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고대 중국의 유명한 철학자 노자(老子)의 스승은 상용(商容)이란 사람이었다. 그는 늙고 병들어 노자에 대한 더 이상의 가르침이 어렵게 됨을 느꼈다. 정년퇴직을 생각했다고나 할까? 그는 마지막 강의 자리를 마련하고 노자에게 세 가지 과제를 던졌다.

하나는 고향을 지나갈 때에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가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높은 나무 밑을 지날 때는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라는 것이었다.

노자는 걸음걸이를 말한 스승의 말뜻을 알아 차렸다. 수레에서 내려 걷는 고향 길은 자신을 낮추라는 겸손의 자세였다. 높은 나무 밑에서 종종걸음을 하는 것은, 당시 어른이나 임금님 앞을 지날 적에 걷는 걸음걸이와 같은 자세로 윗사람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었다.

마지막으로 상용은 노자에게 “내 입속을 보거라. 내 혀가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 상용은 늙어서 이가 다 빠진 합죽이 노인이었다. 노자는 대답했다.

“스승님의 치아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 남아있는 것 아닙니까?”

상용은 노자에게 “내가 이제 더 이상 너에게 줄 가르침이 없다”고 했다. 그렇듯 노자는 이미 거친 세상에서 생존하는 법을 깨우치고 있었다.

노자가 살던 시대는 춘추전국시대였다. 중국 전역에 군웅이 할거하고, 천하를 제패하기 위한 군벌들의 싸움이 치열한 난세였다. 그런 혼란의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처세술을 제시하고자 했던 인물이 바로 도덕경(道德經)을 쓴 노자였다.

노자가 살던 BC400년경이나 현대의 21세기나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강한 이빨은 부러지거나 떨어지지만, 부드러운 혀는 존재한다는 것은 많은 생물학자, 경영자, 철학자들에게 생존과 처세의 교훈을 남겼다.

20세기 들어서도 그 같은 춘추전국 시대가 있었다. 바로 1914년에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부터 1945년에 끝난 제2차 세계대전까지가 그런 시기일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에 독일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가 있다. 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작품에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역설했다.

그의 외침은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많은 정치가들과 경영자들의 가슴을 쳤다. 그것이 그들의 리더십으로 작용했다. 쇠도 씹어 먹을 만큼 강한 이빨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지만, 실제 그런 지도자나 경영자들은 많은 고난을 겪거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야 했던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은 결국 노자와 똑같은 결론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에서의 적자(適者)는 현실 세계에 대한 적응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약육강식(弱肉强食)에서의 약자(弱者)는 고향이나 큰나무 밑에서 어깨에 힘주고 고개를 뻣뻣이 드는 사람이었고, 강자(强者)는 조용히 종종걸음을 걷는 사람이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논리를 자연에서 관찰한 사람이 있다. 바로 다윈의 진화론을 공부한 프란츠 부케티츠(Franz M. Wuketits.1955~ )라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생명과학과 전임교수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로서 알텐베르크에 위치한 콘라드로렌츠 진화․인지과학연구소의 부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노자나 베르톨트 브레히트보다 더 구체적으로 ‘적자생존’을 분석한 책들을 남겼다. 생물학자로서 ‘생물로서의 인간’을 관찰한 그의 책들은 ‘멸종, 사라진 것들’과 ‘사회생물학 논쟁’, ‘자연의 재앙, 인간’ 등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저서는 연구 논문까지 포함하면 수십 여종이나 된다.

그가 발표한 연구내용 중에 2011년에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책이 있다. ‘용기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식의 도덕적 논리와는 정반대다.

그에 따라 현실 세계에서 리더가 가져야할 덕목은 어떠한 난관이라도 돌파해 자신의 조직원들을 생존·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자식을 위해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헌신하는 부모와도 같은 리더십이다. 그러나 생존본능 이외의 감정과 도덕관념을 갖고 있는 인간들을 이끌어 가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조직의 리더가 된다. 학교 다닐 때 반장 한 번 못해봤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결혼해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그는 가정의 리더로 올라서게 된다. 그것이 숙명이다.

따라서 리더가 되는 순간 책임의식이 발동하게 되어 ‘원수 같은 인간’과 헤어지고 싶어도 애들 때문에 살게 된다. 직장 상사가 싫어 당장 회사에 사표를 내려하다가도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아내 때문에 꾹 참고 월급날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은 정의(正義)다. 만일 겁쟁이가 아니라 모두 용기를 낸다면, 하루에도 이혼하는 쌍이 수만 건에 이를 것이고, 회사에서 보따리 싸는 사람도 수만 명은 족히 될 것이다.

그래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는 지난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에서 열린 수요정례 삼성사장단 회의 강연자로 나선 자리에서 다윈의 ‘적자생존 진화론’에 대해 해명(?)했다.

즉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은 최상급인 “서바이벌 오브 더 핏티스트(Survival of the fittest)”, 즉 “최적자 생존”이 아니라 비교급인 “서바이벌 오브 더 핏터(Survival of the fitter)”, 즉 “조금 더 적합한 자가 살아 남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등만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적응을 제일 못하는 사람이 도태된다”는 의미의 해석이다.

최 교수는 그 예로 당시 인기를 끌던 ‘나는 가수다’라는 가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들었다. 1등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7등만 탈락하는 시스템이 적자생존의 기본원리라는 것이다.

경영자로서 나는 1등만을 살리는 그 어떤 조직시스템도 반대다. 현대적 적자생존의 논리를 외면한 처사다. 그러나 불법다단계판매는 물론이요, 대부분의 다단계판매 시스템은 오직 1등만을 위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머지 99명은 모두 들러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죽은 목숨이라는 뜻이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최후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도태되는 1명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나머지 99명은 살아남아야 한다. 만일 99명이 모두 1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기업의 리더로서 공정성(fairness)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기회의 공정성이지 결과의 공정성은 아니다. 공정성이 위협을 받는 것은 기울인 노력에 비해 너무 많은 혜택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때다. 특히 무임승차자와 같이 아무런 기여도 없이 결과의 공평함(equality)을 원할 때면 공정성은 크게 훼손된다. 그런 경우야말로 1명만이 살고 99명은 모두 죽게 된다.

지금까지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의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나는 더욱 옷깃을 여미며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도록 고향에서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갈 것이고, 큰 나무 밑에서는 종종걸음을 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는 조직이 결국 21세기를 이끌 강한 조직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규수_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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