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조상 대대로 우리와 함께 살아 온 우리의 산하, 대한민국 금수강산 어느 곳 하나 정답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니 고향을 떠난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릴 때 뛰어놀던 고향산천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산하에 얽혀 살아온 사연들 때문이다. 나 역시 고향인 서울 광진구 구의동 뒷산의 아차산과 마을 앞을 흐르는 한강에 대한 그리움이 많다.

내가 중고교 시절인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의동 마을 앞 한강변에는 미루나무와 수양버들, 물푸레나무, 뽕나무, 느릅나무, 아카시아, 그리고 살구나무까지 다양한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겠지만, 1982년9월부터 벌어진 한강종합개발사업 이전의 한강 가에는 모래사장이 즐비했다. 당시 서울시민들이 자주 찾았던 가장 대표적인 여름 휴식처가 뚝섬유원지와 광나루유원지였고, 그곳에는 그런 피서객들을 담을 수 있는 넓은 모래사장이 있었다.

그곳은 당시 방송사에서 여름 납량특집 공개방송을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수영을 할 만큼 깨끗했다. 그때 서울 한강은 명실 공히 서울시민들의 여가생활을 위한 터전이었다.

그런 고향의 강가에 앉아 나는 가끔 상념에 잠기곤 했다. 저 물은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궁금했다. 때로는 강물을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면서 지금의 구리시나 팔당댐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아마 강이 인간을 부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강의 시원(始原)은 나만이 갖는 동경이 아니었다. 흔히 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늘 그 강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상상하기 마련인데, 마치 연어처럼 언젠가 한 번은 그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수안보 농장을 찾아 2009년 3월 귀농하게 된 것은 내 마음속에 잠재해 있던 한강 발원지에 대한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그 강이 부르지 않았더라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내가 자연스럽게 귀농을 할 수 있는 용기가 그리 쉽게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강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경기도 양평 양수리에서 만나 하남시와 남양주시, 서울시를 가로 질러 김포시를 지나고 강화도를 굽이쳐 휘돌아 서해로 빠지는 총길이 514km의 길고 긴 물줄기를 말한다.

한강의 발원지를 국립지리원은 1987년에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태백산 금대봉골의 검룡소(儉龍沼)라고 공식 수정했다. 그 이전에는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의 ‘우통수(于筒水)’가 꼽혀왔으나 인공위성이 찍은 지도를 정밀 감식한 결과 검룡소의 물줄기가 약 32㎞ 더 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물론 강줄기 중에서 가장 긴 노선 끝이 발원지가 되기에 검룡소가 한강의 시원(始原)이겠지만, 북한강만으로 본다면 한강의 발원지는 금강산이다. 또 골짜기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지류들로 본다면 발원지는 여러 곳으로 분산되는데, 그 중 남한강의 지류 달천(達川)의 한 발원지가 바로 내가 귀농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고운리의 시어골이다.

고운리는 해발 500~700m의 일곱 개 산봉우리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만들어놓은 깊은 골짜기 마을이다. 백두대간의 남쪽 중원인 국립공원 월악산이 남서쪽의 속리산을 향해 뻗으면서 북바위산과 같은 여러 개의 산봉우리로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북바위산(772m) 아래 석문봉(727m)이 고운리의 최남단 시어골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석문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일명 첩푸산이라 부르는 적보산(積寶山, 699m)과 산마리재라는 두 봉우리가 뻗어 있다. 또 동쪽으로는 망대봉을 지나 이름 없는 두 봉우리(519m, 527m)를 거쳐 대미산(大眉山, 678m)에 이르기까지 네 봉우리가 펼쳐있다. 고운리는 바로 이 같은 일곱 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골짜기 분지다.

그 골짜기 산허리에 나와 친지들이 일군 자미원(紫微園)이라는 약초 농장이 자리 잡고 있다. 작은 농장이지만 동쪽 대미산과 서쪽 적보산 기슭에 각각 한 곳씩 있다. 또 가장 깊숙한 시어골 골짜기인 석문봉 기슭에도 약초 묘목을 기르는 작은 농장과 약초를 발효시켜 보관하는 저장소를 두었다.

자미원이란 우리 민족의 전통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주의 컨트롤 타워다. 북두칠성이 호위하듯이 밤새도록 그 주위를 한 바퀴 돈다는 하늘의 중심이다. 고운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곱 개의 산봉우리들이 마치 북두칠성 같은 느낌이기에 나는 감히 농장 이름을 그렇게 명명했다.

천지를 창조한 신은 고운리 북쪽에 협곡을 열어 놓았다. 그 문으로 외부와 소통하라는 뜻인 만큼 이 마을의 유일한 통로다. 여기 와서 안 것이지만, 영겁의 세월 동안 그 협곡으로 빠져나온 물이 고운천이 되어 내 고향 서울 구의동까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즉 그 고운천이 고운리 끝이자 중산리 입구에 이르러 중산저수지가 되었고, 거기서 나온 중산천은 다시 석문동천에서 다른 지류들을 만나 함께 달천(達川)과 남한강, 한강으로 흘러들어가 서울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결국 나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강변을 떠난 뒤 30년 만에 한강의 발원지를 찾아 나섰던 셈이다. 그저 찾아간 발원지가 아니라, 귀농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기에 그곳에 자미원이라는 약초 농장을 만들 수 있었다.

강물의 발원지는 늘 세상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이제부터 시어골에서 발원한 달천 지류는 또 어떤 이야기를 갖고 한강으로 흘러들어갈 것인지 기대가 크다. 약초 농장이 있기에 당연히 세상의 난(亂)을 평정하고, 인간의 병을 치유하는 구원의 소식이 많아야 할 것이다.

곧 6월6일, 2013년의 현충일이다. 조국의 산하를 지킨 호국영령들에 대한 추모의 날이다. 막상 고운리에 와보니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선봉장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가 시어골 뒷산 석문봉 너머의 문경새재를 돌파하고 충주로 돌진해 신립(申砬) 장군이 이끄는 8000기마대를 탄금대에서 격파했다는 것에 새삼 울화가 치민다.

하지만 고운리 서쪽 적보산 너머에 대한민국 중앙경찰학교가 자리 잡게 됨으로써 음양의 균형이 이제 어느 정도 맞아지는 느낌이다. 그 적보산이 바로 중앙경찰학교의 산악훈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훈련을 받는 경찰들을 위해 적보산 정상에 “꿈과 희망을 경찰에게! 안전과 행복을 국민에게!”라는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나는 이제 일본군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죄로 달천 탄금대에 투신 자결한 신립 장군은 물론 수많은 전란을 맞아 조국의 산천을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들 영전에서 “꿈과 희망을 자미원에게! 안전과 행복을 국민에게!”라는 다짐을 하려 한다.

아마 그것이 지난 30년간 한강의 발원지를 찾아 나섰던 내 의식의 결정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현충일의 염원을 담은 시어골 자미원의 샘물은 오늘도 힘차게 고운리 분지를 나와 세계로 달리는 ‘달천’이 될 것이다.

그 달천이 탄금대에서 남한강과 만나고, 남한강은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며, 한강은 강화도에서 한탄강과 만나 서해바다로 들어가 오대양육대주로 뻗어 갈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자미원의 고운천 물이 이제는 세계인과 함께 호흡하는 건강과 평화의 물이 된 것이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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