제 여권 분실은 아니었나?
▲피고: 그렇다.
△검사: 그런데 왜 여권, 가방 분실했다고 했나?
▲피고: 아버지와 동생이 늦게 들어왔기에 어쩔 수 없었다.
△검사: 왜 연락을 못받았나?
▲피고: 제가 휴대폰 잃어버린 다음에 전화를 한 것 같다. 늦어도 7월 10일까지 나가겠다고 서울시청에 보고했었다.
◇판사: 휴대폰 분실은 어디서 어떻게 된 건가?
▲피고: 택시 타고 이동할 때 흘린 것 같다.
△검사: 휴대폰을 잃어버렸으면 상식적으로 다른 긴급 연락처를 서울시 공무원에 알렸어야 하지 않나?
▲피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족이 나온 뒤 바로 장춘으로 갔고 거기서 어머니 유골을 10일 낮에 묻고 바로 10일 밤에 버스로 베이징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검사: (1월 24일 새벽부터 25일까지 밀입북했다는 공소사실 관련) 2012년 1월 설 명절에 중국 갔을 때 1월 24일 밤부터 통화기록이 전혀 없는데?
▲피고: 기억을 되살려보면 1월 22일에 중국 도착해서 이씨네(피고의 조선족 친구로 피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유력한 증인) 집에 갔다. 구정 명절이어서 이씨 가족과 함께 노래방 가서 놀았다. 아이폰 들고가서 그때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 사진들이 왜 지금은 다 삭제됐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노래하는 동영상까지 찍었었다. 1월 24일 아침 늦잠 잤고 연길 사촌형과 조카가 새해 인사차 아버지에게 왔다. 점심시간에 사촌형 두 명과 밥 먹고 맥주 마시고 오후에 다시 이씨네 놀러갔다. 거기서 휴대폰을 놓고 간 것 같다. 방전이 됐었는지 꺼져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검사: 2011년 서울시에 채용됐을 때 피고가 담당한 업무는?
▲피고: 탈북자를 포함해 지원과 상담 업무였다. 서울시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 탈북자도 포함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 상담했던 탈북자는 10명도 안된다. 각 구청마다 탈북자 상담자가 있고 그것도 안되면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 상담하는데 그렇다 보니 내가 상담하는 탈북자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판사: (검사를 향해) 변호인이 제출한 탈북자 명단 의견 관련해서 명단 전체가 탈북자가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결국 이것을 입증할 책임이 검사에게 있기에 이게 대부분 탈북자인지 아닌지를 밝혀 달라. 증거 보강해 달라.
○변호사: (여동생의 QQ 메신저 가입 정보를 증거로 제시하며) ‘Q齡=1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은 여동생이 최소한 QQ 메신저에 가입한 지 만 2년은 안됐다는 의미다. 따라서 여동생은 2011년 6월 이전에 QQ 메신저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여동생은 (국정원의 회유와 협박에 의해) 가짜 진술서를 쓴 것이다.
○변호사: 피고가 옥션에서 노트북을 구입했다면 구입 내역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증거가 안나오는 건 구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사: 옥션에서는 검색만 하고 직접 당사자를 만나 전화로 구입했기 때문에 내역에 나오지 않는 거다.
△검사: 피고의 이메일 속엔 우양재단 평화강사 18명 명단도 있는데?
▲피고: 전부가 탈북자인 게 아니다. 그 중에서 제가 아는 탈북자는 5명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다 남한 사람이다.
△검사: 2012년 7월경 여동생을 남한에 보내 활동시키는 문제로 북한 보위부와 협의한 사실 있나?
▲피고: 그런 사실 없다. 여동생은 당시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직업도 변변찮고 해서 내가 ‘그런 사람 만나지 말라’고 꾸지람을 했다. 동생을 남한에 데리고오려는 결심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검사: 휴대폰을 아이폰에서 갤럭시2로 교체하고 노트북도 새로 포맷했는데?
▲피고: 아이폰을 구입한 지는 오래됐고 마침 갤럭시가 굉장히 싸게 나와서 월 7만 5000원에 구입했다. 노트북은 제가 영화를 많이 다운받았는데 그 컴퓨터 성능이 느려져서 다시 포맷한 것 같다. 증거 인멸하려고 했다면 포맷이 아니라 갖다버렸을 것이다. 2009년에 이미 가택수색 당한 적 있다. 그때 국정원에서 내 노트북 2대를 가져다가 다 조사했다. 만약 증거인멸 하려 했다면 중고시장에 갖다 팔았을 것이다.
○변호사: 화교로 중국서 사는 게 편했을 텐데 왜 한국 왔나?
▲피고: 난 태어난 곳이 북한이고 다른 북한 아이들과 같이 놀고 같이 자랐다. 나는 지금도 내가 탈북자라고 생각한다.
○변호사: 2005년, 2006년 생계가 어려운데도 중국을 많이 왔다갔다한 이유는?
▲피고: 어머니가 선천성 심장병을 앓으셨다.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가고자 자주 다녔다. 어머니가 베이징서 수술을 받았는데 2006년 4월엔 심장 수술 후 검사를 위해서 베이징엘 갔고, 5월엔 어머니 장례식 때문에 북한엘 갔다.
◇판사: 주민번호를 바꾼 건 중국 정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나?
▲피고: 2007년인가 2008년에 정부가 전체 탈북자에게 신고하면 주민번호를 바꿔준다고 해서 일괄적으로 바꿨다.
○변호사: 2009년, 2010년 피고를 조사하면서 국정원 수사관이 2006년 피고의 중국-북한 출입기록 보여줬나?
▲피고: 안보여줬다. 저는 그 어느 사람보다 대한민국에 살고 싶은 사람이다. 대전의 성당에 다니면서 사기도 당했지만, 북한의사자격증도 포기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에 살고 싶었다. 화교라는 게 뭔지.,,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파탄나는 게..(울먹) 난 북한에서 똑같이 태어나 똑같이 학교 다녔고 졸업했는데..(울먹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함)
○변호사: 검찰은 공소사실에서 피고가 2006년 6월 초에 보위부에 인입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2006년 5월에 몰래 들어갔다고 8월에 뇌물 바친다는 게 말이 안된다. 도리어 피고를 인입한 보위부로부터 돈을 받았어야 맞지 않나. 그리고 검찰 측이 제출한 2012년 1월 유씨의 통화 내역에 보면 아버지나 여동생과 통화한 내역이 없다. 당연히 피고가 중국 가족들을 만나러 간다면 통화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유씨 재판은 오는 5일 추가 증인 신문, 증거조사를 거쳐 이르면 5일 오후, 늦어도 8일에 결심이 이뤄진다. 선고는 8월 중에 있을 예정이다. 변호인 측은 증인들의 구체적인 진술, 충분한 증거 제시를 통해 공소사실 전부를 반박한 만큼 무죄를 확신하고 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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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5-01-14 15:02:15

    탈북화교지만 엄연히 북한에서 나고자랐던 북한남자였다! 유우성씨를 악마로 몰아가는 악질언론들과 법조계는 대체 정신이 있는건고 없는건고? 이 남자가 북한에 간것도 어머니의 병고때문이었는데도 정보수집하기위해 북한에 갔다? 대체 종편언론들은 헛소리질을 왜하냐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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