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가서 숭늉 마실 수 없다. 사업도 사랑도 과속의 스피드보다는 꾸준한 스테디가 더 중요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매사 조급증이 문제다. 밥 먹기도 급하고, 돈 벌기도 급하고, 사랑도 급하다.

대화하다 잠시만 생각에 잠겨보라. 상대방으로부터 웬 뜸을 그리 들이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 십상이다. ‘빨리빨리 문화’ 때문에 오죽하면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는 속담까지 있겠는가.

숭늉을 마시려면 여러 과정의 공을 들여야 하는 법이다. 급하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선 우물물을 길어다 쌀을 씻고 밥을 안친 다음, 일정 시간이 지나도록 불을 지피고 물을 끓여 쌀을 익혀야 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뜸을 들여 줘야 한다.

뜸이란 불을 끄고 난 후에도 솥뚜껑을 열지 않고 한동안 내버려두어 쌀이나 보리, 감자 등 밥 재료가 속속들이 익게 하는 ‘기다림’을 말한다. 한국인의 주식인 쌀밥은 뜸을 잘 들여야 제 맛이 난다.

하지만 성질 급한 사람은 뜸 들이는 것을 싫어한다. 기다림을 못 참는다. 그래서 당장 솥뚜껑을 열고 퍼먹으려 한다. 하지만 설익은 밥알이 씹히기 일쑤다. 이가 약한 사람은 치아가 상할 수도 있다.

뜸 들이지 않으면, 결코 숭늉이란 없다. 그것이 기다림의 인생인 것이다.

숭늉의 원재료는 누룽지다. 뜸 들이는 과정에서 솥바닥 맨 아래에 밥알이 딱정이로 눌어붙도록 열을 가해 줌으로써 생긴다.

필자가 숭늉을 장황히 설명하는 이유는 ‘빨리빨리 문화’가 주는 부작용 때문이다. 그러니 ‘폼생폼사’에 목숨 거는 남성들이여! 스피드를 너무 자랑하지 말라.

‘정상적인 마음’일지라도 과속하면 실수할 여지가 큰데, 빨리 목적을 달성하려는 ‘조급한 마음’에서 서두르면 백발백중 실패다. 운전 과속은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인지능력을 퇴화 말소시킨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각국 선수들이 여러 종목에서 속도전을 펼치고, 그 결과에 따라 메달리스트들도 탄생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작 몇 분, 몇 초의 승부에 불과하다.

그 대신 가장 국민적 관심을 끈 종목은 ‘영미야~!’로 회자되는 여자 컬링이었다. 속도전이 아니었다. 강(强)과 약(弱)을 조절하는 ‘부드러움’의 싸움이었다.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보여준 스킵 김은정 선수의 마지막 스톤던지기 승부수는 ‘느림’이었고, 빗질 끝의 ‘기다림’이었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칼 오너리(Carl Honoré)는 “느린 것이 아름답다”고 선언했다. 그가 쓴 『시간자결권(Time Autonomy)』은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가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에 비견할만하다”고 할 만큼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에게 알맞은 속도로 살라고 권유했다. 그것에 필요한 조건은 느림이었다. 그래야 좀 더 멀리 보고 음미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의지대로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느림은 “자신의 시간에 대해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내용물로 채워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며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칼 오너리는 그의 저서 『느린 것이 아름답다(In Praise of Slow)』 중 ‘섹스, 느린 손을 가진 연인’ 편에서 여성과의 사랑에서도 결코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빠르게 대시하는 것은 느리게 뜸 들이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3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도약의 봄이다. 사업에서도 이젠 멀리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당장 떼돈을 벌려는 급한 욕심에 가상화폐에 손댔다가 낭패 본 사람들이 요즘 주변에 널려 있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가상화폐는 도박”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썼고, 정보화시대를 이끌어온 빌게이츠는 “가상화폐의 익명성 거래는 매우 위험한 짓”이라고 질타했다.

사업도 사랑도 '빠른 스피드(speed)'보다는 '꾸준한 스테디(steady)'가 중요하다.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적당히 뜸을 들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고소한 누룽지와 맛있는 숭늉이 생기는 법이다.

●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뷰티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