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그 ‘때’는 철저히 준비한 사람에게만 온다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오늘은 기회가 없더라도 아쉬운 마음을 누르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분명 내일은 있다.

따라서 우리가 때를 알기 위해서는 하늘의 태양을 늘 관찰하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점심 한 끼 먹는 것도 때를 맞추어야 하는 일이듯이, 한 기업이 성장하는 데에는 국내외 정치․경제 환경과 때를 맞추어야 하는 것이어서 단지 인간의 힘만으로 기업을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때에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인재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지적했듯이 문제는 바로 사람, 조직에 새바람을 몰고 올 인재들이 하나 둘씩 모여서 위대한 기업을 이루는 것을 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많이 보아 왔다.

그렇듯 H사가 때를 만나 업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한 핵심적인 인물 3인방 중 장량(張良)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사표를 낸 것이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가 되고 있다. 경쟁기업들과의 치열한 시장쟁탈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밤새워 일했던 그는, 그의 목표대로 회사가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고, 해외시장에서도 주가가 크게 오를 시점에 사표를 쓰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의아해 했다. 그동안 고생고생하다 이제 먹고살만해졌는데 회사의 핵심 중역이 사표를 덜컥 내니 창업주도 안타깝고 섭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창업주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사표를 수리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게 퇴직금의 하나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별장까지 지어주면서 그의 노고를 치하해야 했다.

“살구꽃은 삼월(三月)에 피고, 국화(菊花)는 구월(九月)에 핀다!”

어느 날 장량은 별장에 두 아들을 불러놓고 그렇게 말했다. 그 별장은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팔각정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별장을 방원각(方圓閣)이라 이름 짓고 현판까지 써서 그렇게 내걸었다.

“너희들 ‘방원(方圓)’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모나고도 둥근 것 그것이 방원(方圓)이다. 네모진 것을 열개 스무 개 자꾸만 쌓아 올려 보아라. 그러면 나중엔 모난 것들이 둥그레진다. 정방형(正方形)이 누적되면 원(圓)을 이룬다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 모질 때는 모질어야 되겠지만, 그것은 반드시 원만함을 전제로 해야 하느니라.”

회사가 업계 정상에 오를 그 때, 그에게 박수칠 때 떠난 인물. 그런 장량이 몸담았던 H사는 바로 중국의 한(漢)나라를 말한다. 유방(劉邦)의 책사 장량의 호가 자방(子房)인지라 사람들이 그를 장자방(張子房)이라 불렀다.

기업으로 치면 기획조정 담당 임원인 장량, 총무인사 담당 소하(蕭何), 판매영업 담당 한신(韓信)과 함께 한나라 건국의 3인방, 이른바 서한삼걸(西漢三杰)로 불리는 인물이다. 항우(項羽)를 꺾고 BC206년 중국을 통일한 유방은 장량에 대해 “진중에서 계략을 꾸미고도 천리 밖의 승리를 결정지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전술전략의 달인이었다.

대신 소하(蕭何)는 살림살이를 맡은 인물이다. 유방이 남방 원정에 나섰을 때 길이 험하고 멀어서 도중에 이탈자가 많아지자, 어이없게도 전투사령관인 한신(韓信)마저 탈영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 소하가 그것을 알고 급히 한신을 쫓아갔다. 유방은 충복인 소하마저 도망간 것으로 알고 크게 낙담하고 있었는데, 이틀 뒤에 한신을 데리고 돌아오니 크게 꾸짖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도망쳤느냐”는 호통에 소하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 한신을 잡으러 갔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유방이 “다른 장수들이 이탈했을 때는 가만히 있더니 유독 한신 만을 쫓아간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소하는 “모든 장군은 얻기가 쉬울 따름이지만, 한신 같은 경우에는 이 나라의 인물 중에 둘도 없는 인물이옵니다. 폐하께서 한(漢)나라의 왕으로만 계신다면 한신이 필요 없겠지만,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얻으시려 한다면 한신 같은 인물 없이는 더불어 그 일을 도모할 사람이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훗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논공행상을 논하는 자리에서, 유방이 “가장 큰 공은 소하에게 있다”라고 말한 바로 그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한신을 알아본 것이다. 한신은 젊었을 때 가난한 비렁뱅이였다고 한다. 뛰어난 재주나 언변도 없이 그저 남의 집에 얹혀 얻어먹곤 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를 만나면 피해야 할 만큼 누구나 그를 싫어했다. 그러나 한신은 천하통일의 꿈이 있었다.

“네놈이 덩치는 큼직하게 생겨서 밤낮 허리에 칼은 차고 다니지만 사실 네 놈은 겁쟁이일 뿐이야.”… “네가 만약 사람을 죽일 용기가 있다면 어디 그 칼로 나를 한 번 찔러 보아라. 그러나 만일 죽기가 싫다면 내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야 한다!”…고 뒷골목 건달들에게 놀림을 당할 때 그는 실제 그들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들어가 놀림감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과하지욕(誇下之辱)의 수모라는 것.

그런 한신이 때를 만나 장량의 눈에 띄어 유방 진영에 가담하게 된다.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고, 사소한 다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치욕까지 참아내면서 때를 기다린 끝에 결국 그는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이 되기에 이르렀다.

한신이 펼친 군사작전 중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것이 ‘배수의 진을 친다’는 말이 있다. 강을 등 뒤에 두고 군사들을 싸우게 한다는 것으로, 군사들이 겁먹고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고는 3만 군사로 조(趙)나라 20만 대군을 격파시킨 장본인이 바로 한신이다.

그러나 한나라로 천하통일이 이뤄지자 한신의 지위는 유씨 외의 다른 제왕과 함께 차차 밀려나 BC201년 공신서열 21번째에 불과한 회음후(淮陰侯)로 격하되었고, 유방이 자리를 비운 사이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에게 모함받아 참형에 처해졌다.

장량, 소하와 함께 한나라를 세운 것이나 다름없는 개국공신 한신이 끔찍하고 잔인하게 살해된 것을 일컬어 후세 사람들이 월나라 범려(范蠡)에서 유래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장본인으로 지목함으로써 더 유명해졌다.

나는 여기서 장량과 한신을 비교하고, 사마천과 같은 시각에서 한신을 탓하려 한다. 장량은 성공불거(成功不居), 즉 “성공하고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를 알았지만, 한신은 그 때를 몰라 토사구팽(兎死狗烹), 즉 성공하는데 이용당하고 잡혀 죽은 꼴이 된 것이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은 여기서 한신이 줄곧 겸손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뒷골목 건달들에게도 용서를 빈다면 진정한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빌었어야 했다는 의미다. 그것이 장량이 말한 방원(方圓)이다. 그가 건달들과의 시비에서 빠져나올 때 겉으로는 겸손한 체 했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오만함을 보였는데, 그것이 바로 한신의 한계였다.

대신 장량은 지지(知止), 즉 멈출 때를 알았다고 했다. 그 지지의 경지는 주식시장에서도 흔히 인용된다. 즉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 팔라는 뜻이다. 그것이 유종의 미(美)다. 머리끝에서 팔려고 시기를 저울질하다 낭패를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지지’를 모르고 ‘욕심’만 알기 때문이리라.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것은 바로 한신의 우(愚)를 범하는 일이다.

그동안 노규수 칼럼을 성원해준 독자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더러는 알지도 못하는 말로 독자들을 현혹시킨 일도 있었을 것이요, 때로는 세상을 말하면서 내 욕심을 버리지 못한 좁은 소견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쉽더라도 이 시점에서 노규수 칼럼을 멈추고 더 숙성된 모습으로 독자들을 찾아뵙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 지지(知止)이리라.

천하를 갖고 떠난 장량은 살구꽃은 삼월에 피고, 국화꽃은 구월에 핀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나는 제2부 노규수 칼럼의 꽃을 피우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강태공이 세상을 낚으려 낚싯대를 드리웠거나, 김대중이 옥중에서도 인동초를 기다렸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배울 ‘때를 기다리는 일’이다.

그것이 한 달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그 때에는 좀 더 큰 눈으로 ‘홍익인간의 세상’을 보는 안목을 독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까지 읽어준 독자여러분들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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