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금년은 사상 유례가 없는 긴 추석 연휴가 이어졌다. 공식 휴일은 3일이지만, 14일 토요일부터 쉰 근로자들도 있었다 하니 그런 경우는 최고 9일의 휴가기간을 즐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19일에 떠오른 한가위 달은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슈퍼문(Super Moon)이었다고 한다. 지구와 달과의 거리가 가장 짧을 때 보이는 크고 밝은 달을 말한다.

나는 실제 어릴 적 그 달을 따려고 내 고향인 서울 광진구 구의동 뒷산의 아차산을 용감하게 오른 적이 있다. 나 같은 체험이 있는 독자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때 나는 산위에 걸린 보름달을 따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부지런히 산위로 달음질쳐 올랐었다.

그러나 아뿔싸~ 우리가 산에 오르는 사이 달은 저 높은 하늘로 달아나버린 것이었다. 그때의 실망감과 달에 대한 야속함이 얼마나 컸던지 달을 향해 돌멩이를 수없이 던진 기억이 아직도 새롭기만 하다. 조금 더 크면서 알았던 ‘진리’지만, 그 달은 나 혼자만의 것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지난 수천 년간 그 공동소유의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함께 빌어 왔다. 휘영청 밝은 달이 중천에 떠오르면, 아낙네들은 뒷마당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릇 떠 놓고 먼 길 떠난 남편이나 자식들의 무사귀환과 무운장도를 기원했다.

그럴 때 하늘의 달과 정한수 속의 달, 즉 천지간의 두 달이 그 여인과 함께 하게 된다. 따라서 그 기원의 대상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시집간 딸을 위한 기도도 있었을 것이고, 질병에 시달리는 가족의 쾌유도 빌었을 것이며, 술주정을 일삼는 친정 오라버니가 제발 정신 차리고 들에 나가 농사일에 힘써달라는 간절한 바램도 있었을 것이다.

그 같은 세상의 기원들을 공동체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세계 최고(最古)이자 최대(最大)의 집단의식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 전통의 강강술래가 아닐까 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을 한가위 보름달 아래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강강술래는 우리 민족이 추구한 하늘과 땅과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이 일체를 이루는 벅찬 하모니(harmony)였다.

강강술래(Ganggangsullae)의 집단 에너지와 군무(群舞)의 아름다움은 결코 우리만이 인정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09년9월에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됨으로써 인류공영의 문화유산으로 발돋움하기에 이르렀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일(合一)하는 강강술래를 위해 음력 8월15일 밤에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은 부녀자들은 마을의 가장 큰 공터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달과 같은 둥근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소리 가사에 일가견이 있는 리더의 선창을 받아 ‘강강술래’라는 후렴으로 응대하는 합창을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었다. 그것은 놀이이자 하늘을 향한 기도였다.

오동추야 달은 밝고 님 생각이 절로 난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님아 님아 우리 님아 어딜가고 못 오느냐 강-강-술-래~ 강-강-술-래~
새벽서리 찬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럭아 강-강-술-래~ 강-강-술-래~
울었으면 니 울었지 잠든 나를 깨우느냐 강-강-술-래~ 강-강-술-래~

구름 잡아 잉어 걸고 달을 잡아 북 만들고 강-강-술-래~ 강-강-술-래~
별을 잡아 무늬 놓고 째각 째각 잘도 짠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그 베 짜서 무엇 하나 우리오빠 장가 갈제 강-강-술-래~ 강-강-술-래~
가마 휘장 두를라네 하늘에는 별도 총총 강-강-술-래~ 강-강-술-래~

솔밭에는 솔잎 총총 대밭에는 대가 총총 강-강-술-래~ 강-강-술-래~
동모도 좋고 마당도 좋네 동모 좋을 때 놀아 보세 강-강-술-래~ 강-강-술-래~
달 가운데 노송나무 뚝뚝 썰어 호박 나물 강-강-술-래~ 강-강-술-래~
채로 썰어 무우 나물 부모공양 올려 보세 강-강-술-래~ 강-강-술-래~

이렇게 놀았던 부녀자들의 집단 군무가 사실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는 병법의 하나에서 출발했다는 설도 있다. 이순신 장군이 수병을 거느리고 해남의 우수영에서 왜군과 대치할 때의 일이다. 그는 조선 수병들이 매우 많은 것처럼 보여 왜군이 함부로 침입해 들어올 수 없게 하기 위해 부녀자들로 하여금 남자 차림을 하고 떼 지어 올라가 옥매산(玉埋山) 허리를 빙빙 돌게 했다고 한다.

그러자 바다 위의 왜군들은 이순신의 군사가 엄청나게 많은 줄로 알고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싸움이 끝난 뒤 부근의 마을 부녀자들이 이 집단무(集團舞)를 기념하기 위해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며 즐기던 것이 바로 오늘날의 ‘강강술래’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달은 부모형제들의 안녕은 물론 나라의 평화까지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성경이나 불경과 같이 성문화된 경전이 있는 종교의식은 물론 아니지만, 보름달을 향하여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고, 현세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은 우리네 삶의 일부분이었다.

그래서 달은 어느 누구의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어릴 적 아차산에 걸린 달을 따다 우리집에 걸어두려 했듯이 어느 누군가 힘 있는 자가 나타나 “저 달은 나의 것이니 아무도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무효다.

대신 달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다. 일찍이 어느 풍류가가 하늘의 달은 만인의 달이고, 호수의 달은 호반사람들의 달이며, 술잔의 달은 이태백의 달이라고 했듯이, 저 달은 바로 내 달이자 네 달이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이라는 이태백은 호수에 비친 달을 혼자 차지하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가위 보름달의 색깔은 황금빛이다. 그 하늘의 황금을 어느 누가 과연 독차지한다는 말인가. 세상의 황금도, 세상의 어떤 금은보화도 누가 일시적으로 보관할 수는 있을지언정 영원히 어느 누가 혼자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기업도 달과 같다. 그곳은 여러 사람이 모여 운영하는 공동의 일터다. 보름달처럼 결코 어느 누구 혼자의 소유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면 그 사람은 결국 이태백과 같이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유엔(UN)도 그런 생각을 했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달을 탐사하면서 자칫 영유권을 주장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1971년 달조약(Lunar Treaty)을 체결했다. 주요 골자는 달은 인류 공동의 가치로 평화적 목적과 전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만 이용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만일 기업을 독차지하기 위해 산에 오르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도시락 싸들고’ 말릴 것이다. 대신 그 기업을 가장 크고 아름다운 황금빛의 슈퍼컴퍼니(Super Company)로 함께 만드는 것이 더 쉽다고 말할 것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만을 봐서는 안된다. 이미 나는 1990년대 중반부터 조직판매가 활성화된 테헤란로를 돌며 수없는 세일즈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태백처럼 죽어가는 안타까운 독식(獨食)의 결과를 잘 안다.

다시 강조한다면 달은 욕심 없이 바라보는 사람이 주인이다. 그러기에 이번 한가위의 황금 보름달과 같은 달이 매 보름날마다 독자들의 가정을 밝게 비추고, 그 빛을 모두의 가슴속으로 흠뻑 받아들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쟁반같이 둥근 달일수록 홍익지월(弘益之月)이다.

노규수_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김수진 기자 sjkimcap@beauty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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