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의 불확실한 세상에서 사과가 아닌 언어를 지배하는 당신이 유빕이다.

이 세상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없다. 그것은 신(神)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통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신개념의 발명이 철학이다. 고대로부터 신개념을 발명해온 무수한 철학자들은 '보다 나은 세상'(Better World)을 만들려고 몸부림친 탈주자요 노마드다.

약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인류를 아름답게, 사회를 건강하게'(라캉식으로 이것이 바로 <인아사건>이라는 으뜸 기표임)를 외치며 유빕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필자의 지속적인 욕망과 관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왜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가. 이 세상은 파라다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이만큼 발전해왔지만, 아직도 '얼모스트 파라다이스'일 뿐이다.

 

◇ 실재계와 상징계의 차이

 

라캉이 확립한 3계(상상계ㆍ상징계ㆍ실재계) 중에서 실재계가 가장 난해한 개념이다.

개념은 사건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재계의 사과 하나만 예로 들더라도, 기원을 제공하는 많은 이야기들(아담과 이브/죄, 파리스/불화, 뉴턴/만유인력, 앨런 튜링/컴퓨터와 AI 등)이 결코 다 채우지 못한다. 이처럼 실재계는 상징계를 벗어나 있는 세계이자, 상상계와 상징계의 존재가 가능하도록 그 경계에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충만한, 언어 이전의 세계로써 도달이 불가능한 세계를 뜻한다. 고로 실재계는 동양철학의 도(道)의 세계와 같다 :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미 도가 아니다. 도는 말이나 글의 기표로 설명하거나 개념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 페터 파울 루벤스의 작품 <파리스의 심판>(1632-1635, 오크에 유채, 144.8×193.7cm). 주노, 비너스,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의 세 여신이 미를 겨루는 가운데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황금 사과를 들고 세 여신을 번갈아 쳐다보다 결국 비너스에게 사과를 건네는 장면이다.(다음백과 참조)
▲ 페터 파울 루벤스의 작품 <파리스의 심판>(1632-1635, 오크에 유채, 144.8×193.7cm). 주노, 비너스,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의 세 여신이 미를 겨루는 가운데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황금 사과를 들고 세 여신을 번갈아 쳐다보다 결국 비너스에게 사과를 건네는 장면이다.(다음백과 참조)

 

◇ 파리스의 사과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아들로, 헤카베는 파리스가 태어날 때 온 도시가 불타는 꿈을 꾸었는데, 예언자는 그것이 트로이의 멸망을 의미하는 불길한 전조이며 아기가 태어나면 죽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프리아모스왕은 파리스가 태어나자 양치기에게 아기를 이데산에 버리도록 했다. 양치기가 아기를 버린 후 5일 만에 다시 가보니 놀랍게도 아기는 곰의 젖을 먹고 아직 살아있었고, 아기를 불쌍히 여긴 양치기는 자신이 직접 아기를 키우기로 했다.

이데 산에서 양을 치며 평화롭게 살고 있던 파리스의 운명을 바꾸고, 트로이전쟁의 발단이 된 사건은 황금 사과에서 시작되었다.

뮈르미돈의 왕 펠리우스와 바다의 요정 테티스의 결혼식 날,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고 모든 신들이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우연한 실수로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만이 제외되었다. 혼자 제외된 데 분노한 에리스는 좌중에 황금 사과를 하나 던졌는데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씌어져 있었다.

그 황금 사과를 두고 세 명의 여신 -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는 각각 자신의 고귀한 아름다움을 내세우며 자신이야말로 그 사과의 주인이라고 주장했다. 세 여신은 조금도 양보 없이 싸우게 되었고, 다른 신에게 판결을 부탁했지만 다른 신들 역시 선택되지 못한 두 여신의 원한을 사기 싫어 판결을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그 황금 사과를 두고 아옹다옹하던 질투심 많은 세 여신이 올림포스 산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다가, 이데 산기슭에서 목동 노릇을 하는 훤칠한 청년을 발견했다.

그 청년은 바로 사과를 사이에 두고 올림포스 신들 사이에 말싸움이 시작될 당시에 태어난 파리스였다. 세 여신은 모르는 것이 없는 신들이라서 한눈에 청년이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청년은 자기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세 여신은 문득 그 청년이 자기네 세 여신의 정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신의 정체를 모른다면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정하게 심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 여신들은 파리스에게 황금 사과를 던져주고는, 그의 앞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누구인지 판결을 부탁했다.

먼저 눈부신 갑옷을 차려입은 모습의 아테나 여신이 앞으로 나서서 칼날 같은 잿빛 눈으로 파리스를 바라보며, 자기에게 그 황금 사과를 던져주면 전투에서 무적의 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음으로는 헤라 여신이 신들 궁전의 왕후에 어울리는 차림으로 나서서, 자기에게 그 황금 사과를 던져 주면 소아시아 전체의 통치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눈이 깊은 바다처럼 파란 아프로디테가, 꼬아 놓은 금실 같은 타래 머리를 하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면서 앞으로 나서서, 자기에게 그 황금 사과를 던져 주면 자기만큼 아름다운 아내와 짝을 지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를 택했고 여신의 약속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헬레네를 아내로 맞게 되지만 그것은 트로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파리스는 전쟁 중에 그리스의 최고 영웅인 아킬레우스를 죽이지만, 얼마 후 자신도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처럼 실재계는 “언제나 거기에” 있으면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산출할 수 있기에, 그 기표들의 움직임에 따라 욕망이 발생한다. 요컨대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실재계로부터 상징계를 만들어냈고 그 세계에서 살고 있다.

문제는 실재계와 상징계가 다르다는 사실이고 그 차이는 바로 구멍(◇)에 있다 :

첫째, 상징계는 언어가 지배하고 모든 사물이 상징화되면서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언어의 위력). 그러나 사물과 존재의 양자 간에는 불일치가 항존한다. 즉 사물과 존재 사이에 괴리(결핍)가 있기에 욕망이 발생한다.

둘째, 상징계는 부재(absence)의 세계다. 상징계를 지배하는 언어는, 결코 실재를 잡을 수 없다(언어의 한계). 실재가 곧 언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상징계에서 기표가 주체를 해체하듯이, 실재계는 상징계에 구멍을 뚫고 들어와 '상징계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모든 현전(現前) 혹은 현존(現存. presence)을 부정해준다. 즉 상징계는 모든 사물을 죽임으로써 상징화(여기서 언어화란 '사물이 죽어야 언어가 산다'는 뜻임)되어 존재가 되기에, 실재계에 실재가 있다면 상징계에는 부재가 있다.

이처럼 실재계가 상징계 내부에, "언제나 이미" 구멍을 뚫고 들어와 있기에, 즉 실재계의 저항이 있기에 상징계의 언어체계에는 구멍이 나있는 반면, 실재계는 잉여로 존재한다. 고로 이 세상은 파라다이스가 아니고, 되어서도 안되며, 될 수도 없다. 그저 얼모스트 파라다이스일 뿐이다. 언어가 지배자니까.

포스트모더니즘의 불확실한 세상에서 사과가 아닌 언어를 지배하는 당신이 유빕이다.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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