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경영자에게 있어 대화는 사업의 중요 요소다. 대화에는 늘 상대방이 있다. 따라서 대화와 사업에서는 비록 화를 내야 하는 일이 있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내 얘기만 쏟아내는 경우라면 그것은 사업도 아니고 대화도 아닐 것이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독교적으로 본다면 원수에게 전하는 말에도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랑은 또 집념이나 전제조건이 붙지 아니해야 한다. 너만 사랑할 테니 나만 사랑하라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나를 버려야 가능하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생각이 맑고 고요하면 말도 맑고 고요하게 나온다. 생각이 야비하거나 거칠면 말도 또한 야비하고 거칠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말로써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말을 존재의 집이라 한다.”

3년 전 타계한 법정(法頂)스님의 말씀이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은 최근 어려운 한자어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귀태(鬼胎)라는 단어다. 귀신 귀(鬼), 아이 밸 태(胎) 자를 쓰는데, 본래의 뜻은 ‘귀신에게서 태어난 아이’ 또는 ‘불구의 태아를 임신하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차기 정권을 노린 ‘집념’이 아닌 ‘과욕’을 드러낸 말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납량특집의 괴기 영화를 보는 듯 섬뜩했다. 더군다나 그 말을 국가원수인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했다고 하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좋고 싫음을 떠나 결코 입에 담지 말았어야 할 말이다.

보도에 의하면 그 ‘저주의 말’의 ‘표현자’는 모 야당의 대변인이다.

그는 7월11일 국회브리핑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란 책의 내용을 인용해 “책에 귀태(鬼胎)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태어났다는 뜻”이라며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후손들(아베총리)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귀태(鬼胎)의 후손들인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행보가 유사한 면이 있다”며 “아베총리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고 박대통령은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결국 그 대변인은 비난 여론에 밀려 사퇴했다. 하지만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다”는 말처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각인시키고야 말았다.

정권획득이 정치인의 본능이라고 하지만, 그런 막말을 하면서까지 정권과 권력이 갖고 싶은 것일까. ‘무소유(無所有)’를 가르친 법정스님은 ‘미움도 사랑도’라는 글에서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며 진정한 사랑을 세상에 주문했다.

나는 세상이 혼돈하고, 내 마음에 사랑이 식을 때면 그의 말씀을 통해 사랑의 불씨를 지핀다.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두 가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 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바 없이 해야 한다. 인연 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 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 이것이 인연은 받아들이고, 집착은 놓는 수행자의 걸림 없는 삶이다. 사랑도 미움도 놓아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수행자의 길이다.”

물론 나 같은 필부야 어찌 법정스님과 같은 높은 정신세계에 근접이라도 할 것인가.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눈으로는 이해해도, 과연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사는 돈과 권력을 좇아 수많은 정변을 낳았고, 도처에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법정스님의 말씀대로 집착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지나치게 사랑하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살육이 같은 민족 간에도 벌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사랑을 하되 집착이 있을까봐 불가에서는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사랑은 언제나 자기 본위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한 아들이 왕세자가 되기 위해 타인의 아들을 저주하는 사극 드라마와 같이, 현대 정치에서도 내가 사랑한 돈과 권력 때문에 타인을 저주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불가에서 보는 ‘사랑’은 ‘에고(ego)’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즉 에고이즘 (egoism)이기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이란 대부분 자기중심이기 때문이다. 우선 자기 자신부터 생각한다. 이어서 내 아이, 내 아내, 내 부모로 범위가 커지며, 내 학교 사랑이 학연을, 내 고장 사랑이 지연을 낳는다. 내 회사, 내 교회, 내 친구 등 모든 사랑이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이기적인 모습이다.

히로사치아(增原良彦)가 쓴 ‘수필로 쓴 불교’를 보면 사랑하는 대상을 영원히 ‘내 것’으로 묶어두고 싶은 심정, 사랑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집착이 있다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헛된 집착으로 변해버린 그런 사랑을 갈애(渴愛)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사람이 갈증에 시달리다 못해 바닷물을 마셔버린 상태다. 바닷물은 결코 갈증을 치료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큰 갈증으로 이어져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말라”고 한다. 그 반면 기독교에는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마저 내놓으라”며, “원수도 사랑하라”는 지독한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그 두 말은 극과 극이지만 같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다르지만 결국 정상에 이르고 보면 같은 가르침이었다. 법정스님의 길상사 개원식에 김수환 추기경이 축사를 한 것이나, 크리스마스 때 조계종 사찰에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된 것은 바로 두 종단의 ‘지극한 사랑’이 결국 같은 논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홍익인본주의 역시 같다.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하라는 우리 조상 대대로의 가르침이 바로 사랑이었다. 갈애(渴愛)하지 말라는 것, 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것이 바로 홍익인간 정신이다.

나는 지금까지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사랑도 미움도 놓아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혼자서) 가는 ‘섬김이’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것이 비즈니스에서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먼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큰 생각으로 상대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자신 있는 행동이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자비와 사랑은 본래 하나이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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