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만세(萬歲)는 공동체의 영원한 발전과 전진을 상징한다. 꺼지지 않는 불처럼 영원히 타오르는 힘을 북돋는 공동체의 구호다. 그래서 만세를 부르는 공동체 내부에 영원한 에너지가 존재하기를 기원하며, 그 공동체에서 너와 내가 함께 번영하기를 염원한다.

미국은 1814년 독립전쟁 때부터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Spangled Banner)’는 ‘성조기 만세’를 노래해왔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 국민은 ‘하일 도이칠란트(Heil Deutschland, 독일 만세)’로 재도약을 외쳤다. 영국은 아직도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God Save the Queen)’라는 ‘여왕폐하 만세’를 구호로 외치고 있다.

중국은 대대로 황제를 위한 ‘완쑤이 완쑤이 완완쑤이(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쳐왔다. ‘영원한 황제의 나라’를 위한 거대한 합창이었다. 그러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왕조가 몰락한 이후 모택동에 의해 “중국공산당 만세”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역설적 표현으로 시작한 ‘중국만세(Socialism is Great)’를 외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지난 4월28일, 일본 동경에서 갑자기 우렁차게 세 번 울려 퍼진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는 바로 우리 대한민국에까지 강하게 들려왔다.

덴노헤이카 반자이!… 덴노헤이카 반자이!… 덴노헤이카 반자이!

만세삼창 소리다. 우리말로는 천황폐하 만세(天皇陛下 萬歲), 천황폐하 만세(天皇陛下 萬歲), 천황폐하 만세(天皇陛下 萬歲)였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영국 등 48개국과 맺은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6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다.

만세삼창을 부른 장소는 동경 시내 일본 헌정기념관. 그들은 만세를 부르면서 이른바 ‘주권회복ㆍ국제사회 복귀 기념식’을 당당하게 개최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 중ㆍ참의원 의장 등 현대 일본의 지도자 400여명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 기념식에서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는 “(일본이) 지금까지 걸어온 족적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향해 희망과 결의’를 새롭게 하고 싶다”고 역설했다. 한국 등 주변국을 의식해 주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패전 후 처음 부른 ‘천황만세’ 삼창에는 총리, 중ㆍ참의원 의장 등 단상에 있던 3권 수장과 국회의원들이 가세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은 지난 700여 년간 ‘만세(萬歲)’를 부를 수 없었다. 고려 말에 원(元)나라의 부마국이 되면서부터다. 만세는 황제국이나 부를 수 있는 것이기에 제후국인 조선도 500여 년 동안 만세 보다 등급이 떨어지는 천세(千歲)를 불러야 했다.

그나마 천세마저도 1945년 해방 이전까지는 부를 수 없었다. 부를 수 있는 만세란 오직 “덴노헤이카 반자이!” 뿐이었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천세!’가 아닌 ‘대한민국 만세!’를 당당히 부를 수 있다. 기업의 이름을 넣어 “OO산업 만세!”라고도 외칠 수 있다. 학교 이름을 넣어 “OO학교 만세!”라고도 부를 수 있다. 또 김구 선생이 강조한 “홍익인간 만세!”를 당연히 소리칠 수 있다.

그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기 위해 중국 대륙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전쟁을 벌이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희생돼야 했음을 우리는 안다. 만세의 대상인 ‘대한독립’이 1945년 이뤄지자 민족지도자 김구(金九)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다음과 같이 만세의 대상을 다시 제시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富力=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 하고, 우리의 강력(强力=국방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도움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의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직접 거명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을 널리 사랑하자”는 ‘홍익인간 만세운동’을 주창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이 ‘천황폐하 만세’로 그들 식의 화합과 대동단결을 이루고자 했듯이,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이 되지 못해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의 독립,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해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그도 “공자, 석가, 예수의 도(道)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민족의 정신이 없으면 내부에서조차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다”고 안타까워했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지난 4월28일 ‘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이유에 대해 그는 스스로 “일본의 미래를 향해 희망과 결의를 새롭게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철학이었다.

아직도 왕조시대인 일본에게 ‘천황폐하 만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더 유구한 역사의 ‘홍익인간 만세’ 문화와 철학이 있다는 것이 김구 선생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홍익인간 만세’는 물론이요, 그 어떤 ‘만세’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적 구호가 메말라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불행하게도 숱한 역사의 질곡이 남긴 패배주의가 몸에 밴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미래를 향해 희망과 결의를 새롭게 하는” 만세 부르기를 은근히 어색해 한다. 당당하게 만세를 부르자고 강조하는 정치세력이나 지도자도 그리 많지 않다. 고작 3.1절이나 광복절 같은 국경일에나 간혹 부를 뿐이다.

그래서 도올 김용옥 교수가 13년 전 우리 민족이 한동안 홍익인간을 되살리지 못한 것을 ‘자기 배반의 역사’라고 질타하고 나섰던 것이다. ‘민족 내부의 도덕적 빈곤성의 산물’로 ‘주체적 삶’을 잃어 남북분단이 발생하고, IMF 등 여러 국가적 위기들이 벌어졌다고 한탄했던 것이다.

이제 나는 국민적 구호로 ‘홍익인간 만세’ 삼창을 목 놓아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첫 번째는 지구촌 행복공동체를 위한 홍익인간 만세고, 두 번째는 가난 없는 사회를 위한 홍익인간 만세며, 세 번째는 다단계․방판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홍익인간 만세다.

고종황제 서거 40여일만인 1919년 3.1운동 때 우리 민족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억제 받은 만세에 대한 희생은 컸다. 일본 측의 공식 기록에 의하면 당시 사망자는 7,509명, 부상자는 1만5,961명, 검거된 사람은 5만2,770명이었다.

‘덴노헤이카 반자이’가 아닌 ‘대한독립 만세’를 부른 결과는 그토록 참혹했던 것이다. 이제는 홍익인간 정신을 잃은 ‘자기배반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당장 일제 및 6.25 순국선열에 대한 후손들의 도리며 의리다.

만세는 피 흘리고 전투적인 파이팅(fighting)이 아니다. 널리 인간을 사랑하는 평화의 구호요, 메시지다.

따라서 나와 친지들은 김구 선생이 민족철학으로 제시한 ‘홍익인간 만세’를 오늘도, 또한 내일도 힘차게 부를 것이다. 그러고 나면 가슴 속도 후련해진다. 누구든지 ‘만세’를 외쳐보라. 실제 경험해본다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거리고 올라오는 ‘생(生)의 기운’을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홍익인간 만세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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